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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사람 필요하다”

DJ 민심 채널 ‘고장 수리중’…소장파 문제제기 수용 여부 주목돼

“NO라고 말할 사람 필요하다”

“NO라고 말할 사람 필요하다”
민주당 서영훈 대표는 일요일인 9월17일 초선 의원 5명과 2시간 가까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초-재선 13인에 의해 ‘금요일의 반란’이 벌어진 뒤 이틀 만이었다. 김옥두 사무총장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서대표는 “대통령께 최고위원회의 회의록까지 모두 정리해 보고하는 등 돌아가는 상황을 빠짐 없이 보고하고 있다”고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대통령이 민심을 파악하는 ‘보고 채널’에 이상이 있다는 소장파들의 문제 제기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러나 “신문을 보면 대통령이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대통령이 정말 위기 인식을 못하고 있다. 공식기구를 통해 보고를 받는다지만 제도화된 틀에서는 제도화된 생각밖에 안 나온다. 우리 의원들이 대통령과 면담해 살아 있는 민심을 전달해야 한다”(이호웅 의원)는 소장파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서대표의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의 민심 파악 채널에 고장이 났다’는 지적이 소장파 의원들에 의해 공식적이고도 집단적으로 제기된 것은 집권당 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다는 심각성과 위기감이 소장파 의원들을 짓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소장파 의원들이 인식하는 대통령의 민심동향 보고 채널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이들은 김대통령의 측근이 모두 동교동계 특정 인사 계열에 의해 장악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들이 당 지도부와 청와대 핵심을 구성하며 대통령을 ‘포위’하고 있어 정확한 민심의 실체와 유리된 채 특정 세력에 유리한 쪽으로 차별 선택돼 보고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과거 YS 정권 시절에는 각 수석비서관들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체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도록 돼 있는 것도 ‘여권 난조(亂調)’의 중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민정과 사정 기능이 모두 비서실장 직할 체제라는 점도 여론의 굴절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 이는 김중권 비서실장 시절의 옷로비 사건 때도 당의 동교동계 인사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그러나 그 이후 별다른 개선책이 나오지 않았다.



정무수석실의 기능이 YS 정권 때보다 매우 약화된 사실도 민심 파악 및 대야 조정력을 크게 후퇴시킨 요인이란 지적도 많다. 이는 YS 정권 때 정무수석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여러 문제를 낳은 사실에 대한 반면교사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대통령부터 정무수석실에 힘을 실어주지 않다 보니 비서실 내 ‘힘의 균형’이나 국정 집행에 필요한 민심 대처 기능에 구멍이 뚫리게 됐다는 것.

물론 김대통령은 적어도 5개 이상의 민심 동향 채널을 가지고 있다. 총리실과 청와대 비서실, 민주당, 국가정보원, 검찰 및 경찰 채널이 상설 채널에 해당된다. 이외에 군의 보고 채널도 있다. 여기에 대통령과 직접 독대하는 비공식 채널이 가동된다. ‘독대 채널’에는 김영배 고문, 권노갑 한화갑 김중권 최고위원, 김옥두 총장, 정균환 총무 등 당 인사와 야당 시절부터 교류를 가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있다. 서영훈 대표는 김대통령의 직-간접적인 민심 채널에 속해 있다 대표로 중용된 경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러 채널들도 최근 들어 ‘시스템의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는 지적들이 많다. 보고에 앞서 김대통령의 심기를 먼저 헤아려서 보고를 이에 맞추는 ‘동맥경화’ 양상도 엿보인다는 것. 예를 들어 도덕성 시비로 인해 중도하차한 송자 전 교육부장관의 경우 정보 라인에서는 문제가 될 사안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송 전 장관을 낙점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 사안에 대한 보고가 올라가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빛은행 거액대출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 여부도 대통령이 먼저 ‘특검제 불가’의 마지노선을 완강히 밝힌 마당이라 여야 대화 채널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야당이 특검 기간 내내 정치 공세, 특히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의 전초 마당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민심 수용’과는 별도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여권 핵심의 인식은 그렇다고 쳐도, 이를 대통령이 직접 강조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인 직언 체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김대통령은 옛날부터 보고를 받을 때 있는 사실(팩트) 자체만을 전달받았지, 보고를 하는 사람의 의견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그냥 넘겼다”면서 “보고는 받지만 판단과 결정은 자신이 내린다는 오랜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옷로비 사건과 관련된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경질 과정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여론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김대통령의 인식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와의 ‘독대 채널’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여권의 한 인사는 “남북관계나 외교 사안이 많아지고 바빠지면서 대통령의 국내 여론 수렴 기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면서 “특히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해 지도층 인사들의 독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김대통령이 민심 전반에 대해 ‘깜깜한’ 것만은 아니다. 여권의 한 중진 인사는 “사실 대통령은 알 만큼은 안다. 매일 신문 사설 읽기를 거르지 않는 분인데 어떻게 민심을 모르겠는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대처 방안이다. 대통령 뜻과 달리 대처 방안이나 판단 요인이 왜곡돼 전달된다면 민심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도 소용없는 일 아니냐”고 말한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집단적인 문제 제기는 당 쇄신론과 직결돼 있다. 이들의 주장은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핵심 전체의 현실 인식을 문제삼은 것이지만, 8·30 전당대회와 더불어 대대적인 당직 개편 및 쇄신안이 발표됐더라면 ‘금요일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들끓었던 당 쇄신론이 9월1일 청와대의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부터 좌절되고 아무런 후속 조치도 나오지 않자 결국 터져나오고 만 것.

대통령이 일단 아홉 겹의 담이 쳐진 ‘구중궁궐’(청와대)에 들어가면 민심과 유리될 수밖에 없도록 돼 있는 것이 우리나라 권력구조의 생리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띄우는 ‘인터넷 신문고’가 활성화된 디지털 시대의 정치라지만, 그 내용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의원들의 ‘상소’(上訴)가 대통령에게 직접 들어가는 길은 지극히 좁기만 하다. 16일 청와대에서의 최고위원 경선 낙선자 위로 오찬에서 조순형 의원 등이 “일반 평의원은 몇 년이 지나도 대통령 한번 만나기 힘들다. 대통령과 의원들과의 직접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

김대통령은 16일 위로 오찬에서 일반 의원들과의 만남을 갖겠다고 밝혔다. 비록 그 횟수와 모임 사이의 기간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바닥 민심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의 가능성은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자신들만의 모임처럼 ‘직언’을 쏟아낼지도 미지수다. 여권이 집권 후반기의 총체적 난맥상을 벗어나는 길은 ‘제도화된 틀’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던지는 ‘가치 혁신’이다.





주간동아 2000.09.21 252호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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