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위성방송사업 언제까지 표류하나

‘사업자 단일화’ 물건너가…12월 초 최종결정, 3개 희망업체 불꽃 튀는 경쟁

  • 입력2005-06-21 11: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위성방송사업 언제까지 표류하나
    각자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 방송위는 특정 업체에 치우치지 않도록 공정한 심사기준이나 마련하라.”

    9월14일 ‘위성방송 도입에 따른 정책방안 2차 공청회’가 열린 서울시 목동 방송회관 국제회의장. 한국통신, DSM(데이콤 자회사), 일진그룹 등 3개의 위성방송사업 참여희망업체 간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날 행사는 표면적으론 사업자 선정의 심사기준 마련을 앞두고 참여업체와 유관기관 관련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 그러나 뒤집어보면 위성방송사업 허가권을 쥔 방송정책 총괄기구인 방송위원회(위원장 김정기·이하 방송위)가 지난 5월부터 추진해온 ‘사업자 단일화’ 작업이 물거품으로 끝났음을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방송위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사업자 선정문제는 3개 업체가 각기 독자적으로 구성한 같은 수의 컨소시엄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일 컨소시엄, 이른바 ‘원 그랜드 컨소시엄’ 방식으로 9월 중 매듭지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대박’인식 20여 차례 조정협상 결렬

    내년 하반기 본 방송을 내보낼 위성방송(43쪽 상자기사 참조)사업은 왜 여태 표류중일까. 여기엔 위성방송사업이 결코 만만치 않은 초기투자비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는 한마디로 ‘대박 터지는’ 사업이 될 것이란 참여희망업체들의 인식이 깔려 있다.



    업계에서 예상하는 손익분기점 달성 시점은 위성방송 가입자가 150만∼200만명이 될 때 혹은 방송을 실시한 지 최소 4, 5년 이후. 하지만 방송실시 5차연도에 예상되는 매출액은 1조600억원 가량(한국통신 추산). 영상콘텐츠 공급, 수신기 제조 등 연관산업 파급효과는 10조9000여억원(2003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정보통신부 자료).

    위성방송은 지난해 12월 통합방송법 제정으로 가능해졌다. 기존 지상파방송이 독과점해온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을 독립프로덕션과 PP (Program Provider·프로그램 공급업자)로 다변화해 영상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외국 위성방송의 국내시장 잠식을 방지하는 한편, 각 방송매체 간 공정경쟁을 촉진한다는 것이 위성방송의 정책목표로 돼 있다.

    문제는 과연 어느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3월 통합방송법 시행과 더불어 출범한 방송위는 이를 위해 특정 업체의 독점을 막는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지난 5월 사업자선정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단일 컨소시엄 구성을 기본목표로 설정한 방송위는 5, 6월 컨소시엄 구성문제를 참여업체들의 자율에 맡겼지만 사업자 간 이견을 보여 성사되지 않았다.

    때문에 방송위는 6월19일 위성방송사업 운영에서 한 사업자의 최대지분을 2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위성방송사업 허가관련 세부추진방안’(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위성방송사업의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을 선언한 것. 방송위는 이후 8월26일 제시한 최종안(한국통신 13%, DSM 10%, 일진 9%)을 포함해 4회에 걸쳐 단일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지분조정안을 내놓으며 업체들의 ‘합의’를 유도했지만 20여 차례의 조정 협상은 모두 결렬됐다.

    “특정 사업자(한국통신)의 과도한 경영권 집착으로 단일 컨소시엄 조정에 실패했다.” 결국 방송위는 8월30일 조정협상 중단을 선언, 단일 컨소시엄 문제는 완전히 백지화된 상태다.

    방송위가 ‘이상적’이라고 판단한 단일 컨소시엄은 왜 깨졌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독점규제’ 방침을 담은 가이드라인에 의거한 위성방송 사업권 소유구조(지분구성 문제)를 둘러싸고 3개 업체의 입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 합의 도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이 그 하나다.

    소유구조와 관련해 한국통신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상파방송이 대거 참여한 컨소시엄인 KDB(한국디지털위성방송)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통신은 위성체(무궁화 위성)를 가진 한국통신이 최소 33%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1대 주주(지배주주)가 돼야 위성방송의 사업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책임경영론’을 들고나온 한국통신은 “단일 컨소시엄의 나눠먹기식 지분구성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위성방송사업을 망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업체들은 “자사 지분율만 지나치게 높게 고집한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LG가 모기업으로 버티고 있는 데이콤의 자회사인 DSM은 ‘한국위성방송’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다. 이 컨소시엄의 3대 주주는 DSM과 SK텔레콤, 뉴스코프(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기업). 이들은 대기업 위주의 다자간 공동경영 구도를 지지한다. “위성체 소유자인 한국통신이 위성방송사업까지 독주할 경우 비싼 시청료와 질 낮은 서비스 등 시장 독점에 따른 폐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DSM의 주장이다.

