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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성화 밑에서 우는 ‘대륙 주인들’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 주권회복 운동…올림픽에 때맞춰 전 세계에 호소

시드니 성화 밑에서 우는 ‘대륙 주인들’

시드니 성화 밑에서 우는 ‘대륙 주인들’
2000년 9월15일,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 시드니에서 새 천년을 여는 ‘지구인의 축제’ 시드니 올림픽이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국가와 인종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을 잠시 접어놓고, 스포츠를 통한 인류애를 실천하는 뉴밀레니엄의 첫 올림픽을 별다른 분쟁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호주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홈부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호주 어린이들의 꿈을 지켜본 사람들은 너나 없이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호주의 흑백 갈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화합의 상징’으로 떠오른 원주민 출신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한 시드니 올림픽은 분명 새 천년을 여는 ‘화해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늘 공존하는 법이다. 축제의 열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그 반대편에 드리워지는 그늘은 더욱더 진한 어둠으로 변하게 된다. 호주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들이 바로 그 어둠이다.

원주민들의 ‘천막대사관‘ 농성

시드니 시내에서 홈부시 올림픽 타운으로 가다보면 빅토리아 파크라고 하는 작은 도심 속의 공원이 있다. 그 공원 안에 난데없는 텐트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입구에는 원주민기 세 개가 서로 기대어선 채 펄럭이고 있다. 깃발 아래를 보니 ‘애버리지널 텐트 엠버시’(Aboriginal Tent Embassy)라고 써 있다. 애버리진이라고 불리는 호주 원주민들이 세운 ‘천막대사관’이다.



50여 개의 크고 작은 텐트들이 있고 맨 앞쪽에 위치한 대형 텐트 앞에는 꺼지지 않는 성화(聖火)인 모닥불이 보일 듯 말 듯한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이 대형 텐트가 천막대사관의 본부다.

천막대사관의 성화를 ‘환영의 불’이라고 소개한 원주민 지도자 이사벨 코우 여사는 “호주 원주민들은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며, 설령 자신들에게 적대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코우 여사의 온화한 풍모와는 달리 그의 어조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230년 전부터 시작된 백인들의 약탈행위와 원주민 말살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툭하면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들먹이면서 인권 운운하지만, 30만 명 남짓한 자국의 원주민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면서 남의 나라 정책을 들먹이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다.”

“천막대사관은 1972년 호주의 행정수도인 캔버라에서 시작된 원주민들의 ‘주권회복 운동’의 상징물이다. 지금은 올림픽 개최도시인 시드니로 잠시 옮겨왔지만 다시 캔버라로 돌아가서 우리들의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코우 여사가 들려준 천막대사관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788년 1월26일, 아서 필립 선장이 11척의 죄수선단을 이끌고 시드니항에 정착한 날을 기념하는 호주의 건국기념일 ‘오스트레일리아데이’는 원주민들에겐 ‘치욕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72년, 바로 그 치욕의 날에 원주민 인권운동가들이 모여서 캔버라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최초의 천막대사관을 설치했다.

천막대사관은 단지 원주민들이 백인정권의 차별정책에 대항하는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젊은 세대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원주민 정책에 죄의식을 갖고 있는 백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일까지도 수행했다.

나중에는 원주민들의 법률 주택 보건 환경정책 등을 총괄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천막대사관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에 당혹감을 느낀 백인정부는 천막 대신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천막대사관의 상징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원주민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개설된 지 20년 후인 지난 1992년부터 천막대사관은 원주민들의 법률 및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그들 나름대로의 교육청까지 두어 원주민 문화를 계승 및 보존하는 일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현 자유-국민당 연합정권이 들어서면서 존 하워드 총리와 불화를 겪고 있는 원주민들은 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자신들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으로 천막대사관을 시드니로 옮겼다. 그들은 올림픽 개막 바로 전날인 9월14일, 그들만의 성화를 들고 홈부시 올림픽 타운까지 평화적인 시위를 했다.

천막대사관을 맨 처음 설치한 초창기 원주민 인권운동가 코우 씨의 미망인이기도 한 코우 여사는 “시드니 올림픽조직위원회(SOCOG)는 우리가 질서를 파괴하고 테러행위를 저지를 것으로 오해했지만, 평화적인 시위를 약속하고 올림픽 정신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전한 후부터는 안심하고 있다. 우리는 올림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이용해서 우리들의 참상을 올림픽 시티즌에게 알리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시드니 올림픽을 기점으로 애버리진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원주민 깃발과 평화의 불씨를 양손에 들고 80여일간 호주 남부대륙을 횡단한 케빈 부자코트 씨를 만나러 가는 코우 여사를 따라 시드니 남부에 위치한 캡틴 쿡 최초 상륙지를 찾았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아라부나 족장인 케빈 부자코트 씨는 덥수룩한 용모와 친근감을 주는 말투 때문에 족장이라기보다는 ‘엉클 케빈’으로 불린다. 행사장에 도착한 코우 여사를 얼싸안고 한동안 눈물을 글썽이던 부자코트 씨가 도착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 역사적인 대장정에는 평화와 자유와 화해를 위한 애버리진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주권과 고유문화를 다시 찾기 위해 먼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지난 6월10일, 남부 호주의 이어 호수(Lake Eyre)에서 채화한 성화를 들고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드니까지 왔습니다. 우린 더 이상의 갈등을 원하지 않습니다. 평화와 공존을 바랄 뿐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새로운 호주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진정한 화해의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설을 마친 ‘케빈 아저씨’는 일행과 함께 230년 전 캡틴 쿡이 상륙했던 백사장으로 행진을 계속했다. 손에 든 불씨를 조심스럽게 모래 위에다 놓은 부자코트 씨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홈부시 방향을 응시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그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부디 올림픽이 평화롭게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우리들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더 이상 메아리도 없는 공허한 주장으로 허공 중에 흩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순간 코우 여사가 다가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주간동아 2000.09.21 252호 (p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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