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2001.07.26

롱런 향한 또 하나의 이정표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5-01-12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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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런 향한 또 하나의 이정표
    어느덧 한국 최강의 록밴드로 성장한 윤도현 밴드가 다섯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출범 때부터 다른 한 축에서 이 밴드의 색깔을 규정해 온 기타리스트 유병열이 신예 허준으로 바뀐 후 첫 앨범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이번에는 록음악의 무겁고 강인한 구심력은 한발짝 뒤로 물러선 대신, 기타는 보다 경쾌하고 산뜻한 톤으로 키보드나 가야금, 퍼커션 같은 게스트 연주와 화합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록밴드만큼 저주 받은 항목은 없다.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 넥스트를 제외한다면 단명의 연속이었다. 하향 평준화를 지도하는 공중파 방송의 지배논리와 오랫동안 상상력을 목졸라 온 검열과 각종 규제장치, 여기에 단단하지 못한 뮤지션들의 밴드철학이 더해져 언제나 단명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일관된 밴드 컨셉트로 다섯 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한 밴드라야 산울림과 송골매 정도니 한국에서 밴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 만하다.

    다섯 번째 앨범을 발표한 윤도현 밴드는 이 사실만으로도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더욱이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 마케팅을 통하지 않고 오로지 연간 200회 이상 콘서트를 강행군하며 하나둘씩 얻은 성과다. 비주류의 무기로 10만 장 이상의 판매액을 너끈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밴드로 성장하기까지 이들이 흘린 땀과 피는 이제 자랑스런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멈출 수는 없다. 윤도현 밴드는 아직 미완성 밴드다. 이들은 온몸으로 팀워크를 완성했지만 ‘역사적인’ 밴드로 부상하기 위해선 더 날카로운 통찰력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 능력, 사운드의 독창성을 연금해야 한다. 이 신작은 바로 그러한 전환의 문지방을 밟고 섰다. 전통적인 메탈 사운드의 카리스마를 포기하는 대신 모던 록의 섬세하고 몽환적인 기법을 대거 고용했다. 그러나 아직 그 섬세함은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고, 몽환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초월의 황홀경을 제공하기엔 힘이 부친다.

    리더인 윤도현, 벌써 서른에 접어들며 음악이력에 제2막을 열고 있다. 이례적으로 통기타 한 대만의 반주로 자신의 내면을 반추하는 ‘독백’에서 피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새벽이/ 정지해 있는 들풀과 어린 나무가/ 말하지 않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너무나 조용히 나를 어루만진다….’



    젊음의 힘으로 질주해 온 이 록 청년이 침묵과 정지에 눈뜨기 시작한 것일까. 그 정관(靜觀)의 혜안이 이들에게 가득 차 오르는 날, 우리는 아마도 가장 위대한 한국 록 밴드의 전범과 조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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