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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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史에 빛나는 그 시절 그 인물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2-21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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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史에 빛나는 그 시절 그 인물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 이름과 외워야 할 각종 연도로 가득한 세계사 대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양사 입문서가 나왔다. 윌리엄 레너드 랭어가 엮은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원제·Perspectives in Western Civilization)의 주인공은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알렉산드로스, 바울, 샤를마뉴, 윌리엄, 엔리케, 에라스무스, 돈 키호테 등 그 시대를 풍미한 역사인물들이다.

    이 책은 각 분야별 전문가 17명이 쓴 역사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수많은 역사개설서가 나와 있지만 이처럼 사람을 코드로 삼아 과거인의 눈과 정신으로 서양사의 주요 국면들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는 책은 드물다. 행여 이 책을 다이제스트형 위인전으로 착각할 이들을 위해 모리스 보라가 쓴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1장)을 잠깐 살펴보자.

    실제로 호메로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를 쓴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때 서사시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시인에 의해 쓰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호메로스가 쓴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 500년 가량 앞선 미케네 시대를 어떻게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호메로스는 구전으로 전승돼온 미케네 시대 영웅들의 이야기에 직접 트로이 유적을 답사하면서 얻은 지식을 더해, 500년 전 트로이의 역사를 복원한다. 그것이 단순한 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비교적 정확했다는 것은 이후 고고학적으로 입증됐다.

    모지즈 핀린이 쓴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399년)는 지금도 회자되는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제자였던 플라톤이 쓴 ‘변명’(흔히 소크라테스가 두 차례에 걸쳐 배심원 앞에서 행한 연설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재판과정은 구두로 진행됐고 지금과 같은 속기사도 없었다)을 통해서다. 즉, 단락마다 플라톤이 개입했음을 의미한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처형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크라테스를 기소한 고발장의 내용은 ‘젊은이들을 불경스럽게 만들고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아테네인들에게 불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아테네인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기 5년 전까지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후유증은 대단했다. 한때 그리스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렸던 아테네인들은 전쟁으로 제국의 영광과 민주정치체제를 모두 잃어버렸고 대신 스파르타 수비대와 잔인한 독재정부(30인 참주정으로 불린다)를 경험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신앙과 가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소피스트들(소크라테스도 그 중 한 사람)의 존재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친구나 제자들은 아테네인들이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참주정치의 중심인물이었다. 전쟁과 폭정에 대한 배심원들의 쓰라린 개인적 기억이 결국 소크라테스를 유죄로 몰아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통해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의 민주정치, 소피스트들의 등장과 교육혁신 등 당시 아테네 사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이 책을 번역한 박상익 교수(우석대·서양사)는 총 17편 중 역사읽기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 글로 4장 ‘노예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를 꼽는다. 사실 어떤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는 티모테오스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 턱이 없다. 하지만 20여 년 전 그리스 암피폴리스 유적지에서 그의 거대한 묘비가 발견된 뒤 상황은 달라졌다. 해방노예 출신으로 노예상인이 된 티모테오스의 생애를 중심으로 노예를 사고 파는 과정과 주인과 노예의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검투사와 같은 전문기능노예의 등장을 설명한다. 독자가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대 노예제의 문명사적 의의와 쇠퇴과정, 고대 노예제와 미국 노예제의 차이점 등을 이해하게 되는 식이다. 박상익 교수는 이에 대해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사용하는 효과’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에 실린 17편의 글을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정복왕 윌리엄이 궁금하다면 당장 그 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면 된다.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는 영국의 고고학자 피터 제임스와 닉 소프가 쓴 ‘옛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전2권·까치 펴냄)과 남경태의 ‘트라이앵글 세계사’(푸른숲)를 떠올리게 한다. 두 책 모두 틀에 박힌 역사 혹은 편견에 사로잡힌 역사를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연구가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물론 세 책 모두 놓치기 아깝다.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윌리엄 L.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500쪽/ 2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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