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0

2001.06.28

유쾌한 악동들의 행진곡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5-02-11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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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악동들의 행진곡
    로큰롤이 없었다면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는 얼마나 심심했을까? 로큰롤은 지난 50년간 수많은 갈래를 낳으며 경계를 넓혀오긴 했지만, 여전히 굉음의 공동체 문화다. 그리고 이 문화의 주인은 여전히 악동들이다. 악동들의 유쾌한 질주는 자본주의의 현란한 속도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조롱하면서 인류의 예술사에 새로운 음악 경험을 제공했다.

    아마 한국에서의 로큰롤 키드의 원조는 1970년대 말 3인조 캠퍼스 밴드 ‘작은 거인’의 리더이던 김수철일 것이다. 이 키 작은 기타의 모차르트는 무대 위를 고무공처럼 튀어올랐고, 현을 이빨로 물어뜯으면서 유신 말기의 문화적 암흑기에 유일한 쇼크를 만들었다.

    1996년 표현의 자유를 헌법재판소에서 공표하고, 이어 오랫동안 보사부 식품위생법에 묶여 있던 라이브클럽이 마침내 양지로 나오면서 인디 록 밴드들의 백가쟁명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땅 밑 달리기’는 아직 미완의 혁명이며 주류의 완강한 성채를 허물기엔 솔직히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것은 ‘어어부밴드’와 ‘노브레인’,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크라잉 넛(Crying Nut)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홍대 앞 펑크 클럽 ‘드럭’에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윤도현 밴드와 더불어 아성을 구축한 이 ‘꼬마땅콩’들의 의뭉스런 해학과 거침없는 템포는 인디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30대 직장인까지 포섭하기에 이르렀고, 이들의 ‘말달리자’는 글자 그대로 인디의 애국가가 되었다.

    어느덧 맞이한 이들의 세 번째 정규앨범 ‘하수연가’(下水戀歌)는 한마디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 200회 이상의 라이브를 줄기차게 수행해 온 이 청년들의 비등점에 이른 음악 열정을 만끽할 수 있는 올 상반기 최고의 앨범이다. 이 앨범은 자신들의 음악적 자궁인 ‘3분, 3코드-그리고 fuck you!’의 미학적 기조를 지닌 펑크 록의 기조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이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들을 성숙시켜 왔는지 보여준다.



    자메이카 출생의 스카 리듬과 복고적인 폴카, 그리고 우리의 전통 타악 리듬 등이 어지러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이들의 ‘세상 뒤집어 보기’는 펑크에서 포크, 인더스트리얼, 사이키델릭 등의 다양한 스타일의 터널을 통과하며 마치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몰론 ‘밤이 깊었네’처럼 명백히 여름 성수기의 방송을 노린 트랙도 있지만 그마저도 타협이 아니라 여유로 비친다. 오로지 한길을 달려온 이들이 없었다면 세기 말, 세기 초 한국 대중음악은 소금 간이 안 된 닭다리 튀김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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