    지난 5월 기자회견을 갖고 비교적 뒤늦게 위성방송사업에 뛰어든 일진은 자사를 1대 주주로 하되, 중견기업들이 핵심주주그룹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재벌구조조정정책과 경제력 집중완화정책에 배치되므로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의 위성방송사업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

    단일 컨소시엄 무산의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방송위의 정책 혼선이다. 방송위는 지분조정과 관련해 업체들 간 자율조정에 진척이 없자 나형수 사무총장이 외부에서 업체 대표들과 직접 개별 만남을 갖고 지분할당의 객관적 근거나 원칙 없이 지분조정안을 번복하는 등 관리력의 한계를 노출시킨 것.

    이같은 ‘소신없는’ 방송위의 일처리 방식으로 특정 업체의 정치권 로비설 등 갖가지 추측과 소문까지 나돌게 되자 방송위는 “지분배정을 밀실에서 진행시키는 등 정치적 조정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려고 한다”는 각계의 비난을 샀다. 방송위 노조까지 자율조정에 대한 방송위의 ‘지나친 개입’을 비판했을 정도.

    현재 사업자 선정문제는 각 업체들의 사업계획서에 기초한 비교심사평가(RFP)방식으로 급선회한 상태다. 방송위의 의도와 달리 사실상 ‘황금알을 낳을 수도 있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특정업체의 독점이 허용된 것이다.

    당초 9월로 예정됐던 사업자 선정도 단일 컨소시엄 구성이 무산됨에 따라 11월 중순으로 미뤄졌고, 2차 공청회에서는 다시 12월 초로 조정됐다. 단일 컨소시엄 시도과정에서 되풀이된 소모적 논쟁으로 사업자선정 시기만 연이어 연기된 셈이다.

    어쨌든 방송위는 9월말까지 사업자선정방안 확정 및 허가추천신청 공고를 마치고 10월 중 허가추천 신청을 접수해 12월초에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 또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꾸려 각 업체들을 대상으로 비교심사평가를 실시하되 세부 심사기준은 사전공개할 방침이다. 심사기준은 위성방송의 정책목표인 공익성 확보를 위한 업체들의 노력 정도와 그간의 사업 업적을 따져 ‘플랜’과 ‘실적’이 조화된 최적 사업자를 선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방송위 강대인 부위원장은 “연관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위성방송의 특성상 예정대로 내년 상반기 중 시험방송을 거쳐 하반기에 본 방송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업자 선정절차가 당초보다 45일에서 2개월 가량 늦어지긴 했지만 방송엔 차질이 없다는 것이다. 방송위는 오히려 그동안 수차례의 사업자 청문과 조정과정을 통해 참여업체들의 ‘실체’를 충분히 파악했기 때문에 심사과정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겉으론 느긋한 분위기다.

    여전히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3개 업체들 또한 치열한 경합의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PP들을 포함, 114개의 기업이 참여한 KDB의 구성이 탄탄한데다 하드웨어(위성체)를 소유한 만큼 안정적 경영에 자신있다.”(한국통신 위성방송사업추진단 관계자)

    “97년부터 위성방송사업을 준비해왔다. 가장 준비기간이 긴 만큼 콘텐츠와 운영 노하우 면에서 강점을 지녔다.”(DSM 관계자)

    “다이아몬드 회로기판 등 여러 사업에서 이미 일진의 기술력과 경영능력은 입증받아왔다. 서울방송(SBS) 출범 전 2대 주주였으며 현재 전주방송(민방)의 최대주주로 방송-통신 분야와도 무관하지 않다.”(일진 위성방송사업단 관계자)

    그러나 어느 업체가 ‘낙점’되든 위성방송사업은 또 한바탕 진통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참여희망업체가 완전히 노출돼 있는 상태를 감안할 때 모든 업체가 수긍할 만한 합당한 심사기준을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 지금까지의 절차에서 투명성을 보여주지 못한 전례가 있는 이상 심사기준 마련과 심사위원 선임에서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탈락 업체를 중심으로 상당한 불만과 의혹 제기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방송위는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내심 편치 않은 기색이다. 방송위의 한 관계자는 “그럴 리 없겠지만, 만일 특정 업체가 선정된다면 가능한 모든 규제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독점을 막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이는 다분히 한국통신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3개 업체들의 ‘세 불리기’에 이젠 PP들까지 줄서기를 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방송의 공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사업권 따내기’에만 집착한 업체들을 질타하는 한 PP 관계자의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 주권’ 없이는 위성방송의 사업 성공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위성방송은 사업허가를 둘러싸고 로비와 외압, 특혜 시비로 뒷말이 무성했던 케이블방송과 지역 민방의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인가. 위성방송에 쓰일 무궁화위성 3호는 9월4일 발사 1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발사 직후부터 이 위성은 매일 1400만원의 손실(2000년 8월말 현재 누적손실 34억원)을 내며 지금도 지구 주위를 헛돌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