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2001.09.27

러시아도 ‘살과의 전쟁’중

전 국민의 54% 과다체중 ‘뚱보국가’… 고가 피트니스 클럽 문전성시

  • < 남혜현/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 russ3023@unitel.co.kr

    입력2004-12-23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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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도 ‘살과의 전쟁’중
    문명의 풍요와 더불어 찾아온 병’ 비만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추위에 대항해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과 감자, 밀가루처럼 고칼로리 음식을 주로 먹는 식습관으로 유명한 나라다 보니 러시아인의 비만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흔히 러시아 여성 하면 늘씬한 금발 미녀를 떠올리지만, 이는 사실 20대의 ‘빛나는 한때’일 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총인구의 54%가 과다체중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하면서 러시아에서도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소비에트 시대 강한 여성상의 표본으로 받아들이던 ‘당당한 체구의 여성 노동자’는 미니스커트와 각선미로 중무장한 신세대 여성에 밀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50이 넘은 나이에 18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면서 대대적인 주름살 및 지방제거수술을 받아 30대 외모로 거듭난 것 역시 무수한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세태에 힘입어 때를 만난 것은 피트니스 클럽(fitness club). 지난 93년 최초의 클럽이 모스크바에 문을 연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800여 업소가 운영되는데다, 은행·석유재벌·대형유통회사들까지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월드 클래스’ ‘플래닛 피트니스’ ‘핏 앤드 팬’ 등 유명 클럽의 1년 회원권 가격은 미화 3000달러를 넘는다. 3개월짜리(600~960달러 상당) 이하의 회원권은 아예 팔지 않을 정도로 이들 클럽은 전성기를 맞았다.

    130kg 넘는 발레단 ‘비만이 곧 여유’

    회원권의 가격은 제공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4000달러짜리 ‘핏 앤드 팬’ 클럽의 골드카드에는 심장질환 검사 2회, 에어로빅 강습, 트레이너의 개인 훈련, 사우나, 마사지, 자쿠지(거품목욕), 수영장, 일광욕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레스토랑과 미용실 할인혜택까지 포함한다. 다이어트 전문 컨설턴트와 상담해 피부 미용 등은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그 밖에 요가·동양무술 코스도 인기 있는 옵션이다.

    이들 피트니스 클럽은 자본주의 문화의 첨병답게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으로도 앞서간다. 낮 시간 이용자에게는 회비를 낮춘다거나 대기업 직원들과 제휴해 단체 할인혜택을 주는 것은 고전적인 기법.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청소년 전용 헬스장도 있다. 클럽 내부에 레스토랑과 바, 옷가게, 미용실 등을 설치해 살도 빼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한 경우도 있다. 물론 이 클럽들은 수백 달러의 월급으로 연명하는 대다수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거센 다이어트 열풍 뒤에는 비만을 여유로 생각하는 ‘만만디족’도 있다. 날씬하지 않음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며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다. 러시아에는 ‘뚱보’ 클럽을 결성해 ‘풍요로운 체구’로 인해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도 전개한다(http:// fatgirls.narod.ru/fatclub). 심지어 체중 130kg이 넘는 무용수로만 이루어진 발레단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이 ‘뚱보 발레단’ 단원들은 신체조건을 극복하며 아름다운 발레를 하는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날씬함이 곧 경제적 여유를 상징하게 된 자본주의 러시아. 그 속에서도 ‘살빼기에 집착하다 건강 버리고 마음 상하느니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살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 우리 나라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가난한 서민의 일종의 항의 표시일까, 아니면 러시아인의 낙천적인 본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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