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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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르지 않는 감독 있으면 나와 봐!

‘스트레스’는 스포츠 지도자의 숙명 … 심근경색·탈모 등 ‘부상병동’

  •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입력2005-01-1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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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마르지 않는 감독 있으면 나와 봐!
    ”당구 코치 정도가 아닐까?” 지난 7월24일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명성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빈소에 다녀온 몇몇 코치들은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 스트레스로 화병을 얻지 않는 것은 당구 지도자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당구 종사자들 역시 ‘어설픈 소리 말라’며 화를 낼지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아마추어 종목과 달리 프로스포츠로 자리를 굳힌 야구·축구 등 이른바 ‘메인 스포츠’의 수장들이 겪는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가 가장 화병에 걸릴 염려가 적을까’를 화두로 나눈 코치들간의 대화에서는 테니스 코치도 거론되었다. 그러나 예절을 중시하는 테니스의 특성상 코트 바깥에서 소리조차 못 지르고 해당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봐야 하는 심정 또한 만만치 않다. 수영이 스트레스와 가장 상관없지 않느냐는 주장에는 물 속의 선수에게 작전 지시를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코치들의 부담이 반론으로 제기되었다.

    올림픽을 앞둔 아마종목 국가대표팀의 감독들은 상당수가 대회를 앞두고 병원 신세를 진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국제대회에서의 메달, 그것도 금메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나라의 괴이한 풍토가 만들어 낸 해프닝임에 틀림없다. 결론부터 내리면 승부 가리는 일을 책임지는 모든 이들은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것이 아닐까.

    지난 3월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작업장에서 숨진 사람은 모두 2945명. 이 가운데 고 김명성 감독의 사망 원인으로 알려진 스트레스성 심근경색, 뇌혈관과 심장질환 계통의 사망자가 전체의 53%인 1547명이다.

    꼭 경기장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일어나는 생존을 건 승부는 모든 이들에게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피 말리는 갈림길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워 물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특히 인기를 먹고 사는 스포츠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프로스포츠의 특성 때문에 암흑 세계로 몰고간 훌륭한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야구를 살펴보자. 현역 코칭 스태프로는 임신근 쌍방울 수석코치가 1991년 9월17일 스트레스로 숨진 바 있다. 임코치는 당시 전주구장에서 쌍방울-OB전 직전 가슴 통증을 호소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원인은 심장마비. 가족은 고인이 평소 심장병 증세를 보인 적이 없었으며 늘 건강했다고 말해 주위에선 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당시 신생팀인 쌍방울이 하위권(시즌 6위로 마감)을 맴돌아 코칭 스태프로서의 심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피마르지 않는 감독 있으면 나와 봐!
    지난 97년 6월 당시 삼성의 백인천 감독은 LG의 조 알바레스 코치와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잖아도 LG와 부정배트 시비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진 백감독은 이때 뇌에 이상 증세를 보여 39일 간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결국 자진 사퇴한 백감독은 침술 등 한방 치료로 기력을 회복했으나 “다시는 현장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현재는 그라운드 바깥에서 관전평을 쓰는 정도다.

    99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본 한화는 시즌 중반 팀이 연패에 빠지자 이희수 감독이 오른쪽 안면근육이 마비되는 증상을 보였다. 김명성 감독의 사망 소식에 접한 뒤 자신도 남은 수명이 기껏 10년 이내가 아니겠느냐던 두산 김인식 감독은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김감독의 치아는 모두 의치. 긴장하면 이를 악무는 버릇 탓이다. 시즌 초반 꼴찌를 달린 LG호를 맡은 김성근 감독은 최근 왼쪽 머리 한 부분이 동그랗게 빠지는 원형 탈모증을 겪고 있다.

    고 김명성 감독은 평소 애주·애연가로 잘 알려졌다. 말술도 마다하지 않고 날마다 벌어지는 승부 탓에 연일 줄담배를 피우곤 했다. 야구 감독들이 대부분 에세(esse) 등의 얇은 담배를 즐겨 피우는 데도 이유가 있다. 줄담배는 피워야겠는데 두꺼운 담배를 입에 연신 물면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얇은 담배라는 것이다.

    롯데 관계자들은 “평소 차(茶)에 관심이 많은 김명성 감독이 왜 개인의 체력 관리에는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현역 시절 체력에 대한 과신이 김감독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다. 실제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현역 시절과 달리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다. 개인 운동을 즐길 정도로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김명성 감독이 유일하게 즐긴 것은 사우나 정도였다.

    야구가 가장 스트레스 많은 종목이라고 단언하면 분명 축구인들의 반발이 강력할 듯하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야구가 동(動)과 정(靜)을 절묘히 섞는 종목이라면 축구는 쉴새 없는 스포츠다. 감독은 90분 내내 선수와 공의 이동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끊임없이 작전을 고민해야 한다. 이 와중에 소리도 지르고 분노도 표출한다. 이 압박감이 어디로 가겠는가.

    전남의 이회택 감독은 지난해 얼굴 마비증세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지난해 8월 부산 대우 신윤기 감독은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위장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또 고재욱 울산 감독과 박성화 포항 감독은 팀 부진이 원인이 되어 자진 사퇴했다. 성적에 대한 압박을 모두 이기지 못한 결과다. 이들은 사퇴 뒤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농구의 경우 대부분 감독들이 위장병을 달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원정경기, 승부에서 패하든 이기든 간에 술을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잊으려 한다. 농구인들의 폭음은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김동광 감독과 최인선 감독은 보드카 같은 독주를 마시는 걸로 스트레스 탈출 통로를 삼는다. 신선우 감독도 신경계 질환을 몸에 달고 살고, 유재학 감독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머리 한가운데 머리카락이 빠진다.

    고 김명성 감독은 숨지기 전, 성적 부진으로 인한 비난 여론이 쏟아질 때마다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인터넷 등 미디어 매체의 다양화로 조금만 잘못하면 성난 비난의 글들이 무서우리만큼 쏟아진다. 사실 국내 스포츠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부담은 무척 크다. 프런트가 체계화한 외국의 경우 감독은 그라운드의 지도자기만 하면 된다. 트레이드나 각종 선수 관리에서 감독이 시어머니마냥 일일이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철저하게 역할 분담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네 감독들은 사정이 다르다. 기자도 직접 상대해야 하고 팬 클럽의 항의도 몸소 막아야 한다. 하루 일과 중 절반 이상이 ‘비난에서의 회피’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러나 해마다 이러한 일들이 프로 지도자들에게 발생하지만 정작 막을 방법은 없다. 김인식 감독은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묵묵히 가는 수밖에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오케스트라 지도자와 함께 ‘사나이로 태어나 한번쯤 해봐야 할 직업’으로 여겨지는 게 바로 프로야구 감독 아닌가. 프로 스포츠에서 승부 지상주의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은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 할 수 있는 충고는 술·담배를 줄이고 평소 러닝 등으로 운동을 습관화하라는 정도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프로스포츠 지도자들의 서글픈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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