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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환자들의 설움

다치고 내쫓기고… 산재환자 두번 운다

대형병원들 경영난 이유 산재요양 포기 잇따라… 근로자들만 피해 “나 어떡해”

다치고 내쫓기고… 산재환자 두번 운다

다치고 내쫓기고… 산재환자 두번 운다
강남성모병원 서울대학병원 서울삼성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현대중앙병원…. 병상 수나 진료수준에서 한국 최고인 병원들이다. 이들 병원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담당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 3930여 개의 크고 작은 병원이 가입돼 있는 이 ‘리스트’에 유독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류 병원’들만 빠져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 시행일이 다가올수록 산재근로자들이 대형 병원에서 ‘노골적’으로 내몰리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재환자의 요양업무를 담당하여 왔으나…경영악화로 인하여…계약의 해지를 통보하오니….’ 5월1일 서울 S병원은 근로복지공단에 이런 공문을 보냈다. “36년간 해오던 산재환자 치료를 이 날 자로 포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이 병원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담당의료기관지정 해제’ 방침을 공단측에 처음으로 알린 때는 지난 3월. 계약해지를 막을 강제규정을 갖고 있지 못한 공단으로선 전전긍긍했다. ‘한국에서 산재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병원’이라는 상징성이 가장 아픈 부분이었다. ‘대형 병원 산재이탈’의 신호탄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공단 담당직원은 “이 문제가 워낙 심각해 50여 차례나 병원측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체면 불구’하고 일개 사립병원에 매달리다시피 사정하다 보기 좋게 거부당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장 피해를 보는 쪽은 산업재해 근로자들이었다. 이 병원은 5월 들어 입원중인 산재근로자 13명을 모두 내보내고 100여명에 이르는 외래진료환자들의 치료도 거부했다. 다음은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한 아들 김한준씨의 말.



“약을 타러 병원에 갔더니 담당자가 산재환자는 앞으로 진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생활권에 가까운 이 병원에서 편안히 진료를 받아오다 다른 병원에 가야 할 처지가 됐다. 요즘 다른 종합병원들도 산재환자는 안받는 추세다.”

5월3일 오후 근로복지공단에서 행정처리를 위해 들른 산재근로자 윤모씨(27·여)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인터넷벤처기업에서 잦은 밤샘작업을 하다 99년 12월 뇌출혈로 쓰러진 윤씨는 S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그녀는 이 병원의 산재환자진료포기 조치가 마음에 걸린다. “완치가 안된 상황에서 다른 병원 낯선 의사의 손에 진료를 맡겨야 된다는 게 두렵다. 나를 직접 수술하고 5개월 동안 경과를 지켜보아 온 의사에게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차라리 산재보험을 포기하고 자비로 병원비를 내서라도 그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요양급여 등 다른 혜택도 모두 정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옮겨야 했다.”

이 병원은 같은 의료재단소속 다른 3개 병원에서도 동일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 개개인들에게 의료서비스측면의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병원측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병원 박두혁홍보실장은 “서울대학병원은 국립병원이면서도 산재환자들을 받지 않고 있다. 1000∼2000 병상에 이르는 서울시내 다른 일류 사립병원도 마찬가지다. 아예 처음부터 산재환자를 받지 않아 온 병원들은 제쳐 두고 의약분업을 대비해 최근 산재환자진료를 포기한 병원만 잘못된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다.”

서울 K병원 기획실 관계자는 “서울시내 한 유명 사립병원은 ‘사회복지법인’이면서 산재근로자는 받아주지 않는다. 설립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 아니냐”고 말했다. 한 의료재단은 소속 병원 중 한 곳에서만 산재환자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병오 한국산재노동자협회장은 “규탄대상”이라며 노동계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금전적인 이유로 환자를 가려가며 받는 것은 의료기관으로서 윤리적인 문제소지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류병원들은 산재환자를 안받는 이유로 “산재환자의 경우 병원경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의료수가와 병상회전율이 일반환자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을 든다. 서울 S병원의 99년 진료실적에 따르면 의료보험환자의 하루평균 진료비는 32만2000원이었지만 산재환자의 경우 19만6000원에 불과했다. 평균 재원일수는 각각 10.5일과 39.7일로 산재환자가 훨씬 길었다. 연간 8380명의 산재환자를 ‘떨어내고’ 의료보험환자를 더 받으면 병원수입이 부쩍 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의보수가가 형편없다. 원내 햄버거가게나 주차장 수입이 진료수입보다 훨씬 낫다. 지난해 총 매출액 4000억원 중 3%만이 순수익으로 잡혔다.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환자수가 감소될 것이 분명해 산재환자를 받을 여유가 없다. 종합병원의 산재환자 거부 움직임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서부지사 정군식차장은 산재환자와 관련된 행정업무가 너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따른 요양, 보조기사용, 연금, 휴업급여, 장해보상 등 한 환자당 열 가지도 넘는 증명서류를 담당의사와 병원직원이 일일이 작성해 줘야 한다. 하루에 환자 100명분 서류를 혼자서 대필해줬다는 병원직원을 본 적도 있다.” 노동부는 산재수가인상 등 일류병원의 산재이탈을 막을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4월26일 발표된 ‘99년 산업재해통계분석’에 따르면 95년부터 줄곧 감소하던 산재근로자 수가 99년엔 전년 대비 7.5%가 늘었다(5만5405명). 뇌-심질환, 경견완장애 등 사무직종에서 주로 발견되는 재해는 98년에 비해 72.2%나 증가했다. 누구한테나 찾아올 수 있는 산업재해. 진료수가를 둘러싼 의약분업 논란에서 가장 먼저 유탄을 맞은 쪽은 사회적 약자, 노동력을 상실한 근로자들이다.



주간동아 2000.05.18 234호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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