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2

2000.07.13

나무향 진동하는 ‘모더니즘 세계’

  • 입력2005-07-21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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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향 진동하는 ‘모더니즘 세계’
    보통의 사람들은 화랑이나 미술관에 가면 속칭 ‘골때림‘만을 느낀다.대개의 전시장에는 그저 어지럽게 여러 색이 칠해진 캔버스나 , 무슨 형상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금속조각이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니,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보며 콤플렉스마저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결과는 20세기에 서구의 ‘몇몇‘ 화가들이 꾸민 모종의 ‘음모‘가 원인이다. 그 ‘음모‘란 노아의 방주 이야기, 헤라클레스의 영웅담, 따뜻한 봄날 강가를 산책하는 사람 등 그림에서 신화, 교훈, 일상생활의 이야기나 상징성을 배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 기법인 원근법과 명암을 화폭에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화면에 거리감과 볼륨감을 없애고 갖가지 색만이 채색된 평평한 캔버스가 돼 버린다. 이런 ‘음모‘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는 작가-이론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져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화가의 감성과 직관만이 순전히 색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만들어낸다.이것이 바로 모더니즘 미술이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리고 있는 정승운의 전시도 이런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공간에 순간 당황한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계단을 내려가면 거대한 나무판이 얽힌 그의 작품이 있다. 전시장은 30년 넘은 사루비아 다방을 개조한 지하 공간으로, 벽면이나 천정 높이가 전혀 고르지 않고 습하며, 어둡다.

    정승운의 작품은 조각이자 회화다. 작가는 항상 그랬듯 공간을 위한 작품을 구상했다. 그래서 우선 자신의 눈 높이에 맞춰 네 벽면에 선을 긋고, 그 선에 맞춰 전시장 한 가운데의 돌기둥에 8개의 직사각형 향나무판을 끼워 연결했다. 향나무로 인해 관객은 시각적-후각적 체엄을 동시에 하게 된다. 향을 맡으며, 어렸을 적 사각사각 소리를 내던 연필이나 제사 등을 떠올린다.

    한편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무판을 보면 그 자체가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회화다. 하지만 무릎을 조금 굽히거나 계단에 올라서 보면 다시 조각으로 보인다. 본래 조각이란, 관객이 작품 주위를 돌아보면서 그 전체 윤곽이 형성되는데 반해, 정승운의 작품은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회화나 조각이 된다. 또한 향나무 고유의 갈색, 연보라의 색감과 무늬 외에도 나무의 감촉과 그에 담긴 겹겹의 세월을 감지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무의 색과 냄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결국 정승운의 행나무는 그 자체가 캔버스이자 조각이며, 작품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된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또다른 요소는 나무판의 힘차게 뻗은 선과 급격히 꺾이는 각도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이다. 계단에서 내려다보면, 십자형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나무판은 바람개비 형상으로 공간에 강한 소용돌이 운동감을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무질서한 전시공간에 균형을 부여하는 힘이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눈 높이에 맞춰 설정한 ‘선‘이다. 이 선은 일정하게 그어지다가 굵어지기도, 멈추기도 하면서 작가의 작업 행위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벽면의 선은 나무판과 일직선상에 있어 공간을 연장, 확장하는 듯하다.

    작가가 던져놓은 작품앞에서 나름대로 보고, 맡고, 느껴보는 것이 현대 미술미술의 즐거움이다. 6월14일~7월 14일까지 인사동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문의 02-733-0440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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