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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현장

여주 뒤흔드는 ‘매향리의 굉음’

공군 공대지 사격장 40년 넘게 폭격 훈련 … 2만여 주민 난청, 신경불안 등 시달려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여주 뒤흔드는 ‘매향리의 굉음’

여주 뒤흔드는 ‘매향리의 굉음’
오전 10시30분. 부대 스피커를 통해 사이렌과 경고방송을 반복한 지 한참이 지났다. “곧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스피커 소리에 섞여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멀리 나지막한 항공기 엔진 소리가 들린다. 인근 전용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구분이 안 되는 기계음은 삽시간에 볼륨이 올라간다. 놀란 두 눈이 하늘을 뒤지지만 아직은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금세 커진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느낄 무렵, 멀리 검은 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순식간에 F-16임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날아온 전투기는 산등성이를 타고 정밀하게 고도를 낮춘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찢을 듯이 하늘을 뒤흔드는 전투기의 파열음은 꽤 멀리 떨어진 기자의 눈에도 충분히 공포감을 준다.

‘카카카카-!’ 전투기 날개 끝에서 무언가 움직였다고 느끼는 순간 강가에 자리잡은 삼각주에서는 뽀얀 화약 연기가 피어 오른다. 세워놓은 표적에서 몇 m를 채 벗어나지 않는 정확한 가격…. 흙이 날리고 자갈이 튄다. 20mm 공대지 기관포의 ‘투투투툭’ 하는 폭발음이 귀에 들어오는 것은 그 다음이다. 거리가 먼 만큼 소리는 늦게 닿기 때문이다. K-2 자동소총 소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다.

귀청을 찢는 전투기 … 매일 생난리

‘쿠아앙-!’ 사격장을 빠져 나가려고 고도를 높이기 위해 기운을 다하는 엔진 소리는 귀를 막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머리를 쩌렁쩌렁 울린다. 어느새 비행기는 기수를 올려 여주읍 방향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지만 한발짝 느린 소음은 계속된다. 소리가 잦아드는 것은 이미 비행기가 모습을 감추고 한참이 지난 뒤다. 밭일을 하러 나온 주민 박모씨(64)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건넸다. “무시무시하지요? 거의 생난리를 친다니까요. 날이면 날마다 벌써 40년인데 이건 도통 적응이 안 된단 말이요.”

여주 뒤흔드는 ‘매향리의 굉음’
경기도 여주군 공군 공대지 사격장. 1957년(공군측 주장으로는 61년)부터 40년 넘게 남한강 한가운데 위치한 공군의 항공사격 훈련장이다. 능서면 백석리 24만 평 규모의 삼각주에 자리를 잡았다. 날마다 반복하는 포탄 투하와 기관포 사격연습에 시달리는 주민의 수는 여주군 능서면·대신면·북내면 등 3개 면 2만여 명. 여주군청에서 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항공기 소음은 여주 읍내에서도 또렷이 들린다. 훈련장 소음 이외에 항로상의 소음 피해까지 감안하면 피해범위는 7개 읍·면 145개 리 6만여 명으로 늘어난다.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쿠니(Konn-ni) 사격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이곳 주민은 사격장을 ‘제2의 매향리’라 부른다.



사격훈련은 오전 내내 편대를 이루며 계속된다. 4대씩 묶인 편대 세 조가 30분씩 비행을 계속했다. 12시경에 잠시 잦아든 훈련은 오후가 되어 다시 시작되었다. 이날 오후에 주로 이루어진 훈련은 폭탄투하. 25파운드 연습용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들이 산등성이를 넘는다. 귀청을 찢는 항공기 소음은 오전과 똑같다. 훈련장 상공에 가까이 접근한 전투기들이 떨어뜨린 모의폭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다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박힌다. 화약을 장착하지 않은 연습용이기 때문에 폭발은 없지만 고속으로 떨어진 폭탄의 충격이 기자의 발 밑까지 전해졌다.

