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상황 따른 유연한 대처 국제매너의 기본 원칙

  • 입력2005-06-30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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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6시. 회사의 방침상 출근이 이른 터라 일찍 운전석에 오른다. 분당의 아파트를 빠져나오노라면 많은 신호등을 거친다. 출근 전이라 보행자도 없고 거리에 차도 드물다. 새벽이든 한밤이든 시간에 상관없이 여전히 규칙적으로 작동되는 신호등을 보며 ‘꼭 이래야만 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영국의 문화를 소개할 때 항상 곁들이는 것이 라운드 어바웃(Roundabout)이다. 한국에서는 로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돌고 돌아 나가는 길, 즉 환상교차로를 말한다. 교차로에 먼저 진입한 차가 먼저 빠져나가는 단순한 논리로 운영되는 영국의 라운드 어바웃이 한국의 로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신호등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라운드 어바웃은 없지만 자율등은 많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등의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야만 초록색으로 바뀌는 선택등이다. 아직까지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원칙을 사랑하는 독일사람들의 전통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의 시골동네다. 그래도 출퇴근시간에는 교통체증이 있어 종종 차량들이 늘어선다. 밤에 산책을 위해 아이들과 시내로 나갔다. 9시30분이 되자 거리의 모든 신호등이 점멸등으로 바뀐다. 차량통행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라운드 어바웃과 자율, 그리고 점멸은 곧 ‘유연함’과 통한다. 유연함은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로 남녀의 동행매너에서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이용시 남자가 여자의 뒤에 서서 오르는 것이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넘어졌을 때) 서양의 매너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해를 사고, 일본사람들의 첨잔(添盞)이 한국에서는 무례로 통하며, 식사 후 잘 먹었다는 의미의 중국적 트림이 국제적으로 비상식으로 통하는 것처럼 하나의, 한곳의 매너가 세상의 모든 곳에서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착각이다.

    따라서 매너는 고지식 완고 획일과 결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 세상의 사람들과 잘 살아가기 위한 ‘개방성’과 ‘유연함’을 심어주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점멸등이 잘 작동될 때 주변사람들과의 정신적, 물리적 체증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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