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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6박7일 ‘불쾌한 만남’

제6차 장관급회담 소득 없이 감정만 악화 … 종결회의 땐 몸싸움·극언 오가기도

  • < 장용훈/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 기자 >jyh@yna.co.kr

금강산 6박7일 ‘불쾌한 만남’

금강산 6박7일 ‘불쾌한 만남’
남측의 비상경계조치를 이유로 한 북측의 일방적인 남북관계 일정 유보와 남북간 회담장소를 둘러싼 10여 차례의 전화통지문 공방. 제6차 장관급회담은 이렇게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어려운 고비에 선 가운데 열렸다.

임동원 전 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결의안 통과로 후임이 된 홍순영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서는 두 번째 회담. 중국 주재 대사에서 자리를 옮긴 지 며칠 안 돼 열린 제5차 장관급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은 홍장관의 능력과 의지를 보여줄 시험무대로 평가됐다.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듯 홍장관은 회담에 앞서‘40년 외교관’ 경력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북측이 주장해 온 금강산을 회담장소로 수용함에 따라 남측 대표단은 회담 하루 전인 11월8일 속초항을 떠나 장전항으로 들어갔다. 회담장과 숙소로 사용될 금강산여관에 도착한 남측 대표단은 김령성 단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함께 온통 어둠에 휩싸인 호텔을 마주했다. 남측 대표단의 도착과 함께 정전이 된 탓이다. 남북 양측 대표단은 지난 1월 3차 적십자회담의 촛불만찬에 이어 이번엔 촛불환담을 한 뒤에야 숙소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금강산 6박7일 ‘불쾌한 만남’
회담 첫째 날인 9일. 남북 수석대표는 기조발언을 통해 ‘일합’을 겨뤘다. 남북 양측은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갖고 기조발언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남측은 이번 회담의 최우선 과제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즉각적인 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북측에 촉구했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 방안으로 면회소 설치와 생사·주소 확인 및 서신교환 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적십자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홍수석대표는 “북측이 우리측의 비상경계태세를 문제삼아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연기하고 우리측 지역에서 회담도 할 수 없다고 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며 “우리측 조치는 국제적인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내에 상주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령성 북측 단장은 쌍방 합의사항을 이행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은 변함없다면서 “남측이 비상경계조치 해제를 비롯해 살벌한 환경과 분위기를 일신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대답부터 명백히 하고 중단된 합의사항 이행일정을 재조정하는 대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경계조치를 둘러싼 남북 양측의 견해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는 대목으로 이러한 양측의 인식 차이는 회담 내내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했다.

여기에다 북측은‘남측이 최근 밖에 나가 그 누구를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탁놀음을 벌인 것’을 지적하고 “이것은 상대방의 제도를 인정하고 두 제도의 공존에 기초한 통일로 지향해 나가고자 하는 6·15 공동선언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리의 존엄을 해치는 용납 못할 엄중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10월1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측이 남북회담에서 대통령을 비난하기는 지난해 6·15 공동선언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같은 첫 회의 분위기는 참관에도 그대로 이어져 홍장관은 회담 첫날 현대 사업장 방문에 이어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시종 어두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공연 소감을 묻자 홍장관은 “소감은 무슨 소감이야. 눈감고 회담 생각만 했다”며 “교예를 보니 체제 차이만 생각나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회담 둘째 날인 10일. 남북 양측은 전체회의를 갖고 비상경계조치를 중심으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신경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북측은 이 회의에서 공동보도문 초안을 남측에 전달했다. 이 초안에서 북측은 이달 중 비상경계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그런 이후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등 합의일정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측은 회담 첫째 날과 둘째 날 김령성 단장의 발언을 방송을 통해 공개하면서 회담에서의 퇴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전술을 구사해 남측을 압박했다.

회담 셋째 날인 11일. 전체회의 없이 남북 양측은 실무대표를 중심으로 접촉을 시작했다. 이 실무라인은 그동안 장관급회담에서 남북 양측의 입장을 적절히 조율해 공동보도문안을 만들어 왔다. 일단 남북 양측은 홍순영 남측 수석대표가 회담 종결발언에서 비상경계조치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짓기로 하고 남북간 합의일정 재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북측은 특히 이 과정에서 남측의 공동보도문 초안 제시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회담에 긍정적인 전망을 낳기 시작했다. 남북 양측 실무대표는 북측의 일방적인 연기로 무산된 4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 교환을 늦어도 올해 안에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측은 이 과정에서 북측이 요구해 온 금강산을 상봉 장소로 수용하는 탄력적인 자세를 보였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오전 9시 속초항으로 귀환하는 설봉호에 승선해야 할 남측 대표단은 회담일정을 하루 연장하기로 하고 회담 넷째 날인 12일을 맞았다. 이때 남북 양측은 공동보도문에 들어갈 남북경협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와 제7차 장관급회담 개최 날짜와 장소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남측은 적어도 이 회담중 하나는 서울에서 열려야 북측이 비상경계조치로 문제삼아 온‘안전성’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북측의 오해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회담의 서울 개최를 주장했다.

회담 다섯째 날인 13일에도 남북 양측은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남측은 경추위를 금강산에서 열더라도 장관급회담만큼은 반드시 서울에서 열려야 하고 그 날짜도 못박아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북측은 서울에서 장관급회담을 연다는 데까지는 동의하면서도 회담 날짜는 적시할 수 없다고 버텼다. 남북 양측은 계속 맞섰지만 견해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금강산을 오가는 유일한 운송수단인 설봉호는 13일 오후 2시 관광객들을 태우고 남측으로 귀환할 계획이었고, 남측 대표단도 이 배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출항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배가 떠나기 직전 홍장관은 자신의 객실에서 나와 회담 상황실로 오면서 “배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진전 없는 회담을 더 이상 붙들고 있어 봐야 시간낭비라는 판단에 따라 귀환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배는 이미 떠났고 남측 대표단은 하루 더 금강산에 묵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남북 양측 실무대표는 피곤을 잊고 다시 마주 앉았지만 회담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정체를 거듭했다.

13일 밤 늦게 남측 회담 관계자는 ‘회담 결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결렬을 밝히면서도 물밑으로 접촉이 계속 이어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양측 대표단의 의견대립은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태우고 속초항에 갔던 설봉호가 14일 새벽 1시께 장전항으로 돌아왔지만 북측은‘해가 떠야 출항을 허가할 수 있다’며 남측 대표단의 귀환을 지연시켰다. 또 남측 대표단은 밤 12시30분 종결회의를 갖자고 했으나 북측은 밤늦게 종결회의를 할 수 없다고 피한 뒤 새벽 6시까지 일체의 연락관 접촉을 끊었다.

결국 실무대표의 ‘몸싸움’이 있고서야 남북 양측은 종결회의를 가질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 김령성 북측 단장은 앞으로 홍수석대표와 마주하는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북 양측 수석대표의 작별인사.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회담을 결렬시킨 대표단을 실은 금강산관광선 설봉호는 14일 오전 8시 장전항을 떠났다.

8일 오후 5시께 장전항에 도착한 남측 대표단은 장전항을 떠날 때까지 길고도 긴 6박7일, 135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은 ‘빈손’으로 돌아온 홍순영 장관 일행을 ‘잘했다’며 격려했다. 회담은 결렬되었지만 수석대표를 맡았던 홍장관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정치적 성공을 거둔 셈이다.‘배를 세우라’고 지시한 홍장관의 정치적 승리가 정상회담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24~26)

< 장용훈/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 기자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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