이곳을 찾는 항공기들은 수원·원주·청주·충주 등의 기지에서 이륙한 공군 소속 F-4, F-5, F-16 전투기들. 주민들은 오산 비행장에서 출발한 미군기도 상당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군측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 공군이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한다. 관할부대 관계자는 날씨가 나쁠 때와 밤 9시를 넘긴 밤에는 훈련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심각한 것은 훈련장에서 반경 3km 이내에 6개 학교(지도 참조)가 있다는 사실. 특히 능서면 능북초등학교의 경우 훈련장에서 직선거리로 500m가 채 못 된다.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장이 뚜렷이 보일 정도다. TV 시청이나 전화통화가 자유롭지 못하고 난청이나 신경불안 등의 증상이 만연한 주민의 피해상황은 매향리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여주 뒤흔드는 ‘매향리의 굉음’
“젖소가 죽어 나가고 우유량이 줄고, 그런 피해까지 일일이 얘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지 뭐. 사람이 이 동네 안 살려고 하는 게 제일 큰 문제야. 포탄이나 탄피가 튈까 무서우니까.” 지난 6월22일 발족한 ‘여주군 공군 폭격장 이전 대책위원회’ 구중회 위원장(78)의 말이다. 지금까지 사고로 인해 사망한 주민은 2명. 81년에는 농부 허모씨(당시 41세)가, 90년에는 여고생 강모양(당시 17세)이 야외에서 일을 하다 훈련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졌다.

상수도 보호구역인 이 지역에 날마다 쏟아지는 탄환 때문에 남한강 수계가 오염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천·여주 환경운동연합의 손지민 집행위원장(33)은 “정확한 상황은 실태를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중금속으로 인한 토양오염과 그로 인한 수질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환경부는 오는 7월 말부터 이 지역에 대한 오염실태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공군 역시 훈련장과 관련된 주민의 불만 제기에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난감해한다. 상당수 주민이 요구한 이전문제는 막대한 소요예산 때문에 불가능하고, 금전적 보상이나 토지 매입 같은 방안들도 아직 확정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이두희 감찰실장은 “민가가 없는 지역으로의 비행경로 설정, 비행고도 제한 등의 방법으로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며 “간접보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농번기 일손 돕기, 의료지원 등을 추진중이다”고 말했다. 특히 사격술이 정밀해 90년 이후에는 인명 피해가 발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환경오염과 관련해서는 정기적으로 폐탄 제거작업을 하므로 염려할 것이 없다는 해명이다.

저녁 7시. 이날은 평소보다 늦게까지 비행을 계속했다. 하늘에는 벌써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지만, 해가 진 바로 그 산봉우리를 넘어 다시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난다. 저녁 훈련은 탐색용인 듯 전투기는 별다른 사격 없이 훈련장 위를 지나 날아간다. 언덕 너머 직선거리로는 300m가 안 되는 집 앞에 나와 앉은 구중회 대책위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훈련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우리도 전투기 있다’고 든든해들 했지. 애국하는 심정으로 40년을 참고 살았고. 이제는 견딜 만큼 견뎠다고 봐. 왜 우리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 지금 준비하는 국방부 항의방문 등이 효과가 없을 경우, 이달 말부터라도 훈련장을 점거해 농성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하는 구위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 있다. 그러나 노인의 목소리는 전투기 엔진 소리에 묻혀 자꾸만 끊어졌다.

계속하던 비행은 8시를 넘겨서야 비로소 잠잠해졌다. 훈련이 끝난 사격장 주변 북내면 가산1리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 없이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마을을 나서는 길에 만난 한 할머니는 “예전에는 밤에도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그나마 다행이다”고 말한다. 내일 아침 다시 사격훈련을 시작할 때까지 이들에게 주어진 ‘짧은 고요’였다.



주간동아 2001.07.26 294호 (p44~45)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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