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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막오른 남북경협시대

겉은 협력 가속화, 속은 아직 살얼음

긴장완화 등 현안 일괄타결 … 南의 수구·北의 軍部가 문제

겉은 협력 가속화, 속은 아직 살얼음

겉은 협력 가속화, 속은 아직 살얼음
남북관계가 급류를 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김용순 비서의 방한(9월11∼14일)과 경의선 연결기공식(9월18일)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 이후 추진해온 남북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남북 경제협력사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작업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을 잇는 ‘상시 핫라인’ 성격을 띤 김용순 비서와 임동원 대통령특보가 9월14일 남북 교류협력과 긴장완화를 크게 앞당길 수 있는 7개항의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그럼으로써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여러 갈래에서 논의되던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들이 마침내 하나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서’ 형태로 매듭지어졌다.

김용순 비서의 방한기간에 박준영 청와대대변인이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품고 온 김비서의 ‘특사역할‘을 강조하면서 밝혔듯이 남북 대화는 그동안 세 갈래로 진행돼왔다. 첫째는 긴장완화 문제로 군사 당국자회담, 군사훈련 참관, 군사이동 통보 등이다. 둘째는 경제협력에 관한 문제로 경의선 복원, 공단조성, 이중과세 방지협정 및 청산계정 등 투자보장방안 마련 등이다. 그리고 셋째는 교류협력 부문으로 이산가족 상봉, 관광-체육-문화 교류 등이다. 이 가운데 난항은 긴장완화 문제였다. 그러나 김용순 비서의 방한 이후에 김비서의 국방장관회담 건의→김정일 위원장의 국방위원회 지시라는 순서를 밟아 군사 당국자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현안을 ‘일괄 타결’해버렸다.

따라서 최근 야당의 반대(남한)와 군부의 지체(북한)로 다소 정체조짐을 보였던 남북관계는 앞으로 임동원-김용순 채널이 총괄하는 ‘남북관계 개선 일정표’에 따라 기존의 세 갈래 방향으로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다소 지연되었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제 2차 적십자회담의 경우, 남북이 이산가족들의 생사와 주소 확인작업을 9월 중에 시작해 가능한 한 올해 안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그리고 9월20일 금강산에서 적십자회담을 개최해 이 문제를 포함한 이산가족 추가 방문단 교환, 면회소 설치 운영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해온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됐다. 이는 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구상했던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재결합의 이산가족 해결구도가 실천적 단계에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 남북이 이산가족 해결 2단계인 서신교환까지 합의함으로써 이산가족들 전체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게 됐다.

남북한 당국이 남북 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실무접촉(차관급 경제회담)을 9월25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한 것과 동시다발로 남북 군사 당국자회담을 조성태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간에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 또한 큰 성과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군 수뇌부가 대좌한다는 것 자체가 남북 간에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과정이 시작됐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제의로 당초 합의했던 제3국이 아닌 제주도에서 회담을 개최키로 한 것은 긴장완화를 위한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남북경협은 북측이 가장 바라는 분야이면서도 그동안 더딘 걸음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북측으로서는 남한 자본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남측으로서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 투자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이 9월25일 서울에서 경협의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차관급 경제실무접촉을 갖기로 하고 특히 ‘빠른 시일 내에 이를 타결키로 합의’함으로써 남북 경협은 급진전할 전망이다.

회담의 의제가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계정 △분쟁조정 등 4개 분야로 정해진 이번 경제 실무회담은 그동안 개별 기업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경협이 남북 당국의 ‘보장’이라는 제도적 틀 속에서 진행되는 전환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북한이 자본주의 경제의 장치인 이중과세 방지와 투자보장 협정 등을 체결할 경우 북한 경제의 개방속도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8월22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남북 교류협력과 함께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계정 등을 제도화해 우리 자본이건 외국자본이건 북한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북한의 경제가 회복돼야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장차 통일이 되었을 때 부담이 줄어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평화협정은 문서상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사라졌음을 선언하는 김대중 구상의 완결판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주한미군이 앞으로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데 북한과 견해를 같이한 점이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밝히면서 “임기가 끝나는 2003년까지 남북평화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자신의 의중을 내비쳤다. 평화협정 체결 방식과 관련해서는 남북이 먼저 체결하고 미-중이 추인하는 이른바 ‘2+2방식’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는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이 맞닥뜨린 장애물은 실타래처럼 얽힌 국내정치와 경제문제다. 경의선 복원의 첫삽을 뜨자마자 한쪽에선 벌써부터 ‘너무 빠르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독일 통일의 비결은 인내심을 갖고 한 발자국씩 걷는 작은 걸음이었다’며 ‘속도 조절론’을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여러 유형의 이산가족 문제 중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속도 조절’을 요구하면서 일의 ‘우선 순위’를 간과하는 듯한 논리로 들릴 수도 있다.

정부에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은 북한이 ‘서해교전’ 같은 도발을 했을 때 가능한 주문이다. 청와대로서는 “이제 시작인데 속도를 조절하자는 것은 사실 남북관계 개선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사실 서두르는 쪽은 오히려 북한측이다. 북한 또한 냉엄한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김대통령 재임 중에 남북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군부는 김정일 체제의 버팀목이자 개방의 장애물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요즘 부쩍 북한 군부 인사의 중국 방문이 잦다고 한다. 군도 중국의 경제 발전상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방에 따른 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여는 군사 당국자회담과 경제 실무회담 그리고 경의선 복원 기공식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할 때까지, 장기적으로는 남북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남북관계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2000.09.21 252호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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