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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주5일 근무제… 당신의 삶이 바뀐다

짧고 굵게… 우린 벌써 그렇게 일한다우

국내에도 주 5일 근무 기업 많아… 자기계발·취미활동 ‘꿀맛 같은 매주 연휴’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짧고 굵게… 우린 벌써 그렇게 일한다우

짧고 굵게… 우린 벌써 그렇게 일한다우
먼 나라 얘기로만 여겨온 ‘주 5일 근무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어쨌든 월급쟁이 입장에선 반갑고도 신나는 일이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맞을 것 또한 근로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매주 이틀 연휴를 즐길 수 있는 근로환경은 가히 사회 전반에 걸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올 전망. 지난 89년 법정 근로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현행)으로 단축된 바 있지만, 평일 근로시간을 줄였을 뿐이어서 사실 근로자들의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해 온 일부 기업 근로자들의 의식과 생활문화 패턴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 7월27일 소화제 ‘훼스탈’로 유명한 ㈜한독약품 음성공장(충북 음성군 대소면). 이곳 주사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김상진씨(30, 여)는 여가를 계획적으로 활용해 자기계발에 성공한 케이스다. 지난 95년 서울 상봉동에서 음성으로 공장을 이전한 직후 입사한 김씨는 입사 7년차. 검도 4단인 그는 예전 주 6일 근무를 하는 제약사에 3년간 근무했지만 한독약품으로 옮긴 직후 주말 연휴를 이용, 부산의 대한본국검도협회에서 연수를 받아 1년 만에 사범 자격증을 따냈다. “개방적이고 여가계획 짜는 걸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겐 주 5일 근무가 훨씬 적합한 것 같아요.” 아직 미혼이지만 김씨는 결혼 후에도 계속 근무할 생각이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아벤티스사와의 합작기업인 한독약품이 노-사합의에 의해 주 5일 근무로 전환한 때는 지난 88년 11월. 이전에도 토요 격주휴무(매월 1·3주)를 실시한 이 회사는 98년부터는 서울 본사와 전국 지점(영업소)의 전 직원에까지 주 5일 근무를 확대 시행중이다.



한독약품의 근무시간은 엄밀히 따지면 주당 40시간보다 조금 많은 주 41.5시간. 토요일 근무를 평일에 고루 분산했다. 물론 일이 몰릴 때는 생산라인의 추가 가동이 불가피하지만 이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고 일부 직원만 작업에 참여한다.

윤병호 부공장장은 “노사의 동반자적 인식이 제도 시행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 의약품 제조는 최소 8시간 이상의 연속공정을 요하는데 작업시간이 4시간에 지나지 않는 토요일에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주 5일 근무제 도입의 동기를 설명했다. 요컨대 일하는 시간보다는 일의 효율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제도 시행 후 일부 직원 사이에 금요일 낮부터 ‘반공일’(半空日)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생산직의 경우 어차피 평일 작업량이 늘 일정하므로 생산성 측면에선 지장이 없다는 자체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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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노조사무실에 걸린 7월중 계획표는 이런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14일 토요일, 15일 일요일, 16일 단체휴가(샌드위치데이), 17일 제헌절’. 210명의 공장 직원은 최근에도 이처럼 나흘 연휴를 즐겼다. 작업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결코 쉴 수 없는 연휴다. 직원 중엔 연휴 때 일용직 건설노동 일을 체험삼아 해보는 직원까지 있다.

근속 27년째인 윤종순 노조위원장(54)은 “주 5일 근무 초창기엔 토요일을 무료하게 느낀 적이 많았고, 여가를 즐길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 다소 애로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며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하지 않으면 습관적인 늦잠꾸러기가 되기 쉽다”고 밝힌다. 때문에 한독약품은 토요일에 주로 이뤄지는 산악회 등 직원 동아리 활동에 일정한 지원을 해준다.

