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2001.08.09

“개혁 하면 민주당이, 안 하면 나라가 망해요”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 “노무현 고문과는 선의의 경쟁, 국민의 관심은 인사쇄신”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입력2005-01-14 15: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개혁 하면 민주당이, 안 하면 나라가 망해요”
    요즘 민주당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개혁후보 연대론’ 혹은 ‘개혁후보론’이다.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해 개혁세력과 대선주자들이 ‘민주개혁연대’를 결성하고, ‘개혁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이 주장의 일차적인 대상자는 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 고문. 그 중 한 사람인 김근태 최고위원을 만나보았다.

    -지난 7월21일 “당내 대권구도는 2파전이 아닌 3강 구도로 갈 것이다”고 주장했는데, 그 같은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인가.

    “국민과 당원이 이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구태정치, 즉 분열적 지역주의, 1인 보스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하라는 것 등이다. 세계의 정치 흐름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흐름이 아직은 전문가 집단이나 지식인 사이에서만 있는 듯하지만, 대선이 본격화하면 이들의 ‘발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할 것이다.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가 여러 군데서 나오고 있다. 경선 구도가 재미있으려면 몇 사람의 후보가 있어야 한다는 관전자적 시각도 한몫하는 듯하다.”

    -전문가 그룹이나 지식인 사이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주장의 배경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들 집단이 관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머리를 드는’ 분위기다. 월간 ‘신동아’가 99년 초에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내가 (자질면에서) 1등으로 나왔고, 99년에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 조사에서도 2등이었다. ‘이슈투데이’라는 전문가 그룹 포털사이트 조사에서도 고건 서울시장과 1% 차이 나는 2등이었다.”



    -그런데도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도가 1%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1, 2위를 달리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우리 당의 이인제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다. 아무도 이름을 대주지 않고 그냥 지지도 조사를 하면 인지도 조사가 되어, 일반 시민은 대선 후보만 기억한다. 그러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노무현 고문과의 연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어떤 입장인가.

    “노고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대권 양보론을 얘기했다(노고문은 ‘민주당에서 너도나도 경선에 나서 당이 분열하는 상황이 오면 내가 희생해 중재할 것이다’며 ‘특히 김근태 위원이 후보로 나서겠다면 나는 포기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고맙지만, 어떤 정치인이든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원할 것이다. 노고문의 말은 자신의 개인 의지는 있지만, 상황을 망치지 않겠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노고문을 존경하고, 깊은 신뢰를 보낸다. ‘개혁의 힘’을 만드는 것이 과제이므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다. 후보 단일화는 다음의 문제다. 국민이 그렇게 판단하고 요구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개혁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그런 단계다.”

    -지난 87년 대선 때처럼 민주화 세력의 분열(김대중과 김영삼의 독자 출마)의 재판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그때는 불행하게도 당도 두 개로 나뉘고, 대통령 후보도 두 명이 나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정책과 정치노선이 비슷해 결선에서 따로 가면 두 사람 모두 방해가 된다. 87년의 ‘재난적 상황’은 없을 것이다.”

    -천정배 의원이 말한 ‘민주개혁연대론’에 대한 입장은.

    “개혁세력의 힘이 결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니까 함께 개혁에 나서고, 국민의 개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천의원이 부산에서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은 특정 지역의 축사이고, 부산이 노고문의 정치적 고향이라 그런 것이지 다른 인물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

    -정풍파동을 거치면서 정동영 최고위원보다 개혁적 이미지가 뒤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위원이 많은 국민에게 인지도가 높고, 많은 기대를 얻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김근태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봐야 한다. 집권당이 너무 소란하면 국민은 방황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당과 정부가 그래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내부에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당사자들을 만나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잘 안 되었다. 생활에 바쁜 시민에게는 이런 내 모습이 잘 안 보였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

    “개혁 하면 민주당이, 안 하면 나라가 망해요”
    -당정쇄신에 대해 “현재 시점은 부적절하다”고 여권 핵심부 의중에 맞춘 듯한 발언을 했는데, 시점이 늦어지면 애초 당정쇄신의 명분과 효력이 희석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점이 있다. 타이밍이 맞아야 국민 마음을 모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이 시점이다’고 못박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탄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정쇄신은 현재의 정쟁(政爭)이 좀 완화한 다음인 정기국회 이전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범위와 시기 문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그 범위는 국민이 원하는 수준이라야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런 분위기를 통해 국민과 함께 갈 수 있다.”

