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2001.02.15

베스트 셀러, 흥행 보증수표 아니다

  • 입력2005-03-18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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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셀러, 흥행 보증수표 아니다
    ‘국화꽃 향기’ ‘엽기적인 그녀’ ‘그가 모르는 장소’ 등 지난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인기소설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진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아버지’ 등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원작소설의 영화화 바람은 최근 ‘공동경비구역 JSA’(원작 박상연 ‘DMZ’)의 대성공에 고무된 듯 충무로에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김하인 원작의 ‘국화꽃 향기’는 지난해 가을 ‘가시고기’를 밀어내며 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작품. 어렵게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갖게 되지만 부인이 암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의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냈다. 다분히 통속적이지만 강한 흡인력과 감성적인 필치로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 이 작품은 영화 ‘편지’로 흥행바람을 일으킨 이정국 감독에 의해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올 3월 크랭크인 예정.

    영화제작사 아트시네마측은 “원작자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 듯, 소설 자체에 영화적인 요소가 강해 부분적인 수정만 거치면 그대로 시나리오로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작자 김하인씨는 소설 완성 후 시나리오 작업도 직접 해 이를 바탕으로 현재 각본 작업이 진행중이다. 영화는 이정국 감독의 전작 ‘편지’와 최근의 ‘하루’(고소영, 이성재 주연) 같은 영화의 맥을 잇는 진한 최루성 멜로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n세대 최고스타 전지현, 차태현을 주인공으로 확정하고 2월 말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온 사회를 휩쓴 ‘엽기열풍’의 중심에 섰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김호식의 소설 ‘엽기적인 그녀’는 99년 PC통신 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뒤 소설로 출간됐다. 두 남녀 대학생의 발랄하고 상큼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n세대판 ‘청춘스케치’로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번 영화에서 전지현은 CF이미지에 가깝게 터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엽기녀로, 차태현은 우연히 만난 엽기녀에게 반해 온갖 수모와 고초를 감수하는 순진한 대학생 견우로 분한다. 에피소드 모음 형식인 원작을 드라마로 잇는 시나리오 작업은 곽재용 감독이 직접 맡았다. 오랜만에 보는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물이 될 이 영화는 올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할 예정.

    지난해 ‘21세기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신경숙의 단편소설 ‘그가 모르는 장소’의 판권은 ‘마요네즈’의 감독 윤인호씨가 사들여 현재 영화사와 협의중이다. 신씨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깊은 슬픔’에 이어 두번째. 이혼을 앞둔 중년 남자의 이야기로, 호숫가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나누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대화가 작품의 줄거리를 이룬다. 신경숙 특유의 심미적 내레이션이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될지가 관심거리. 윤인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가족의 해체’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 전작 ‘바리케이트’ ‘마요네즈’에 이은 가족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 신경숙씨는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발표 후 모 신문에서 이뤄진 영화배우 한석규와의 대담에서, 그가 어머니와 낚시터에 가서 대화한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는데, 윤감독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주인공으로 한석규를 떠올렸다고. 원작자와 감독이 모두 그를 주인공으로 모셔오고 싶어하지만 결과는 아직 미지수.

    베스트 셀러, 흥행 보증수표 아니다
    보통 소설이 주목받으면, 자연스레 이를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좋은 소설은 곧 좋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기 때문. 이렇게 보면 소설은 영화의 영원한 ‘이야기 샘’인 셈이다. 문자와 영상이라는 분명한 매체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는 서사 장르라는 동일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독자나 관객에게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 흥행의 안전판은 아니다.

    ‘국화꽃 향기’를 제작하는 아트시네마 제작책임자 이선복씨는 “원작이 유명할수록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럽다. 이미 많은 대중이 알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커 완성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실망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인 ‘DMZ’는 사실 베스트셀러는 아니었다. 소설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JSA’와 ‘DMZ’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명필름 심재명 이사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는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언어로 된 소설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크게 차이가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소설이 영화의 흥행을 보장해주었지만, 이젠 영상세대와 활자세대의 구분이 명확해 소설의 인지도가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말한다.

    제임스 얼로이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LA 컨피덴셜’의 경우, 소설은 형식을 파괴한 독특한 문체 때문에 영화화하기엔 최악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커티스 핸슨 감독은 원작소설의 재미를 살리면서도 영화적인 재미와 흥밋거리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냈고 각종 영화상에서 각본 및 각색상을 휩쓰는 성과를 거뒀다. 그저 원작에 충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화적으로 변형되고 재구성되어 원작소설을 능가하는 훌륭한 작품이 많이 탄생하기를 영화팬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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