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장기 모자라는데 돼지꺼라도 써?

동물 장기 이식 연구 활발…윤리적 갈등·인체 거부 반응 해결이 관건

  • 입력2005-06-21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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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모자라는데 돼지꺼라도 써?
    미국의 운전면허증 뒷면에는 흥미로운 글귀가 쓰여 있다.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경우 장기를 기증할 의사가 있습니까?’ 여기에 ‘예’라고 표시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 그의 장기는 바로 다른 환자에게 이식된다. 이미 당사자가 동의했기 때문에 보호자를 찾아 새로 동의를 구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장기 이식의 절박함과 ‘수요 공급의 불균형’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사람이다. 미국에서만 해마다 수십만명이 심장 콩팥 허파 간의 기능정지로 사망하고 있다. 대부분 정상적인 장기를 이식해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는 환자들이다. 특히 심장기능의 저하로 죽는 사람의 수는 에이즈 사망자의 네 배, 유방암 사망자의 세 배에 이른다. 심장이식이 필요한 심장병 환자의 수는 연간 4만5000여명에 이르지만 심장이식의 행운을 차지하는 사람의 수는 그중 2000여명에 불과하다.

    의학의 발전으로 장기이식이 수월해지면서 장기의 수요는 공급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장기 부족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인터넷이나 지하시장에서 암암리에 장기가 매매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심지어는 사람을 유인해서 장기를 떼어내 파는 조직까지 등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콩팥 하나를 잃어버린 뒤 풀려났다는 식의 괴담은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각막이나 콩팥처럼 둘 중 하나를 떼어줄 수 있는 장기가 아니라 심장과 같이 죽은 사람에게서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는 더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의학자들은 제한된 수의 장기기증에 의존하는 것보다 좀더 손쉬운 방법, 즉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고육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종류는 역시 영장류다. 인간과 DNA의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는 침팬지의 장기라면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영장류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데는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우선 침팬지, 바분 원숭이 등은 인간에 비해 너무 작다. 때문에 이들의 장기는 30kg 이하의 몸무게를 가진 어린이들에게만 이식이 가능하다. 영장류의 혈액형도 문제가 된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혈액형이 O형인 데에 비해, 영장류에게 O형은 상당히 희귀한 혈액형에 속한다.

    영장류를 제외하고서 가장 유력한 후보 동물은 뜻밖에도 돼지다. 포유류라는 점만 빼면 사람과 비슷한 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돼지가 어떻게 이종장기이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돼지의 장기는 사람의 것과 크기가 비슷하며 생체의 대사작용 역시 유사하기 때문이다. 돼지가 인간에게 음식과 가죽은 물론이고 장기까지 공급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종장기이식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난관은 ‘거부반응’이다.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은 비단 심리적인 거부반응뿐만 아니라 인체 면역체계의 거부반응을 극복해야만 한다.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감염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조직을 공격해 파괴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장기를 이식할 경우에는 사이클로스포린 같은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서 면역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거부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인체는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동물의 장기에 대해서는 더욱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거부반응을 없앨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식되는 동물의 장기를 가능한 한 사람의 그것과 유사하게 만들어 면역시스템을 ‘속이는’ 것이다. 유전공학자들은 유전적으로 사람에 가깝게 처리한 동물을 ‘재배’해서 그 장기를 인간에게 공급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종장기이식에는 거부반응 외에도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재해 있다. 동물의 DNA상에 기생하는 레트로바이러스 역시 이식수술의 걸림돌이다. 돼지의 레트로바이러스는 돼지에게는 별로 유해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20세기의 난치병인 에이즈의 병원균 HIV는 중앙아프리카의 영장류에게서 인간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돼지의 장기이식이 제2의 에이즈를 낳는다면? 무시무시한 상상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최근 영국의 학술지 ‘네이처’에 이종이식수술에 관한 두 편의 상반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스코틀랜드의 PPL 세라퓨틱스 사의 연구팀은 세포핵치환을 통해 성장한 돼지의 체세포로부터 복제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후 불과 5년 만의 쾌거다. 이 성과를 통해 과학자들은 유전처리된 돼지장기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발표된 스크립스 연구소의 연구결과는 세라퓨틱스 사의 성공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돼지에서 발견되는 50여 가지의 레트로바이러스가 쥐의 조직에서 활성화되고 심지어는 떨어져 있는 다른 부위까지 감염시켜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바이러스들은 쥐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배양된 사람의 세포에도 감염된다. 돼지장기의 이식은 현재 하나의 산은 넘었지만 또 하나의 더욱 높은 산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의학자인 코린 세이빌은 ‘디스커버리’에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10여 년 전에 돼지의 세포나 조직을 이식받은 환자 160명 중 누구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세이빌의 연구는 돼지로부터 조직을 이식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간과했다. 놀랍게도 10여 년 전에 이식되었던 돼지의 세포들은 세포 내의 바이러스와 함께(어쩌면 질병도 함께!) 여전히 환자의 혈액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도 커

    동물 장기의 이종이식은 현대의학이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며 오래지 않아 실용화될 것이 분명한 기술이다. 그러나 처음 시도된 20세기 초 이래로 이종이식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 그리고 안전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장기를 이식받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종이식에 대한 연구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인류는 이미 영장류에게서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얻었다. 1970년대에 처음 세상에 알려진 에이즈는 불과 30여년 사이에 5000만명의 감염자와 1600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종이식은 심장병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과 현대의학이 초래한 가장 무서운 부작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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