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2000.04.27

암탉이 울어야 벤처가 산다

5천여개 중 152개업체… 컴퓨터 지식 부족 등 성공까진 ‘험남한 길’

  • 입력2006-05-19 11: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암탉이 울어야 벤처가 산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방법이든 강구해야 했지요. 전국적으로 15개에 이르던 매장을 대부분 정리하고 나서 재고처리에 골몰하다 통신판매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송 시작하고 두시간만에 매출액이 1억원을 훌쩍 넘더군요. 문득 ‘이거다’ 싶었어요. 네트워크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죠. 인터넷을 이용하면 24시간 판매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하니 온몸에서 새 힘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패션업체 아드리안느를 운영하던 김해련씨(38)는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기업가로 변신했다. 98년 IMF(국제통화기금) 서리를 맞아 전체 패션업체 중 50% 정도가 부도사태를 맞고 있을 때, 그는 인터넷으로 눈을 돌려 패션업계에서 다져진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당시만 해도 주위에 인터넷 전문가가 없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자문했다.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한편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체계화시켜갔다. 그 후 ‘웹넷코리아’라는 회사를 만들고 ‘패션플러스’(www.fashionplus.co.kr)라는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이 쇼핑몰의 회원수는 현재 11만명, 월 매출액은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김씨는 회사를 설립한 지 1년만에 ‘성공한 벤처기업가’ 대열에 올랐고, 초기자본금이 10억원이던 회사는 이제 그 20배인 2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자들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지금 깨지고 있는 건 ‘기업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낡은 생각이다. 여대생에서 주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벤처기업 창업이 붐을 이루고 있으며 속출하는 갑부 벤처사장 대열에 젊은 여성들이 합류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올 2월 발표한 한국벤처기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올 1월말까지 등록한 벤처기업 5000여개 중 여성 경영자가 운영하는 벤처기업이 152개로 여성벤처 비중이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이는 98년말 14개(2.5%)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것. 올 1월 코스닥 등록과 함께 벤처거부로 떠오른 버추얼텍의 서지현사장(36)과 아데코코리아의 최정아사장(33), 이코퍼레이션의 김이숙사장(39), ㈜컨텐츠코리아 이영아사장(35), 마리텔레콤 장인경사장(48) 등은 이미 벤처업계에서 단단히 자리를 굳힌 여성기업인들이다.

    지구촌문화정보서비스㈜의 우성화사장(37)은 정부의 공식지정을 받아 인터넷과 전산망을 연결한 티켓링크 사이트(www.ticketlink.co.kr)로 전국 영화관, 공연장, 경기장 등의 입장권 표준전산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탁월한 기술력과 협상력을 지닌 경영자로 주목받는 그는 숙명여대 수학과를 졸업하던 88년 초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500만원으로 광고 이벤트회사 ‘에이팀엔터프라이즈’를 창업했다.



    88올림픽을 전후해 이벤트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해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이벤트와 홍보물량이 폭주했고, ‘서울 정도 6백주년 행사’와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 등을 기획, 주관하면서 업계의 시선을 모았다.

    우씨는 이벤트 기획일을 하면서 허술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티켓관리 방식에 의문을 가졌고, 미국 브로드웨이의 공연단을 초청하면서 티켓예매를 전산망으로 시도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산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임신을 했지만 태교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출산예정일까지 막무가내로 일을 했고, 산후조리 중에도 집의 전화기와 팩스가 불이 나는 통에 친정어머니가 보름만에 그의 등을 떠밀어 회사에 내보냈을 정도.

    전업주부들이 평소에 갈고닦은 살림솜씨를 인터넷 창업으로 연결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터넷 꽃배달 전문업체 ‘산타플라워’(www.santaflower. co.kr)의 정규은사장(30)은 1년 전만 해도 마우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컴맹주부였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한 꽃배달 사업으로 월 1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초보주부 박미정씨(30)는 자신의 관심사를 사업과 연결시켜 인터넷 요리정보 사이트 ‘반찬나라’(www.banchan.co.kr)를 오픈했다. 가정주부들과 신세대에게 유익하고 편리한 요리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목적. ‘반찬나라’에서는 국내 최초의 실시간 인터넷 동영상 요리방송도 진행하고 있다.

    사회 제반 여건이 나아졌다 하더라도 여성이 창업전선에 선뜻 뛰어들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벤처기업의 홍보, PR를 대행하고 있는 마이스터 컨설팅의 한재방사장은 “인터넷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친숙해져야 하고 전문적인 지식도 요구되는데, 이공계 분야 전공자 중에 여성은 아직 소수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가사나 육아에 대한 부담이 남성에 비해 크다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여성경영인이라고 하면 일단 미심쩍어하는 투자자들의 의식도 여전하며 인적 네트워크 구성이나 정보교류에 있어 취약하다는 것도 기업 경영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보란 듯이 기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벤처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여성 벤처인 산실’로 각광

    Z-존 인터미디어 “1년만에 회사 키워 독립”


    정보통신부가 후원하는 이화여대 숙명여대 서울여대 등의 창업지원센터가 여성벤처인들의 산실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학내 벤처동아리에서는 많은 여대생들이 벤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화여대 창업지원센터장 김효근교수(경영학과)는 “이곳 창업지원센터는 벤처지망생들에게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무실과 PC, 각종 기자재 등을 제공하고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인력 및 지식을 모아 입주업체의 성공을 위해 지원한다”고 말한다.

    이대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한 인디(독립)문화 벤처기업인 ‘Z-존 인터미디어’의 성장은 눈부시다. 이 회사의 대표 이세리씨(28)는 이대 정보디자인 대학원 재학생으로 벤처기업가가 됐다. 1년간 창업지원센터에서 회사를 키워 올 4월 서교동에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직원도 20명으로 늘었다.

    이대 창업지원센터 내에는 ‘artech’ ‘able’ ‘Get’등의 이름을 내건 벤처동아리들도 있다. 이들 동아리 회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함께 연구하고 어설프나마 사업계획도 세워본다. 학업과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느라 사생활에 제약을 받을 때가 많지만 인터넷 세계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과 꿈이 있어 이들은 즐겁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