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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연예계 검은 손

”한번 만나봐…너 스타 만들어 준대”

브로커들 '돈·출세' 미끼 여자 연예인 유혹…하룻밤 대가로 백지수표 제시도

”한번 만나봐…너 스타 만들어 준대”

”한번 만나봐…너 스타 만들어 준대”
50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채탤런트가 되었다. 연수가 끝남과 동시에 동기들과는 달리 꽤 좋은 배역을 맡았다. 드라마가 끝난 뒤 CF도 찍었다. 모두들 날 부러워했다. 앞으로의 인생이 온통 장밋빛으로 빛날 것만 같았다.

1년 후, 그동안 출연했던 드라마가 빛을 보지 못하면서 출연 제의가 뚝 끊겼다. 수입은 줄었지만 탤런트라는 신분 때문에 여전히 좋은 차를 타야 했고, 좋은 옷을 입어야 했다. 나오는 출연료는 없는데, 카드빚은 점점 쌓여만 갔다.

어느날 누군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왔다. 자신을 O언니라고 밝힌 그 여자는 요즘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도와줄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라면 강남에 빌라도 사줄 수 있고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며 한번 만나서 식사나 같이 하라고 나를 설득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그 남자는 동남아쪽에서 금융일을 하는 준재벌쯤 되는 사람이라 했다. 예전에도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땐 콧방귀를 뀌고 말았는데… 지금은 솔직히 마음이 흔들린다.’

‘방송국 분장실.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앉아 있는 나를 선배 한 분이 불렀다. TV에서만 보던 하늘 같은 그 선배는 다정한 얼굴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가정형편은 어떠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어려운 점은 없느냐…. 그 선배는 내가 연예계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며 스케줄을 확인했다. 며칠 후 약속한 장소에 나가보니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친분이 있는 여자탤런트들이 언젠가 푸념처럼 들려준 이야기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연예계 이면에 무언가 어두운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져 왔던 연예계의 매매춘 실태가 최근 방영된 SBS ‘뉴스추적’의 ‘연예 브로커, 은밀한 거래’를 통해 밝혀져 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한 브로커는 “3명에 3000만원이면 알 만한 애들을 데리고 놀 수 있다”고 했고, 어느 여자 연예인은 하룻밤 대가로 백지수표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연예인 매매춘은 방송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여자 연예인들과 재력가, 권력가 사이의 염문은 예전부터 무성했고 그들 사이엔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의 ‘꽃값’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과 여자 연예인은 회사 CF 촬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맺어지거나 채홍사 등을 통해 연결된다. 방송가에서 소문난 채홍사로는 여자 중견탤런트 K씨와 S씨가 꼽히며, 연기자나 모델들이 자주 다니는 패션숍이나 미용실 등의 업소 주인들이 뚜쟁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뚜쟁이 중에는 재벌가 남자들의 주변에 기생하며 그들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사람들도 있고, 연예인들을 많이 알고 있는 전직 매니저 출신도 있다. 고급 룸살롱의 마담들도 대표적인 연예브로커로 거론되곤 하는데, 이들 중에는 예전에 연예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연예계 쪽에 발이 넓은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여자연예인의 연락처를 알아내 집요하게 설득한다. “거래하고 있는 사장님이 한번 보고 싶어한다” “연예인치고 나를 통하지 않고 뜬 사람이 없다” “스폰서가 없으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스타가 되려면 좋은 차를 타고 의상도 고급으로 입어야 한다. 그 사람이면 널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다”며 여자 연예인들을 유혹한다.

이런 마담뚜들은 자기들끼리 연결돼 있어 정보도 교환하고 특정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이나 연락처를 절대 가르쳐주는 법이 없고, 소개를 받는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철저한 비밀보장을 생명으로 하고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기자는 오래 전 전직 촬영기사라는 한 브로커를 만난 적이 있는데, 모델 에이전시를 하고 있다는 그는 당시 활발하게 활동중인 여자연예인들의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대부분 반누드 사진이거나 야한 비키니 차림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모델 출신의 톱스타 L양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 달 전 탤런트 조은숙이 토크프로그램에 나와 첫사랑의 남자와 두 시간 반 동안 키스한 경험을 얘기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기자와 만난 조은숙은 “방송이 나가고 이상한 전화가 왔었어요. 대뜸 ‘얼마’ 하며 장난 아닌 돈으로 현혹하려고 들기에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그랬어요. 신인 때도 차, 아파트 이런 걸로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책으로 섹스 논쟁을 불러일으킨 서갑숙도 그의 책에서 한 일본인 사업가가 하룻밤에 천만원을 제시하며 현지처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고 고백했다. 그때도 두 사람 사이에는 중간브로커가 있었다.

