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2001.08.09

무더위 스트레스를 날려라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5-01-17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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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 스트레스를 날려라
    음악은 물의 속성을 닮았다. 흘러가는 선율, 넘실대는 리듬, 모든 것을 받아들여 하나로 만드는 화성, 눈앞에 실재하는 것이면서도 정작 손에 쥐면 빠져 나가는 것까지 음악은 물을 쫓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물로 발효시킨 술처럼 우리는 서서히 그 속에 도취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해변의 젊음을 신나게 표현한 ‘Surfin’ U.S.A.’를 담은 비치 보이스의 두 장짜리 앨범 ‘Endless Summer’ 같은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젊음의 이상향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완벽한 즐거움, 욕망의 완전연소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세계 대중음악의 가장 주요한 주제가 되었고, 서구를 모델로 한 근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강렬한 파괴력을 행사한 여름 노래는 1996년 여름을 달군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와 1969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여름마다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일 것이다.

    키보이스의 노래가 여름 바캉스 문화가 연착륙하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대의 청년 문화의 표정이라면 마이애미 비트와 복고적인 플라멩코 리듬이 교묘하게 뒤섞인 클론의 노래는 10대 소녀 취향으로 가고 있던 한국 댄스뮤직계에 강인한 근육질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 노래를 담당한 막강 라인음향의 김창환 프로듀서의 전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일 때 ‘큰 소리’를 외치며 그것을 ‘날려 버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자면 이 노래의 폭발적인 성공은 그동안 한국의 대중음악과 한국 사회의 정서가 그만큼 ‘육체성’의 대담한 드러냄과 ‘억압’의 발산을 오랫동안 저지해 왔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올해 여름 시즌, 김건모가 화려하게 재기하는 저력을 보이면서 음반 판매액 1위를 질주하는 가운데 여름 시즌에만 앨범을 발표하며 완전히 여름 댄스그룹으로 입지를 굳힌 혼성 트리오 쿨의 6집 앨범이 예년처럼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승호-윤일상 콤비의 작사·작곡 라인이 건재한 가운데 신예 작곡가들의 감각을 오밀조밀하게 고용한 쿨의 신작은 ‘여름 앨범’의 전형을 보여준다.

    심각하지 않은 메시지와 테마 선율, 빠른 비트와 느린 템포의 적절한 배치, 10~30대를 아우르는 감각은 부침이 심한 댄스뮤직 진영에서 왜 이들이 ‘고정 50만 장’의 스테디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알게 해 준다.



    하지만 이들의 젊음에는 더 이상 새로운 젊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동어반복적으로 박제화한 리듬과 아직 성숙하게 발효되지 않은 메시지를 공허하게 남발할 뿐이다. 이 숨막히는 여름, 차라리 조용필의 1985년 작품 ‘여행을 떠나요’를 들으면서 떠나지 않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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