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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와티, 군부의 ‘얼굴 마담’ 될라

인도네시아 정권교체 주도, 철권통치 조종 가능성 … 시민들 “대통령 바뀐 게 무슨 소용”

  • < 자카르타=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메가와티, 군부의 ‘얼굴 마담’ 될라

메가와티, 군부의 ‘얼굴 마담’ 될라
동남아시아에 정치변혁이 잇달아 이뤄지고 있다.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것과 거의 같은 상황이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다. 뇌물수수혐의로 의회의 탄핵을 받은 압둘라 와히드(60)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4, 여) 부통령이 그 자리에 올랐다. 이번 정치변혁의 막후에는 군부와 경찰이 있다. 이들은 군부를 개혁하려는 와히드를 버리고 메가와티를 지지했다. 수하르토 철권통치 이래 전통적으로 강한 군부의 입김이 다시 살아날 조짐이다.

자칫 군부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메가와티 신임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다. 인도네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다. 자카르타 현지에서 만난 시민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린 상관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바뀐 게 무슨 소용 있나”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의 최근 정치변혁은 생활고에 지친 자카르타 시민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와히드 퇴진은 수구세력의 음모?

인도네시아 정치권은 수하르토 체제 몰락 이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변혁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급속히 이뤄졌다. 지난 7월23일 새벽 인도네시아 최고의결기구인 국민협의회(MPR)가 와히드 탄핵을 결의함과 동시에 메가와티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취임선서가 잇달았다. 메가와티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 뒤에도 사흘 동안 메르데카 대통령궁에서 버틴 와히드 대통령은 7월26일 미국으로 떠났다. 신병치료지만 사실상 망명길이었다. 와히드가 떠난 날, 함자 하즈(민주개발당)가 이틀에 걸친 3차 투표 끝에 경쟁후보인 아크바르 탄중(골카르당)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메가와티-하즈 체제가 출범했다.

MPR 건물 안에서 부통령 선거를 진행하는 동안 수백 명의 대학생들은 플래카드를 펼친 채 시위를 벌였다. 핸드 마이크를 들고 시위를 이끈 한 대학생은 “골카르당 출신을 비롯한 수구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목청을 높였다. 골카르당의 아크바르 탄중이 부통령에 당선되면 다시금 구체제로 돌아간다는 시각에서다. 와히드 전 대통령이 대통령궁을 떠날 때는 2000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일대 혼잡을 이루었다. 그들은 “구스! 구스”를 외쳤다. ‘구스’는 와히드 대통령의 별명이다. 그곳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와히드 대통령은 군부와 골카르당 등 수하르토 수구세력의 음모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골카르당은 수하르토 체제를 뒤받쳐 온 구집권당이다.



대통령궁을 떠나면서 압두라만 와히드는 “나는 돌아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와히드는 메가와티 정권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커져 인도네시아가 수하르토 시절로 뒷걸음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비록 부패 혐의로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와히드는 집권 21개월 동안 나름대로 민주화를 위해 힘써온 게 사실이다. 지난 99년 10월 메가와티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오른 와히드는 취임 초부터 수하르토 일가와 측근들에 대한 사법처리와 그들이 부정축재한 재산의 환수, 수하르토 시절에 자행한 각종 인권 침해사건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관심을 보여왔다.

메가와티, 군부의 ‘얼굴 마담’ 될라
수하르토 장군을 정점으로 한 인도네시아 군부는 1965년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로 무려 50여 만 명을, 그로부터 10년 뒤(1975년)에 동티모르(East Tior)를 침공한 뒤로 10여 만 명을 학살했다. 99년 8월 독립을 선택한 동티모르 주민투표 직후 벌어진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의 유혈난동과 방화에도 인도네시아 군부가 음으로 양으로 개입한 바 있다. 와히드는 동티모르 유혈사태와 관련해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군부 실력자 위란토(당시 정치사회안보 조정장관) 장군을 면직함으로써 인도네시아 군부의 힘을 빼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집권 반 년 만에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와히드는 개혁다운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와히드 집권 시절 인도네시아 군 수뇌부는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연루한 것으로 알려진 각종 인권 침해사건들에 대한 진상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번 정치변혁 과정에서 군부가 메르데카 대통령궁 가까이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메가와티 부통령의 집권에 힘을 실어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따라서 와히드가 물러남으로써 군부의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은 다시 살아날 전망이다.