한독약품의 주 5일 근무제 도입은 제약업계는 물론 다른 국내 기업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조기 시행 사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주 5일 근무는 더 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다. 현재 주 5일 근무제 도입 기업의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상당수 외국계 기업이나 내·외국 합작기업들은 주 5일 근무를 시행중이다.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주 40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주 5일 근무제는 아니지만, 직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주 42시간 전후로 근무하는 다소 변형한 형태의 주 5일 근무를 실시중인 곳이 많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30여 개 중 30여 개 합작회사 대부분이 주 40시간 근무를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단위노조들이 속한 사업장 중 주 5일 근무를 실시중인 곳도 한-일 합작회사인 한국오리베스트(지난해 4월 시행)를 비롯, 20여 곳에 이른다(민주노총 자체 집계). 역시 외국계 기업이 다수를 점하지만, 이 중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인 동양에레베이터와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유성기업은 국내 ‘토종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노사교섭을 통해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를 도입했다. 동서공업 등 올해 임단협에서 주 5일 근무를 합의한 기업도 적지 않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주 5일 근무제 도입 촉구 총파업을 벌인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런 기업들이 느는 경향을 보인다”고 귀띔한다.

주 5일 근무는 아니지만 격주휴무를 실시하는 기업도 압도적 다수를 점한다. 지난해 6월 월간 ‘현대경영’의 ‘2000년 100대 기업 토요휴무제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73개 업체가 월 1~4회의 토요 휴무를 실시중이다. 순수 국내 제약사들의 대다수도 토요 격주휴무제를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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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통계는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한다. 경총 등 재계에서는 아직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주 5일 근무 기업의 직원 사이에선 보편적 정서로 자리잡았다. 취재에 응한 한 외국계 기업 직원은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뭐 대단한 일이냐”며 심드렁해할 정도다.

비만치료제 ‘제니칼’로 주가를 올리는 한국로슈 제니칼 마케팅 부서의 이혜규(34, 여) 과장도 그 중 하나다. 프로덕트 매니저인 그의 주업무는 제품 언론홍보와 시장분석. 업무의 30% 가량이 외근이지만 어쨌든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6~7시에 퇴근한다. 94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4번째 직장이지만 그는 지금껏 주 6일 근무를 해본 적이 없다.

“외국계 회사만 다녔어요. 주 5일 근무 여부가 항상 입사지원시 주 고려사항이었죠. 주 6일 근무하는 회사는 지원대상에서 언제나 제외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주말 연휴 이과장의 관심사는 가족. 대학교수인 남편(39)과 토요일 오전을 함께하며 주중에 못 다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가끔 남편과 토요일 오전 조조할인 영화를 보러 다니다 보니 초등학교 2학년인 외동딸(9)이 “주 5일제 수업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는 투정 아닌 투정까지 부릴 정도다.

하지만 주 5일을 근무하는 이런 개별 기업 근로자들의 생활주기 변화를 뛰어넘어 주 5일 근무제의 전면 실시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한 구체적 연구결과는 아직 나온 바 없다. 몇몇 연구 보고서들은 주로 여가생활과 관련한 여행·문화·운송업종 등이 수혜를 보고, 소비증가로 인해 경제성장이 기대되며 국민 생활패턴이 선진국형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개략적 전망을 펼쳐 보일 뿐이다.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사회적 효과 분석’ 연구를 진행중인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연구위원은 “일과 직장 중심의 생활문화가 가족중심 문화로 바뀌고 한정된 소득 중 여가활동과 자기계발에 지출하는 비용이 증대할 것이다”면서도 “뉴트렌드의 전모를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삶의 질이 향상할 것은 자명하지만 그 양태는 수백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어 점치기 어렵다는 것.

향후 전망이야 어떻든, 정부는 연내 입법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한인 오는 8월 말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간 세부 쟁점사항에 대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정부가 자체 법안을 마련해 늦어도 금년 11월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드디어 이르면 1~2년 뒤 일 많이 하는 게 미덕인 ‘주 6일 근무’의 오랜 관행이 깨지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가 노동문제냐, 노사문제냐를 따질 시기는 지난 셈이다.

한국의 평균 실근로시간은 주 47.5시간(2000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유일한 ‘주 6일 근로’ 국가다. 곧 주어질 7.5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여백’의 ‘채색’은 이제 ‘근로자’의 몫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되었다.





주간동아 2001.08.09 296호 (p38~40)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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