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0

2001.06.28

‘태조 왕건’인기 TV서 책으로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5-02-11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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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왕건’인기 TV서 책으로
    바야흐로 드라마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 통일을 향해 가고 있다. 후삼국을 통일하는 것으로 이 드라마는 끝을 맺지만, 내년 초 고려 4대 왕 광종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사극 ‘제국의 아침’이 이어진다고 하니, 한동안 방송계에서 고려 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보다 TV시청률을 더 의식하는 방송의 생리상, 작가가 만든 가공의 역사에 내둘리지 않으려면 고려사를 한번쯤은 통독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막상 논문 외에 일반 독자에게 친절하게 고려사를 안내해줄 책은 드물다. 교과서식의 딱딱한 문체와 사실 전달에 치중한 지루한 서술(이것은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의 표현이다)에서 벗어난 대중을 위한 고려사가 필요하다.

    최근 출간한 이승한씨의 ‘고려 무인 이야기1’이 주목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이 책은 그간 역사 대중서에서 전혀 다루지 않던 1170년 무인 쿠데타를 소재로 삼은데다 역사소설에 가까운 문학적 서술방식을 선보였다. 즉 사료적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위험한 줄타기를 자청하며 독자를 책으로 끌어들인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솜씨다. 특히 ‘고려 무인 이야기1’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한 편의 드라마다.

    “거인은 객사에 감금되어 있던 노인을 끌어냈다. 거인의 눈에도 노인은 왕위에서 쫓겨난 그 3년 사이에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한때 이 사람이 국왕이었다는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인의 우람한 체구 앞에 초라한 중늙은인에 지나지 않았다”(프롤로그 중에서).

    그 늙은이는 고려 18대 왕 의종이며 1170년 무신 쿠데타로 인해 왕위를 빼앗긴 후 3년을 갇혀 지내다 결국 이의민의 손에 죽는다. 경주 천민 출신인 이의민은 8척 거인으로 1170년 무신 쿠데타 때 행동대원으로 활약했고 의종 시해까지 떠맡으면서 대장군으로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 무인집권 시대에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의 뒤를 이었고 최충헌에게 주살당하기 전까지 13년간 정권을 장악했다.



    ‘고려 무인 이야기1’은 12세기 후반 고려무신정권이 성립하던 26년간 즉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이 통치하던 시대를 각 인물별로 훑어간다. 그리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무신정권의 성립기인 26년을 ‘실패’로 규정한다. 무인정권 4인방은 한때 권력의 정상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도 못하고 고려 귀족사회의 틀을 바꾸는 데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다음에 등장하는 최충헌은 어떤 모습일까”라고 의문부호를 남긴다. 그 후로도 74년간 계속된 무인정권 이야기는 ‘고려 무인 이야기2’로 이어진다.

    솔직히 이 책을 읽다 보면 100년간 지속된 무인집권시대가 왜 일찍이 역사소설이나 TV사극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역사조차 좋은 사람-나쁜 사람, 좋은 시대-나쁜 시대로 가르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무인집권시대는 그리 호감 가는 역사는 아닐 것이다(왜냐하면 영웅이 등장하지 않고 뛰어난 치세가 없는데다 군인정권에 대한 거부감까지). 하지만 1000년 전 쿠데타와 암투, 그 승리와 실패의 현장 보고서도 분명 우리의 역사이기에 다시금 복원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고려사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고려 무인 이야기’ 이전에 박종기 교수의 ‘5백년 고려사’를 잡는 게 순서다. 박교수는 20여 년 역사학을 강의하면서 줄곧 “어떻게 하면 역사를 오늘의 우리와 연결시켜 살아 있는 역사로 되살려 내느냐”를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5백년 고려사’는 통사지만 기존 교과서식 목차를 과감히 벗어나 고려왕조의 전통과 문화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박교수는 제1장 ‘왜 고려왕조에 주목해야 하나?’에서 조선시대보다 더 베일에 싸인 고려사에서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는방식과 그에 바탕한 다원주의 역사,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화전통과 대내외에 대해 각각 개방성과 역동성을 지향하던 역사전통 등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5백년 고려사’의 장점은 서술방식이 강의체여서 내용의 무게보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TV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옮긴 듯하지만 결코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제목거리에 연연하지 않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99년 여름 출간한 이 책이 인문학서로는 드물게 1만 부를 돌파했다는 사실은 역사대중서가 가야 할 방향을 암시한다.

    ㆍ 백년 고려사/ 박종기 지음/ 푸른역사 펴냄/ 358쪽/ 1만 원

    ㆍ 고려 무인 이야기1(4인의 실력자들)/ 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펴냄/ 38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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