    -당정쇄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현재 국민의 요구는 ‘개혁은 좋은데, 좀 잘하라’는 것이다. 각 이익단체나 이해관계를 잘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개혁 당사자들이 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당신들은 무슨 손해를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항에 걸맞은 인물들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 국민의 관심은 인사쇄신이다.”

    -개혁정책이 성공해야 차기 대선도 성공할 수 있고, 아울러 김위원 자신도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는 ‘개혁 성공 연계론’을 주장해 왔는데….

    “개혁을 지속하면 민주당이 망할 것 같고, 개혁을 중단하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 개혁을 중단하면 외국인 투자가 끊긴다. 외환위기는 없겠지만 다른 방식의 혹독한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 각 계층의 주장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쳐서는 안 된다. 국민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과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구조조정이나 개혁을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충분하지 못하다. 아울러 ‘개혁주체인 민주당과 국민의 정부가 뭘 희생하고 있느냐’는 질문 앞에 당당해야 한다. 이게 당정쇄신의 핵심이 되어야 개혁이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며, 경제가 다시 전진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변협 결의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했지만, 내용을 보니 편협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해 얘기해야 하는데, 근거 제시가 하나도 없다. 논리적 설명 없는 일종의 성명서를 보는 듯해 법률가들이 모인 단체라는 성격에 맞지 않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변협의 역사성에서 볼 때도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법치가 아닌 인치’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인간의 자의성에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시스템, 법과 원칙을 만들고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권위가 제도적으로 너무 강하다. 하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절에는 대통령을 다들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일상적인 안줏거리’가 되었다. 인치가 아니라 법치로 가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추진중인가.

    “서울 답방은 김정일 개인의 약속이 아니고, 온 겨레에 대한, 전 세계에 대한 약속이다. 이것이 지켜지길 바란다. (남북이) 서로 협력하려면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답방이) 다소 불투명해지는 것이 걱정이다. 양대선거 때문에 내년에 답방이 이루어진다면 통제할 수 없는 정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을 김위원장에게 설명도 하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국가보안법에 하도 시달려 금강산관광도 가지 않았다. 그런 나로서는 좀 용기를 내서 한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열상이 정말 심각하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입장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고, 더 있어야 한다. 입장 차이와 분열은 다르다. 분열은 서로 적개심을 갖도록 고취시킨다. 홍위병론을 비롯해 색깔론과 지역주의 등으로 정치권이 이를 고취시킨다. 함께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사람으로 분열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이는 폭력사태를 부를 수도 있고, 파시즘처럼 위험한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절제하지 않으면 국민이 혼내야 한다.”

    -지난 6월과 7월 몇 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통령과 의견을 나눴는데 대선 출마와 관련한 얘기는 없었는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

    -대선후보로 김중권 대표나 한화갑 이인제 위원, 노무현 고문을 평가한다면?

    “네 분 다 지도력과 책임감이 있는 분들이다. 이인제 위원은 정치적 결단력이 뛰어나고 타이밍을 잘 포착하는 것 같다. 노무현 고문은 개인적 야심이 있지만 야심 때문에 개혁과 민주주의에 부담을 주고 혼선을 초래할 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좋은 친구’이자 분열적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는 ‘시대의 의인’이라고 생각한다. 김중권 대표는 실무적 능력이 뛰어나다. 회의할 때 보면 매끄럽고 공감대를 부를 수 있도록 이끄는 능력이 훌륭하다. 한화갑 위원은 개혁 전도사이자, 오늘의 김대통령이 있게 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는데도 이를 거만하게 자랑하지 않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정책 노선이 매우 합리적이고 온건하다. 이는 우리 정치에서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최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보여주는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소 실망스럽다. 이총재가 확고한 당 지도력을 보이는 것은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총재가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던 개혁적 성향이 지금은 과연 있는지, 철학이 뭔지, 원칙은 있는 건지 지식인 사이에서 의문제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렇다. 너무 정쟁지향적이지 않는지 의심스럽다.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이총재는 남북교류에 장애를 조성하고자 하는 부시 대통령이 등장하자 ‘우리 견해와 같다’고 동조했다. 사대주의적인 것 같고, 한반도 교류 및 협력에 반대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