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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무소불위 한나라당

“이제 모든 걸 의석수로 말하마”

한나라, 개혁입법 재개정 환원 등 밀어붙이기 … “힘의 논리로만 가다 독 깰라” 불안감 점증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이제 모든 걸 의석수로 말하마”

“이제 모든 걸 의석수로 말하마”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개혁법안 개정안에 제동을 걸고 나서거나, 새로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법 남북협력기금법 교원정년법 등 DJ 정부의 상징적 법안에 대해 옛날로의 환원 또는 재개정을 하자는 게 한나라당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또한 방송법 등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주요 법안을 독자적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10·25 재·보선 승리 이후 국회 다수 의석을 무기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한나라당 공세는 파죽지세 형국이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횡포이자 발목 잡기’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개혁입법의 개정 및 환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금감위원장 등 이른바 ‘빅5’를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은 한나라당이 전략적으로 서두르는 법안. 이재오 총무는 “최우선 순위로 추진하는 법안인 만큼 합의가 안 되면 강행처리라도 할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터진 3대 게이트와 북풍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전제, 검찰의 중립성 확보가 시급한 만큼 인사청문회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위헌 소지를 명분으로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지만 자민련도 한나라당에 동조, 법안 통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현재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각각 136석과 15석으로 두 당을 합친 의석이 과반수인 137석을 훨씬 상회한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인사청문회법 개정에 매달리는 것은 관련 법안의 미비점에 대한 보완 의미도 있지만 정치 공세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내년 선거를 대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이들 5대 사정기관의 중립화 여부는 내년 대선의 승패 여부에 직결되는 중요 사안 중 하나다. 민주당 한 인사는 “차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것”으로 한나라당 의도를 분석했다.

최근 한나라당이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등 3대 게이트와 관련해 신건 국정원장과 신승남 검찰총장의 사퇴 및 특검제를 주장한 것도 같은 이치로 설명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은 비리척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정국주도권을 잡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중립을 유도해내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아울러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정기관 길들이기 의도가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총재의 수권능력을 과시, 지도력과 대세론을 굳히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특히 김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 이후 바뀐 정치환경이 한나라당과 이총재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모든 걸 의석수로 말하마”
한나라당은 자민련과의 조율을 통해 교원 정년을 63세로 연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교원정년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11월20일 공청회 후 표결처리를 강행할 계획이다. 교원정년법은 지난 98년 IMF 사태 당시 교원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낮추는 과정에 찬반이 엇갈려 법안 통과에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이를 다시 과거 기준으로 되돌린다면 교육의 연속성이나 형평 원칙 등과 관련한 갈등과 문제가 불거질 것은 뻔한 이치.

남북협력기금의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는 남북협력기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의 개정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한나라당은 경협분야 50억원, 사회문화 분야 5억원 이상의 대북협력사업에 대해서는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자민련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대북 퍼주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지난 7일 당론으로 확정한 건강보험재정 분리 역시 거대야당의 힘이 잔뜩 들어간 결정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30%에 그친 상태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통합하면 직장과 지역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 재정 분리의 근거다. 한나라당은 당내 반발 의원 등을 감안해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당론을 관철시킬 태세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DJ 정부 개혁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몰아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발판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횡포”라며 반발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을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점이 고민이다.

민주당 이상수 총무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전략을 짜겠다”고 말했지만 한나라당의 공세를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회 의석의 열세를 국민대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조성, 만회하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당내 파워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 사정 때문에 이 같은 제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문 형편이다. 민주당 한 고위관계자는 “야당이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는 말로 집권당의 무력감을 대변했다.

여당의 무력감을 간파한 한나라당은 여당을 백안시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재오 총무는 “국정 전반에 걸쳐 민주당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행정부를 직접 상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기회에 이니셔티브를 확실히 쥐겠다는 태도다. 한나라당의 DJ 정부 법안에 대한 꼬투리 잡기는 이념 논쟁과 연결된 법안들로도 이어진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도 당분간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두 법안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민련은 아예 처리 불가를 선언했다.

방송법 개정의 경우 내년 대선과 집권을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민련은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개정안에서 대통령의 방송위원 추천 권한을 배제토록 했으나 한나라당은 “행정부 수장의 추천권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실효성 있는 법안 마련에 고심하는 눈치다. 정치권에서는 “집권을 상정한 오만한 발상이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방침에 대해 당 내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소장파 인사는 “현 정권의 개혁 실패와 관계없이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여전하다”며 “개혁법안 환원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여당의 실패가 법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운영 미숙이었던 만큼 각종 개혁법안의 환원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며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종전처럼 DJ 대 반DJ로 정국을 끌고 가기 어려운 야당이 뭔가 돋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에 무리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한 중간 당직자는 “이총재로선 그간 여권 공세에 반응만 하던 단순 대응방식의 수준을 넘어 여당 마인드와 함께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면서 최근 법안 개정에 임하고 있는 당지도부의 방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당 방침에 반발하는 당내 인사도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재정 분리 당론의 국회 상임위 표결을 앞두고 김홍신 의원이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교원정년 연장 방침에 대해 당 교육위원들간에도 통일된 의견이 없다. 그렇지만 당 지도부는 김의원의 상임위를 교체해서라도 당론을 밀고 가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당 일각에서는 “힘의 논리로만 가다 독까지 깰수 있다”며 불안감을 피력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1.11.29 311호 (p18~19)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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