군부의 재등장과 관련해 메가와티는 정치 지도력에서 한계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메가와티가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의 집권과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군부에 업혀 지낼 것이란 얘기다. 심하게 말하면 군부가 뒤에서 조종하는 꼭두각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메가와티는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 국정운용의 가닥을 제대로 잡아나가기엔 지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치·경제적으로 흔들리는 인구 2억의 인도네시아를 이끌어 나갈 만한 경륜이 있느냐는 의심도 받아왔다.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메가와티가 국정운용의 기본이라 할 정치·경제·국방 분야에서 제한된 이해밖에는 없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껏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하고, 소수의 보좌진에게 의존해 왔다.

메가와티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군부를 비롯해 수하트로 체제 아래서 특권을 누려온 세력의 ‘얼굴마담’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가능하다. 수하르토 장기독재로 몸집을 불려온 군부에 대한 개혁과 물갈이는 메가와티 정권 아래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메가와티는 군부 장성들과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녀의 민주투쟁당에도 퇴역장성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메가와티를 등에 업은 군부는 그동안 와히드 정권에서 자제해 온 목소리를 높이면서, 아체 지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곳곳의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와히드는 분리 움직임에 대해 유혈을 부를 무력진압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중시해 왔다.

그 때문에 동티모르는 와히드 퇴진 및 메가와티와 군부의 등장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알려진 바처럼 동티모르는 1975년부터 시작한 인도네시아 군부의 강권통치에 저항해 사나나 구스마오의 지도 아래 숱한 희생을 치러오다 1999년 마침내 인도네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현재 유엔의 현지 기관인 동티모르 유엔과도행정기구(UNTAET)의 보호령 같은 처지인 동티모르는 오는 8월 말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을 준비중이다.

필자가 동티모르에 머문 기간(7월26~30일)에도 수도 딜리를 비롯한 지방의 작은 마을 곳곳에서 각 정당 후보자들의 선거유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해 신생국가로 나아갈 방향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며 한 표 지지를 호소했다. 동티모르는 제헌의회가 만든 헌법과 권력구조에 따라 2002년 봄까지는 대선을 치르고 정부를 구성한다는 일정이다. 현재로선 그동안 대인도네시아 투쟁을 이끌어 온 구스마오가 대통령에 뽑힐 전망이다.

문제는 동티모르 사람의 시각에선 인도네시아의 정권 변혁이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와히드 전 대통령은 동티모르 독립을 당연한 것으로 보았고 신생국가 동티모르를 준비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와는 달리 메가와티 신임 대통령은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 주권 아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도네시아 독립의 아버지라 일컫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딸인 그녀는 수카르노와 같은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정치노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메가와티, 군부의 ‘얼굴 마담’ 될라
메가와티는 99년 8월 동티모르 독립이냐, 인도네시아 잔류냐를 묻는 주민투표 당시부터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에 바탕해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영토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또 그녀가 당수로 있는 민주투쟁당에는 악명 높은 민병대 지도자 유리코 구테레스가 당 청년조직의 간부로 활동중이다. 최근 자카르타에서 열린 민주투쟁당 집회에는 동티모르 대표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동티모르 사람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동티모르의 차기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외교의 간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96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 두 사람은 메가와티가 새 대통령에 뽑힌 지난 7월24일 공동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성명에서 두 사람은 메가와티를 ‘동티모르의 친구’라고 불렀으나, 그동안 동티모르 독립에 호의적인 와히드의 퇴진에 유감을 나타냈다. 메가와티 정권이 동티모르에 신생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경우 동티모르는 와히드 정권 당시 생각하지 못한 장애물에 부딪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통령 시절의 메가와티는 자카르타를 방문한 동티모르 지도자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동티모르의 유엔과도행정기구(UNTAET)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거절해 왔다.

메가와티 신임 대통령이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경제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97년 말부터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지금껏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97년 이래 현지 통화인 루피아의 가치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97년 1월 대비 통화가치 등락률은 마이너스 43%). 수하르토가 물러난 뒤인 2000년 4.8%의 성장률을 보이며 오르막길을 탄 인도네시아 경제는 올 들어 와히드 뇌물수수 혐의를 둘러싼 정치위기 탓에 다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S&P는 인도네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낮추기에 이르렀다.

터키·아르헨티나와 함께 인도네시아는 현재 지구촌의 3대 경제 불안국으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부실은행 정리 등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는 점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구제금융 50억 달러 지급을 미루어 왔다. 메가와티 정권은 따라서 부실기업과 은행들을 정리해 IMF에게서 구제금융을 받아내는 경제개혁 작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지도력에서 의심 받는 메가와티다. 그런 그녀가 와히드 축출에 협조한 각 정파들을 아우르고 정치안정을 이루는 한편, 경제불안의 늪에서 2억 인구의 인도네시아를 구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전망이 불투명하다.



주간동아 2001.08.09 296호 (p46~48)

< 자카르타=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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