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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거 구씨 허씨 ‘황금분할’ 원칙 흔들

LG그룹 내 허씨 집안 위상 약화…지분정리 향방 따라 ‘마이웨이’ 갈 수도

50년 동거 구씨 허씨 ‘황금분할’ 원칙 흔들

50년 동거 구씨 허씨 ‘황금분할’ 원칙 흔들
‘구씨 허씨 협력시대’의 종언? 최근 LG그룹이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확보 차원에서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사옥을 매각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 이후 재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나온 전망이다. 구씨와 허씨의 협력관계를 상징하는 쌍둥이빌딩 매각은 두 집안간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징후가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이에 대해 LG측은 “쌍둥이빌딩 매각 건은 98년 구조조정 방안에 포함돼 있었지만 그 이후 상황이 변해 현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부에서 제기되는 관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다.

그럼에도 구씨와 허씨 양대 가문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LG그룹의 가족 경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여전히 재계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두 가문이 47년 창업 이후 ‘한지붕 두 가족’ 관계를 유지해오는 가운데 겉으로 드러난 불협화음은 없었지만 최근 들어 허씨 일가의 그룹 내 위상이 약화되는 것으로 비치는 등 협력관계의 ‘밀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

여기에 7월초 LG가 밝힌 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안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LG는 당시 2001년까지 계열사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출자관계를 정리해 금융분야를 제외한 전 계열사를 LG전자와 LG화학 등 두 사업자 지주회사 산하로 수직계열화하기로 밝혔는데, 앞으로 구씨와 허씨간 지분 정리 향방에 따라 두 가문이 ‘마이 웨이’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잘 알려진 대로 LG는 창업 이후 창업자인 구씨와 동업자인 허씨 두 집안의 협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한 동네의 이웃사촌인 구씨와 허씨 가문은 그동안 여러 건의 겹사돈을 맺은 특수관계다. 구씨 가문의 총수는 구본무 그룹 회장이다. 구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에서 구자경 명예회장으로 이어지는 구씨 가문의 장자다.

허씨 가문의 수장은 허준구 전 LG전선 회장 아들 허창수 현 LG전선 회장. 허준구 전 회장은 허만정씨의 3남이긴 하지만 구인회 창업주의 동업 파트너였다는 점에서 그의 아들이 허씨 가문을 대표한다. 허준구 전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씨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허준구씨의 형이자 삼성그룹 창업 멤버였던 허정구씨의 장남이 허동수 LG칼텍스정유 부회장이다.



그룹 관계자들은 두 가문의 이런 관계를 볼 때 두 가문의 ‘별거’는 생각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임원은 “두 가문은 창업 때부터 정해놓은 ‘구씨-주(主), 허씨-보조’라는 ‘황금분할’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동거’에 성공할 수 있었고, 또 이것이 그룹 성장의 한 동력이 됐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앞으로 상당 기간 이 원칙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임원들은 사석에서 다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LG그룹의 한 임원은 “장자상속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LG그룹에서는 구씨 가문 내부에서도 그룹 경영권 승계를 못한 방계 혈족들은 그룹 경영에서 점점 배제되고 있는 상황인데, 하물며 사돈관계인 허씨 가문의 갈 길은 정해진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실제 허창수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작년 이후 진행된 LG의 계열분리는 눈여겨볼 만하다. LG는 작년 이후 LG기공 LG창업투자 LG화재 등을 계열분리했다. 종합전기통신공사업체인 LG기공은 허준구씨의 2남 정수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또 LG창업투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동생 구자두씨 일가가 최대주주다. LG화재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이며 허준구씨의 처남들인 구자원 자훈 형제에게 넘어갔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LG화재가 계열 분리 이후 올 5월 주총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세작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는 점. 그룹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대신 방패막이 차원에서 이씨를 영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LG화재 김영완 IR팀장은 “이세작 변호사는 이사회에서 집행임원들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 하는 등 사외이사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가장 충실하다”면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난센스”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두 집안의 집단적인 경영 참여를 통한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돼온 LG그룹에서 계열분리는 이례적인 일. 그룹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그룹 분할을 통해 가족간에 얽힌 소유권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사업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하고 있다. 특히 계열분리가 창업 3세대인 구본무 회장 체제 하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대주주간 소유분리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

결국 방계 혈족에 대한 ‘가지치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 최대 관심은 역시 구씨 허씨 집안을 승계해온 장자(長子), 즉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의 관계 변화 여부.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그룹 안팎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허씨 집안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 허창수 회장은 6월 말 현재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LG전선 주식을 전체의 0.1%에도 못 미치는 8134주 정도만 소유하고 있다. ‘오너’ 경영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어색하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전자와 화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허창수 회장은 9월초 현재 LG전자 지분 0.77%(134만3538주), LG화학 지분 0.38%(36만9330주)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반면 구본무회장은 LG전자 지분 1.23%(213만8560주), LG화학 지분 0.69%(67만3966주)를 갖고 있다. 지분 비율만 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구회장은 LG전자와 LG화학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그러나 허창수 회장은 비상근 이사에 불과하다.

물론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 등 대주주들은 올해 들어 ‘사이좋게’ LG전자와 LG화학 지분을 장내 매수를 통해 높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한 임원은 “그룹이 공식적으로 경영권 보호와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LG전자와 LG화학의 대주주 지분을 25% 수준까지 올릴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 결국 자금 동원 능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인 허씨 집안의 위축은 가속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임원은 “LG애드의 대주주이기도 한 구본무 회장의 장녀 연경씨(22)가 LG전자 및 LG화학 지분을 극히 미미하나마 일부 확보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대주주들의 LG전자 및 LG화학 지분 매입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부정적이라는 점은 두 집안 모두에 부담이다. 특히 올 3, 4월 무렵 대주주들이 LG전자 지분을 매집한 것을 두고 LG전자와 LG정보통신 합병 사실을 사전에 알고 불공정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작년 6월 이후부터 올 봄 무렵까지 대주주들이 보유중인 LG그룹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LG전자 및 LG화학에 넘기면서 확보한 1조원 이상의 현금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LG측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회장의 위상 축소와 관련, 일부 그룹 관계자들은 허회장을 현대자동차 정세영 전 명예회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정세영 전 명예회장이 형님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말 한마디에 현대자동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숙명적 한계’를 그대로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 과연 구씨와 허씨 집안간 ‘동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주간동아 2000.09.21 252호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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