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2000.10.19

의료비, 부당청구냐 부당삭감이냐

참여연대 홈페이지 네티즌-의사들 舌戰 가열…병원경영 투명한 공개 급선무

  • 입력2005-06-28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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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비, 부당청구냐 부당삭감이냐
    의료계 파업으로 인한 병원적자는 과잉진료, 허위진료를 통해 모두 환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10월6일 의료계 3차 파업을 전후해 ‘참여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의사들의 도덕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글들이 실려 상당한 논란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사들은 이런 네티즌들을 집중 공격했고, 일반 네티즌들은 ‘과잉진료의 개연성’을 주장하거나 또는 자신의 피해담을 소개하며 의사들을 비난했다.

    의사들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병-의원의 ‘의료보험급여 부당청구’의 사례가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한 비용’을 보험자단체가 일방적으로 ‘삭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네티즌들은 끝없는 파업을 통해 환자를 외면한 ‘의사의 양심’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박했다. ‘부당청구냐, 아니면 부당삭감이냐’는 논쟁이 사이버 공간에서 치열한 논리 싸움으로 확전 양상을 띠고 있다.

    병원 3차파업 시민들 분노 폭발

    참여연대 게시판이 이처럼 ‘의료비 부당청구’를 둘러싼 논쟁의 장(場)이 된 것은 이 단체가 지난 9월17일 병-의원 의료보험급여 부당청구 사례를 폭로한 이후부터다. 참여연대가 지난 3월 한달간 병의원 의약품 청구자료에 대해 정밀 분석한 결과, 많은 병-의원들이 생산된 적이 없거나 생산 중단된 약품들을 처방-조제한 것처럼 꾸민 뒤 의료보험급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법으로 허위청구한 보험급여 액수가 연 8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발표가 있자 의료계 파업에 넌더리가 난 시민들은 의사들의 ‘도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의 폭로 이후, 보건복지부의 ‘99년 의료보험급여 부당-과잉청구 병원 현황 발표’와 의료계 파업으로 인한 병원 적자분 1조원에 대한 대한병원협회의 정부 재정지원 요구가 겹쳐지면서 시민들의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10월6일 강행한 의료계 3차 파업은 시민들의 ‘마지막 인내’를 여지없이 무너뜨렸고 ‘진료비 부당청구’ 공방에 불을 붙였다.



    관행이 된 병원들의 과잉-허위 진료 사례는 병원 내부자를 통해서 간간이 들을 수 있지만, 그 규모와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병원 경영이 폐쇄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려지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다.

    인천 A종합병원 원무과장 김모씨(43)는 “지난 6월부터 시작한 의료계 파업으로 9월부터는 의사와 직원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한 병원들의 움직임도 급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검사와 처치를 진료 명세를 모르는 환자들에게 비보험 항목이라 속여, 환자 본인부담금 형태로 받는 것이 ‘부당진료’의 주가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요양기관 현지실사를 통해 밝혀낸 부당청구 사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항목이 본인부담금 과다 징수였다.

    서울의 B종합병원 경리담당이사 강모씨(36)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현재 진행되는 과잉진료와 급여 부당청구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강씨와 김씨가 말하는 전형적인 사례는 이렇다.

    △노인 산모 등 기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밥 대신 주어지는 영양수액제의 경우 보험급여가격인 1만3000원의 절반 가격으로 할인 구입한 뒤 수액제가 불필요한 환자에게 투여하고 급여를 청구하거나, 아예 보험이 안 된다며 본인 허락을 받은 뒤 5만원에서 10만원씩 받기 △지난 4월부터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이 보험급여항목에서 제외된 점을 이용해 웬만하면 레이저로 수술하거나, 레이저로 하지 않은 수술에 ‘레이저’란 말만 붙여 수술비 받기 △말기 간암환자 치료 주사제의 경우 보험급여 투약 기준수치를 넘을 때 보험이 안 된다는 핑계로 본인부담금을 부풀려 받기 △홑이불, 환자 옷, 가습기 사용, 얼음주머니 제공 등 입원비에 포함된 비용을 2중으로 환자에게 별도 징수하기 △정형외과 수술에 사용되는 핀 등 수술 재료대는 가급적 수입품을 쓰고 보험 등재코드가 없다며 본인에게 부담시키기 등이다.

    강씨는 이런 ‘바가지 진료’가 준종합병원 등 중소 병원들에서는 병원장의 지시로 행해지는 곳도 있으며, 영양수액제의 경우 약품 리베이트도 아직 상존한다고 고백했다.

    이 외에도 처방전에 의해 약국조제를 받아도 되는 당뇨병 약이나 고혈압 약을 비급여 대상이라고 속여 입원시킨 뒤 본인부담금으로 덤터기를 씌우거나, 간단한 수술이나 처치에 사용되는 드레싱(소독) 거즈, 붕대는 급여수가가 구입가보다 낮다는 이유로 급여수가보다 20% 정도 올린 가격에 보험급여를 신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리면 재수 없다’는 식이라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사실 복지부의 지난달 말 보험급여 부당청구 현황 발표는 의료계가 매년 치르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 의료계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예년과 달리, 진료비를 부당청구한 종합병원들의 순위를 10위까지 실명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파업중인 해당병원 전공의들은 병원현황을 발표한 국회의원의 소속 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갖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상위순위에 속한 병원들의 즉각적인 반향이 뒤따랐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 불고기를 주었더니, 실컷 먹고 라면 값밖에는 못 주니 너희가 손해를 보라는 꼴이다. 현대의학은 발전하고 있는데 진료비 심사기준은 20여년간 평균적인 기준을 고집하고 있다. 적절하고 불가피하게 제공된 의료시술을 획일적인 잣대로 과잉진료나 부당청구로 삭감하고 매도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부당한 행위다.” 부당청구 1위로 오른 서울대병원측은 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서울대병원 안종남 홍보팀장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고 불합리한 의료보험수가 속에서 심사기준을 벗어나더라도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의사의 ‘양심과 노력’을 ‘부당-허위청구’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부당 삭감’이 ‘저수가 진료’에 바탕을 둔 심사기준을 적용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브란스병원 내과 전공의 이모씨(33)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투여되는 백혈구 촉진제, 감염치료약의 항생제, 만성신부전환자의 치료약, 폐암 등에 사용하는 항암제 ‘탁솔’ 등 대부분의 치료약들을 급여 심사기준에 맞추다 보면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시검사를 요하는 간기능 검사를 1∼3회로 제한한 것이라든지 첨단 수술재료대의 사용을 인정하지 않는 심사기준이 ‘부당청구’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삼국지의 조조가 군량미가 떨어져 군사들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군량미 담당자의 목을 베어 이 놈이 군량미를 다 먹어 치웠다고 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서울 중앙병원의 한 관계자가 의료계 파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병-의원의 부당청구 사례를 순위까지 정해 발표한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의료보험 재정이 바닥나고, 의료계 파업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자 정부가 애꿎은 종합병원을 ‘부당청구’ ‘과잉진료’의 주범으로 지목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림대학교 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환자를 속이는 과잉진료나 보험급여 부당청구는 의약분업 이전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며 현재 상태에서 의료파업으로 인한 적자 보전책은 별달리 없다”며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올 연말 대형병원들의 부도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모든 것을 저수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죠. 보험재정 정상화를 통해 의료보험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베일에 가려진 병원의 경영상태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선행돼야 하겠죠. 그래야 양심적인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가 구별되지 않겠습니까?”

    참여연대 이은경 간사는 의사들이 의료계 파업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 ‘부당진료’의 ‘멍에’를 벗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 스스로의 자정(自靜)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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