연예계 매니저들은 대개 여자 탤런트를 한두명씩은 데리고 있다. 질 나쁜 매니저들은 여자 탤런트들을 돈 많은 스폰서와 연결시켜 주고 대가를 받기도 한다. 매니저는 이 돈을 캐스팅을 위한 방송계 로비자금으로 쓴다고.

TV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다 현재는 연극무대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K양의 이야기. “TV에서 활동할 때 매니저가 있었는데, 어느날 미팅이 있다며 나오라고 했다. 가보니 방송국이 아닌 술집이었다. 매니저는 어떤 사람에게 나를 소개시키며 ‘잘 모시라’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술을 따르라, 안주를 먹여달라며 나를 접대부 취급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사람이 매니저를 불러 뭐라고 하니 매니저가 자리를 떴다. 그는 대뜸 자신의 차에 오르라고 했다. 경기도 어딘가에 자신의 별장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싫다고 했더니 ‘이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회유했다. 그래도 거부하자 ‘이 바닥에 발붙이고 살 수 없을 줄 알라’며 폭언을 하고 떠났다. 이튿날 매니저가 불러 큰 실수했다며 펄펄 뛰었고, 그 길로 매니저와 헤어졌다.”

그 뒤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K양은 변변한 배역 한번 맡지 못하고 방송계를 떠나 연극인의 길로 들어섰다.

룸살롱에 출입하는 여자연예인들의 얘기도 연예가에서는 이미 구문이다. 몇 년 전 강남구 역삼동의 모 룸살롱에서는 방송사 공채출신 탤런트 C모양이 접대부로 일하다 고객 신모씨 등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예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알려진 룸살롱은 사건이 벌어진 O룸살롱을 비롯, G클럽 K살롱 등 대여섯 군데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룸살롱은 강남에서도 A급으로 분류돼 아무나 출입할 수 없으며 밀실을 마련해두고 손님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룸살롱 주인들은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연예인들을 소개시켜 주고 고액의 알선료도 챙겨왔다. 이런 곳에 드나드는 연예인들은 주로 고정 프로가 없는 단역 출신 여자 탤런트들. 이들은 룸살롱 사장과 계약을 맺고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이곳에 나와 ‘접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모 매니저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일부 여성 연기자 중 탤런트라는 직함을 내세워 고급 매매춘에 동원되는 경우가 있다” “일부 광고주들이 자사의 전속 모델을 미끼로 여자탤런트에게 저녁 자리를 제의해 오는 경우가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연예계에는 이런 매춘 비리 말고도 연예인 노조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PD 등에 대한 여성 연예인들의 성 상납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방송가의 성 상납 요구 관행은 작년 7~8월 연예인 노조가 연예인 4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20% 정도가 “캐스팅과 관련, 성적 요구나 제의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다음은 응답자들의 경험담.

“PD라는 권력에 못이겨 모텔까지 끌려갔다. 다행히 정절을 지켰지만, 정신적 정절은 지키지 못해 오랫동안 괴로웠다.”

“OOO한테 배역을 미끼로 성적 요구를 강요받은 적이 있으나 완강히 거부해 방송 출연이 몇 년 째 전혀 없다.”

“쫑파티 후 밤늦게 PD의 차를 탈 것을 PD와 선배 연예인으로부터 권유받았다.”

‘뉴스추적’과 그 이후의 보도를 접한 시청자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연예인 매춘’과 ‘성 상납’ 사실 여부를 밝히고 철저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매춘을 한 연예인들의 명단을 공개해 방송 출연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쪽만 비난하지 말고, 이들로부터 성을 사서 즐긴 남성들의 신원을 공개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남성 중심의 권위주위적 사회에서 대중매체 역시 여성 연예인의 성적인 매력만을 중시하고 섹스어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그들 나름의 생존전략이 되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도덕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매매춘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두운 거래로 스타덤에 오른 사람들과 연예인을 성적인 도구로 전락시킨 사람들 모두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예인을 ‘딴따라’라며 폄하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 연예인들은 대중의 우상이 되었다. 그런 만큼 나름의 의무도 요구된다. 매춘과 같은 비리가 더 이상 연예계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연예인들은 물론 방송사 안팎의 자정노력이 시급하다.





주간동아 2000.05.18 234호 (p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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