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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마약이 사라진다

의료용 3년간 11만여 개 털려… 중독자들 범행 추정, 판매상 통해 시중 유통

병원에서 마약이 사라진다

병원에서 마약이 사라진다
지난 6월29일 오후 2시 서울 청계천 상가. 중고가구 노점상들 사이에 눈빛이 섬뜩한 한 무리의 사람이 주변을 초조하게 살피고 있다.

“뽕약 있어요? 얼마죠?” 마약 구입자로 가장한 취재기자가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걸자 그들은 즉시 도망가기 시작한다. 청계천 상가에서 의료용 마약을 공공연히 판매한다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취재진과 마약 판매상들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노점상들 사이에서 ‘먹잇감’을 물색하던 마약상들은 취재진이 ‘마약쟁이’(중독자)가 아님을 금세 눈치챘다. 이른바 ‘꾼’들 사이에는 단골 고객들과 ‘공정가’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거래를 접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비밀을 유지하였다.

지난해 44건 도난, 올 상반기만 41건

그들에게 취재진을 안내한 상인 3명은 그들이 올 초부터 그곳에서 ‘뽕약’ ‘하얀약’ ‘S정’ ‘누바인’ ‘모르핀’이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알약과 주사제를 팔고 있었다고 전한다. 또 그들은 이들말고도 다른 몇 개 팀이 청계천 상가 일대와 세운상가 뒤편에서 활동한다고 귀띔했다. 보통 가루로 된 히로뽕과 달리 이 마약들은 모두 알약이나 앰풀 형태의 병원용 마약이었다.

대부분 진정제나 진통제로 사용하는 의료용 마약은 일반인이 먹거나 주사로 맞을 경우 히로뽕이나 마리화나와 같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중독성도 심한 것으로 의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때문에 의료용 마약은 반드시 사용한 양과 남은 양을 의사가 직접‘마약대장’에 기재하고 보관함도 이동이 불가능한 2중 캐비닛을 쓰도록 마약관리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의료용 마약이 길거리에 흘러 나와, 그것도 공공연히 팔릴 수 있을까. 최근 광주지역에서는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3주 동안 광주 시내 5개 대형 병원이 마약류 의약품(의료용 마약)을 연쇄적으로 도난당한 것. 범인은 다른 의약품은 건드리지 않고 마약과 향정신성 의약품만 ‘싹쓸이’해 도망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최근 국회에 보고한 병원의 마약 분실현황은 그 심각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지난 99년 9건에 그친 병원 마약 분실사건은 2000년 들어 44건으로 늘어났으며 올해는 상반기만 벌써 41건이나 된다. 지난해 7월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약국에서의 마약 분실사고도 한해 동안 10건이나 있었다. 지난 3년간 병원과 약국이 분실한 마약은 11만2312개로 주사제가 9914앰풀, 경구용이 10만2398정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의료용 마약 분실사고가 폭증하는 까닭이 뭘까. 식약청 마약관리과는 이를 수요와 공급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갈수록 마약중독자는 늘었는데 대검찰청에 마약부를 신설하는 등 히로뽕과 마리화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공급이 어려워지자 중독자들이 의료용 마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마약관리과 이준환씨)는 것이다.

사실 의료용 마약은 앰풀당 또는 한 정에 몇 천 원 수준으로 그 가격이 일반 마약보다 매우 저렴한 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약 중독자는 값이 비싸고 구하기 힘든 일반 마약보다 손쉽게 훔칠 수 있는 병원 내 마약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흘러 나온 의료용 마약 중에서 자체 소비가 되지 않은 부분을 마약 판매상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지난 1월 경남 진주지역에서는 마약 중독자의 이런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경남 고성지역 조직 폭력배들이 진주지역 13개 의원 의사들을 협박해 마약을 강제로 투여 받은 것. 이들은 처음에는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아 마약처방을 받았으나 이후부터는 아예 의사들을 협박해 마약주사를 맞아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법의학 연구소 민경찬 박사(해부학, 전문의)는 “일반 병원 응급실에서 간혹 마약주사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의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의료용 마약 중독자들이다”며 “일부 여성 중독자들 중에는 특수한 향기를 지닌 마약에 중독된 후 그 향기를 잊지 못해 해당 마약을 투약 받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도 많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29일 전북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의 의료용 마약을 훔친 혐의로 대구지방경찰청에 붙잡힌 전모씨(26)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 마약 중독자인 그는 돈이 떨어져 마약을 구하기 힘들자 병원을 턴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지난해 대구지역에서 일어난 4건의 사건도 전씨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용 마약의 수요자가 많다 보니 이들을 위한 음성 거래시장도 형성해 있다. 2주에 걸쳐 잠복 취재한 결과 6월29일 취재진과 처음 마주친 청계천 상가 마약 판매상들은 자취를 감춘 것으로 드러났다. 속된 말로 ‘잠수’한 것이다. 청계천 쪽을 포기한 취재진은 7월10일 세운상가 뒤편 골목에서 마약 판매상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인근 상인들은 스스럼없이 판매상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취재진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어깨’들의 협박으로 마약 구입에는 실패했다. 그들은 취재진에게 “경찰이면 ‘증’을 보이고 아니면 돌아가라”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독자들이 병원 근처를 기웃거리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병원과 약국의 마약관리 부실과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마약을 도난당한 광주지역 병원의 원장은 “수술이 많을 때나 밤에는 마약 보관함 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의 병원들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도둑을 맞고 난 후에야 마약에 신경을 쓴다”고 밝혔다. 심지어 강원도의 모 산부인과 의원의 경우는 올 2월 말 한 차례 마약을 도난당해 행정지도를 받고도 9일 만에 또다시 마약을 도난당하기도 했다.

“의료용 마약에까지 신경쓸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병원의 마약관리에 대한 행정지도는 지방자치단체, 도난 마약의 수사는 검찰과 경찰, 통계는 식약청으로 나뉘어 책임 한계가 명확하지 못합니다.” 식약청의 한 관계자는 의료용 마약의 분실사고가 폭증하는 데는 정부의 관리 소홀 탓도 크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3년간 100여 건에 가까운 마약 분실사건이 있었으나 범인을 잡은 것은 단 2건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 심재철 의원은 최근의 마약 도난사태가 벌금을 피하기 위한 병원과 약국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병·의원, 약국 등이 기록장부와 보관량 간에 차이가 나면 분실신고를 함으로써 벌금을 피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며 “벌금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분실신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제도상의 문제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에는 서울시 강동구의 모 의원에서 상습적으로 병원용 마약을 의사 몰래 투여한 간호사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심의원은 최근 의료용 마약에 대한 보험 급여비 청구량이 급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줄어야 할 마약류 의약품의 소비량이 의약분업 이전보다 4.6배나 더 늘어난 것이다.

“마약류 의약품의 대부분은 조금만 많이 먹어도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의약품입니다.” 의료용 마약을 관리 단속해야 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의료 상식’이다.



주간동아 2001.07.26 294호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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