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1

2000.04.27

“국민 모두를 지식인으로”

‘모든 지식의 대학’ 교양강좌 폭발적 인기… “수업 절반은 질문과 토론”

  • 입력2006-05-19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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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모두를 지식인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지식은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프랑스 정부의 2000년 위원회가 기획하여 현재 전국민의 관심속에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모든 지식의 대학’에서는 이 질문에 366가지나 되는 정답을 제시한다.

    ‘모든 지식의 대학’은 올 한해 366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366개의 주제에 대해 366명의 석학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시간 반 동안 강의와 토론을 하는 시민 교양강좌의 이름이다. 이 강좌의 366가지 주제는 프랑스어권의 대학과 연구소 및 산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6개월간의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한 1700여개의 응답에서 과반수가 넘는 900개는 과학과 기술, 500개는 인문사회과학, 300개는 경제와 경영 관련 주제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모든 지식의 대학’ 프로그램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실용적인 내용들과 이것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한 성찰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연간 강좌는 1월부터 6월까지 ‘인간을 찾아서’, 6월에서 9월까지 ‘신기술을 찾아서’, 9월에서 12월까지 ‘사회와 문명을 찾아서’라는 세가지 커다란 범주 아래 매주 한 개씩의 별도 주제가 정해져 있고, 그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강좌가 진행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첫째주간을 시작한 이래 1·4분기에는 지식, 신기술, 윤리에 대한 비판과 성찰, 유전자 복제문제, 인구학과 세계화, 음식물, 질병, 건강산업과 사회연대 등이 주로 논의되었다.

    현재까지 12월 한달간의 주간주제 및 매일강좌의 주제와 담당교수만 정해지지 않은 상태. 이는 일반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으로 이미 공개된 주제들 외에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주제에 대해 일반우편이나 이메일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기술이나 과학관련 강좌내용은 단순히 현재의 성과만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급격한 속도로 발전하는 신기술들이 인간의 삶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비판, 그리고 과학기술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공동의 대응노력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강좌를 맡고 있는 교수진으로는 프랑스 대학의 전현직 교수들뿐만 아니라 미국 MIT나 버클리 대학을 비롯, 독일 영국 스위스 벨기에 캐나다 일본 대학들의 교수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또한 파스퇴르 연구소나 퀴리연구소 등 각종 국-사립 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 기자, 기업체 간부, 고위 공무원, 정치인 등 주제에 따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빠르게 변해가는 관련분야의 흐름을 가장 잘 강의할 수 있는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일반 국민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지식의 대학’과 같은 교양강좌가 개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이 지식의 특권화에 저항하며 기획했던 백과전서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 전통은 19세기 말에는 사회개혁가들을 중심으로 ‘민중대학’운동으로 이어졌고 68년 5월혁명 전후에도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노동자 대학’ 운동을 전개했었다.

    프랑스 2000년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지식의 대학’이 ‘지식에 대한 토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장소’이며 ‘20세기의 마지막 민중대학이자 21세기의 최초의 백과전서’ 라고 설명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그동안 국가 교육기관들이 나서서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프랑스 모든 지식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콜레즈 드 프랑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의 대학’ 강좌가 열리는 장소인 국립기술직업학교를 비롯해 다수의 국립 평생교육 기관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 교육기관의 이러한 지속적 활동과 비교해 보더라도 올해 열리고 있는 ‘모든 지식의 대학’은 두배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콜레즈 드 프랑스’의 강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강당 강의실의 절반 정도밖에 안차는데 비해 ‘모든 지식의 대학’은 강의 시작 20분전에 이미 600여석의 자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또한 ‘꼴레즈 드 프랑스’ 강의 참석자들이 주로 노인층이거나 순수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임에 반해 ‘모든 지식의 대학’ 강좌 참가자들은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의 편중없이 온갖 지식을 습득하려는 남녀노소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즉, ‘모든 지식의 대학’이 거두고 있는 성공의 이유는 강좌의 내용들이 실제로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들이며, 유전자 식품이나 인터넷, 새로운 질병 등과 같이 일상적인 삶에서 맞부딪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강좌시간도 퇴근후인 평일 저녁시간, 주말이나 공휴일 오전시간으로 정해 좀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모든 지식의 대학’은 ‘사노피-셍트라보’라는 제약회사 한 군데만의 후원을 받고 있다. 여러 기업체의 후원을 받을 경우 이러한 행사가 기업체의 선전장소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언론사들만큼은 이 프로그램의 적극적 후원자로 나서고 있다. 주간지 텔레라마를 비롯해 일간지 르몽드, 라디오 방송인 프랑스 퀼튀르, 프랑스 엥포, 라디오 블루 등이 이 행사를 후원하는 언론사들이다.

    텔레라마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리얼타임을 통해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고 프랑스 퀼튀르는 강의 다음날 오전에 하루 전 강의내용을 전국적으로 방송하고 있으며, 다른 라디오 방송들은 주간강의의 첫 번째 강좌 등을 방송`-`재방송 하고 있다. 모두 강좌가 열리는 국립기술직업학교 강의실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보완장치들이다. 정식 후원사가 아닌 언론사들도 각 매체에 주간강좌 내용을 소개하고, 특별히 관심을 끄는 발표내용들을 편집해 보도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의 강좌에서 절반은 교수의 강의, 나머지 반은 참석자들의 질문과 토론으로 이어진다. 또한 ‘모든 지식의 대학’ 인터넷 사이트 내 포럼장소에서 강좌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담당교수에게 질문을 할 수 있고 포럼 참가자들간의 토론도 가능하다. 1년간의 강좌가 끝나면 후원업체인 플라마리옹 출판사에서 강좌내용들을 편집해 새로운 백과사전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는 전 국민적 준비작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작업의 핵심인 ‘모든 지식의 대학’은 역사적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감, 인문사회과학적 전통 등이 강한 프랑스가 21세기 대중적인 지식혁명을 위해 내놓은 야심찬 카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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