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2001.08.09

태고의 신비 ‘청송 꽃돌’이 시든다

90년대 중반 이후 마구잡이 채굴로 원석 고갈… 적절한 보호대책, 체계적 연구 시급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5-01-14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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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의 신비 ‘청송 꽃돌’이 시든다
    ‘이이잉~’ 날카로운 그라인더 소리에 잠자고 있는 꽃들이 깨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갈아낼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화려한 무늬는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도 영락없는 한 송이 꽃. 노란 해바라기, 색색의 국화, 수줍은 모란꽃…. 꽃 무늬가 아로새겨진 이 암석들은 ‘돌에 핀 꽃’이라 하여 이름도 꽃돌[花紋石]이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 주왕산 국립공원 자락에 있는 이 마을의 옛 이름은 ‘꽃내리’다. 마을 주민은 뒷산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세상에 나온 꽃돌을 보고 지은 이름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왕산 정상 왕거암에서 시작해 태행산 줄기를 따라 괴정리 뒷산에서 주로 발견되는 돌들의 꽃무늬는 보는 이의 눈길을 단번에 잡아 끌 만큼 뚜렷하다.

    12년 전 우연히 접했다가 흠뻑 반하여 서울에서의 생업까지 접고 청송에 내려와 꽃돌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김승직씨(51, 꽃돌코리아 대표)는 꽃돌의 매력은 다양한 아름다움에 있다고 말한다. “종류와 색깔에 따라 60여 종으로 나눕니다. 무늬와 흡사한 꽃의 이름을 따라 종류를 나누고요. 그러나 같은 종류라도 똑같이 생긴 돌은 없지요. 마치 진짜 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한 꽃무늬 국제적인 명성

    태고의 신비 ‘청송 꽃돌’이 시든다
    물론 이러한 돌들을 주왕산에서만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나가사키나 후쿠오카 등지에서도 같은 종류의 돌이 발견되고, 우리 나라의 경북 상주와 전북 무주, 부산 황룡산 등지에서 발견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상암(球狀岩) 역시 학술적으로는 비슷한 종류다. 그러나 매장량과 무늬의 화려함에서 청송 꽃돌은 단연 독보적이라고 전문가들은 확언한다. 고려대 김형식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지질학에서 선두 국가인 러시아 학자들이 96년 방한해 탐사활동을 벌일 만큼 청송 꽃돌의 가치는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학자들의 열성은 남다른 바가 있어 정기적으로 꽃돌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 김승직씨에 따르면 청송 꽃돌의 존재를 최초로 국내외에 공식 소개한 것 역시 한 일본인 수석 연구가였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꽃돌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대략 4억~5억 년 전 마그마가 지층에 스민 뒤 냉각하여 결정(結晶)을 이루는 과정에서 열이나 다양한 광물질이 녹아 있는 용액에 의해 변질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측된다는 정도다. 변질을 일으키는 요소들의 작용방식에 따라 여러 무늬를 가진 동그란 ‘꽃핵’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양한 무늬의 구체적인 생성과정에 대해서는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원석 사이사이에 박혀 잠들어 있는 꽃핵은 수집가들의 손에 이끌려 빛을 만난다. 일단 품질등급 확인을 거친 원석은 72mm 대형 전기톱으로 부위별로 절단해 꽃핵 찾기, 구도 잡기, 연마 과정 등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종류에 따라 적게는 10단계, 많게는 20단계의 가공 작업은 그 자체가 상당한 숙련을 요하는데다 작업자의 미적 판단에 따라 돌의 가치 역시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1급 전문가는 10명 내외로 손꼽히는 고난도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단장을 마친 꽃돌들은 원석의 가치와 가공 수준에 따라 낮게는 1만 원선부터 높게는 수백만 원대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최상품인 ‘방울형태 금국화석(金菊花石)’의 경우 수천만 원에 팔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고의 신비 ‘청송 꽃돌’이 시든다
    그러나 이렇듯 높은 가치를 지닌 꽃돌이 위기를 맞았다고 청송 주민은 말한다. 알려진 광맥이 모두 고갈해 지금은 생산되는 원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진보면 신촌꽃돌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풍기씨(42)는 “워낙 한정된 원석을 통제 없이 캐내다 보니 채산성 있는 맥은 모두 채굴이 끝나 손을 놓은 상황이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꽃돌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당국에서 적절한 보전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 매장량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청송군 관광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군뿐 아니라 서울·전북 등 다른 지자체까지도 나서서 박물관 설립 등의 보전대책을 논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최소 10단계 가공 거쳐 작품으로

    적절한 보호정책이 없는 까닭에 꽃돌의 가치를 입증하는 체계적인 학술연구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려대 김형식 교수는 “수년 전부터 주시는 하였지만 사회적 관심이 워낙 적어 다른 연구 과제에 밀리는 상황이다”며 “적절한 연구 지원이 없는 한 섣불리 덤벼들기 어렵다는 점이 관심을 가진 지질학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김교수는 “꽃돌이 정식으로 보호 받게 되면 채굴과 판매에 제한이 생길 것을 우려한 지역 판매업자들의 목소리에 지자체가 휘둘린 측면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송에서 안동으로 나오는 지방도로변의 한 꽃돌 판매점에는 “조물주가 한반도에 내린 축복이다”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안내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축복이 그러하듯, 꽃돌 역시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금세 없어지기 쉬운 ‘제한된’ 축복일 따름이다. 몇몇 호사가들이나 외국 수집가들의 장식장으로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민과 학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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