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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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말을 한다, 인류의 비밀을

작가 이윤기가 본 ‘그리스 로마 신화展’… “우리 문화도 그리스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 kwine@hitel.net

    입력2005-01-11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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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는 말을 한다, 인류의 비밀을
    정치 이야기 끝에, 문화 이야기 끝에,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묻는 우리 나라 사람을 가끔 본다. 미국인도 다를 것이 없어 기껏 시작한 진지한 논의 끝에 사람 맥 빠지게 “소 왓(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이라고 반문하곤 한다.

    공자님의 ‘논어’ 위영공(衛靈公) 편은 이런 사람을 꾸짖는다. “어쩌나, 어쩌나(혹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말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未知之何也已矣).”

    신화 읽기와 신화 다시 쓰기를 즐기는 나는 그리스 신화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인다. 우리가 그리스를 ‘희랍’(希臘)이라 부르면서도 “왜 그리스를 희랍이라고 할까” 하고 궁금해하지 않는 것도 그 나라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는 말을 한다, 인류의 비밀을
    그리스는 영어 이름이다. 그리스인은 저희 나라를 ‘헬라’라고 불렀는데, ‘희랍’은 헬라스의 한자 음역이다. 신학 대학에서 가르치는 ‘헬라어’는 바로 ‘그리스 말’이다. 신학도들이 헬라어를 배우는 것은 초대 교회의 성경을 바로 그리스어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는 우리가 그토록 기를 쓰고 배우는 유럽 언어의 뼈대가 되었다. 언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문화도 그리스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스인(정확하게는 마케도니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서기 전 4세기 인도 남부에 그리스계 식민국가를 세운 것은 너무나 분명한, 우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의 간다라 사람은 자기네들의 종교인 불교의 개조 석가모니의 석상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문화적 전통이 없어서 간다라인은 스투파(탑)를 조성했을 뿐 불상을 조성하지는 않았다. 불상 조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상이나 영웅상을 조성하는 풍습이 간다라로 들어오면서부터 생긴 새로운 문화 풍속이었다.



    신화는 말을 한다, 인류의 비밀을
    나는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를 떠올려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불교미술이 간다라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불교문화, 결국 우리 문화도 그리스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오는 주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전’의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 앞에 섰다. 헤라클레스는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쓰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스 앞에서, 대영박물관에서 본 ‘봐즈라파니’ 즉 ‘집금강신’(執金剛神), 바로 간다라에서 조성된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쓰고 손에는 벼락, 즉 금강을 든 금강역사 돋을새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가 우리 문화에 편입하는 사태는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점에 신화 관련 서적이 가까스로 깔리기 시작하는 신새벽 같은 이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제작한 진품 문화재를 서울 한복판으로 들여와 ‘그리스 로마 신화전’을 연 것은 참으로 경악할 만한 사태다. 이 사태가 내 생전에 닥치리라고는 꿈도 꾼 적이 없다. 서울에서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을, 나는 수만 달러나 들여 그리스로, 로마로 날아가 보고 왔다. 아무래도 ‘인류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인 것 같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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