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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가계파산·이혼 등으로 결식아동 지난해만 16만 명… 각종 공공대책도 역부족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경기 평택 한 임대주택에 사는 9세 된 백모양은 학교에 갔다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쉰 김치와 보리차뿐이었다. 밥솥은 며칠째 비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실직한 아버지(32)는 밤늦게야 들어온다. 부엌 귀퉁이에 쌀 가마가 덩그렇게 놓여 있지만 밥을 지어 상을 차릴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한 살 아래 여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혼자 일어나 학교에 간다. 물론 아침도 굶는다.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단체급식이 백양이 하루 중 유일하게 먹는 음식이다.

정부 밥값 지원금은 어디로 가나

백양 자매는 꼬박 1년을 이렇게 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두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자포자기 상태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들은 백양 자매를 시내에 있는 ‘가나안’이라는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 급식소로 데려갔다.

백양 자매는 가나안에 온 뒤로 이곳에서 제공하는 간식과 저녁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지난 4월19일 간식시간에도 백양은 누구보다 열심히 빵을 먹었다. 그러나 기자가 본 백양의 체구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왜소했다. 가나안의 김순구 원장은 “백양 자매는 제대로 수업을 따라갈 기력이 없었는지 아직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상태”라고 전했다.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이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결식아동’은 존재할 수 없다. 가정이 없는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양육하고, 생계가 어려운 가정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인해 아이들에게 먹일 밥값(부식비)을 포함한 생활비를 지원받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별도 석식 제공’ 등 결식 가능성을 없애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게 정부 관리들의 논리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논리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올해 1월 문을 연 가나안은 백양과 비슷한 처지의 결식아동들이 몰려 이미 정원이 꽉 찼다. 결식아동 대상 급식봉사를 하는 8개 민간기관 산하 전국 수백여 개 산하단체도 아이들로 포화상태다. 이들 기관은 인력-재원 부족 때문에 결식아동들을 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아직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결식아동의 층이 사회 저변에 폭 넓게 자리하고 있음을 입증한다는 게 ‘결식아동 민간단체 협의체’의 견해다.

김순구 원장은 “백양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왜 결식아동이 존재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쌀이 떨어져 굶는 그런 절대빈곤은 사라졌다. 그러나 가계경제의 파산이나 이혼 등 가정 해체가 가속화하면서, 양육 기능을 잃거나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누군가가 돌봐야만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돌볼 사람이 없다. 결식은 빈곤과 가족 기능의 상실이 맞물려서 오는 것이다”고 분석한다.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지난 4월19일 밤 미군 오산 기지 부근 송탄 시내. 기자는 중학교 1학년 때 가출해 거리를 배회하며 충격적인 ‘꽃제비’ 생활을 하는 김모군(14)을 만났다. 이곳의 결식아동들 사이에서 김군은 유명한 존재가 되어 있었는데 한 아이가 기자를 김군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김군은 처음엔 경찰이 온 줄 알고 달아나려 했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김군은 지난해까지 여섯 번 가출한 끝에 한 달 전 다시 집을 나왔다. 물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그의 부모는 이혼했으며 아버지는 최근까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군의 가족은 이미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이 없는 듯했다. 그와 함께 가출한 그의 형(16)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김군의 얼굴과 손, 다리는 한 달 동안 전혀 씻지 않은 상태로, 피부는 악어가죽처럼 곳곳이 터져 있었고, 그의 몸에선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그는 낮에는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의 복장은 집에서 나올 때 입던 반팔`-`반바지 차림 그대로인데 옷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밤엔 연립주택 옥상계단에 올라가 신문지를 덮고 잤다. 한 달 동안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어떻게 참아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생활비는 학교 앞에서 서성대다 하교하는 친구들에게 돈을 구걸하면서 벌었다고 한다.

19일 내내 김군이 먹은 음식은 1000원어치 분식이 전부였다. 이젠 아침과 저녁을 먹으면 몸이 더 이상해진다고 한다.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는 송탄의 전민수 목사는 “어느 날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파 못 참을 정도가 되었는지 내게 찾아와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음식을 먹은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군은 “비어 있던 사무실에 들어가서 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함께 있던 다른 아이들이 유리창을 깨고 전화를 마구 썼지만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에 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이젠 집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너무 어려 일거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오토바이 타는 배달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가게 주인들은 면허증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았다”(김군) .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다고?
김군의 주머니엔 한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년원엔 죽어도 가기 싫다”며 도피생활을 고집했다. 김군은 위태롭게 벼랑 끝으로 몰리는 듯했다. “이제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김군이 이런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 김군만의 잘못인가.” 전목사는 이렇게 반문하면서 “가정의 통제에서 벗어난 아이가 비행과 결식의 고통 속에 빠지는 전형적 궤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초-중-고교 결식아동 수는 89년 8546명, 97년 1만1017명, 2000년 16만4000명(교육인적자원부 조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대우자동차 고용불안 문제가 불거진 인천의 경우, 결식아동은 지난해 상반기 8292명에서 1만75명으로 늘었다. 가정이 결식을 막지 못하면 국가의 복지 시스템이 아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지단체 ‘사랑의 친구들’ 관계자는 “결식아동을 위한 현재의 공공대책들은 매우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부스러기복지선교회 최정옥 간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근거를 제시했는데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입장에선 뼈아픈 일침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산한 결식아동수는 16만4000명인데,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통계는 2만2589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선 학교들이 국민세금을 헛되게 쓰는 것인가. 실제로 교육부가 맡고 있는 학교의 무료급식은 원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보건복지부 몫인 저녁식사 제공사업에서 늘 문제가 터진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상황 인식 자체가 매우 안이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결식아동을 위해 배정한 예산도 대상자가 예상보다 적어 다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견해는 다르다. 예은사랑나눔회 강명순 회장은 “일부 도시에선 자장면집에 가서 2000원짜리 쿠폰을 제시하면 음식을 주거나 농협의 농산물 상품권으로 저녁 제공을 대체하기도 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효과가 의문시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지원을 거부한 아이들이 많았다”고 반박했다.

평택시의 경우 시 당국은 155명의 아이들을 올해 석식 지원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지역 시민단체는 교육당국 조사를 근거로 석식 지원을 고려해야 할 아동 수를 2000명 이상으로 잡는다. 가나안 김순구 원장은 “자원봉사에는 한계가 있어 이 도시에선 가정과 사회 모두에게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식아동이 아직도 많다”고 주장했다. 평택시 관계자는 “이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저소득가정에 부식비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복지원은 피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평등사회라면 가정환경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은 세 끼 밥먹는 일 때문에 곤란을 겪어선 안 된다. 그런데 국가는 만사를 제쳐두고 해야 할 이같은 소중한 의무를 지금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최경옥 간사는 “설령 중복지원이면 어떤가. 가정에서 내몰리고 밥 못 먹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정부는 이런저런 계산만 하며 미적댄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5.03 282호 (p40~42)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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