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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초선들의 희망

깨끗한 정치 ‘희망의 싹’ 틔운다

주목받는 10인의 포부 … “초발심으로 성실한 의정 활동”

깨끗한 정치 ‘희망의 싹’ 틔운다

깨끗한 정치 ‘희망의 싹’ 틔운다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이번 총선 결과 새내기 의원들의 대거 등장을 지켜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가졌음 직하다. 당선 당시의 초심(初心)이,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기성 정치권의 혼탁한 물살에 휩쓸려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일반적 정서다. 주목받는 10인의 초선 당선자들 면모와 당선 소감을 통해 16대 국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본다.

서울 성동 민주당 임종석 당선자(33)

그의 이름은 89년 임수경씨의 방북사건과 함께 일반에 알려졌다. 당시 그는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 방북과 함께 300여일 동안의 기나긴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자수를 통해 3년6개월의 옥고를 치른 다음에는 90년대 내내 청년정보문화센터를 운영하면서 청년문화운동을 벌였고, 99년 한양대 동문회관에 한양문화교육센터를 설립하면서부터는 청년운동가에서 지역운동가로 변신했다.

이제 16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 된 그는 “선거에서 흑색 비방, 인신 공격, 금권선거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켰다”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을 수행하는 것이 그의 첫소망.



서울 양천갑 한나라당 원희룡 당선자(36)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 합격 등 항상 수석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원희룡 당선자. 검사를 거쳐 변호사에서 다시 정치인으로 변한 그가 과연 ‘정치 개혁의 수석’도 될 수 있을까.

그의 첫 포부는 “소모적인 갈등과 반목, 불신의 비생산적인 정치권을 과감히 개혁해 21세기 한국 정치가 ‘희망의 정치’가 되도록 앞장서겠다”는 것.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음으로써 ‘돈 선거’를 거부하면서, 만나는 주민들마다 “당리당략에 따르지 않는 정치 일꾼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의원직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당적 변경은 하지 않겠으며, 세비의 10%를 의정연구비에 사용하고 세비 사용 명세를 모두 밝히는 등 유리알처럼 투명한 정치를 하겠다고 유권자들에게 다짐했다.

97년 김영삼전대통령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YTN 인사 개입) 비디오 테이프 단독 보도로 한국기자상 특별상과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수여한 민주언론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97년 대선 때 청와대 비서관들의 ‘이회창 후보 지원 문건’과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레스토랑 위장 운영을 단독 보도한 ‘특종 기자’ 출신.

그는 돈과 미국 유학 제의 등 온갖 회유와 권력의 압력에 맞서 결국 김현철씨에게 국민이 내린 수인번호 1815번을 받게 했듯, “낡은 정치권 때가 묻지 않은 패기와 추진력으로 정치권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소위 ‘DJ 저격수’인 한나라당 이신범의원을 낙선시킨 것처럼 “폭로 정치에 종지부를 찍게 하겠다”는 다짐.

인천 계양 민주당 송영길 당선자(37)

96년 6·3 보궐선거에서 패했던 한나라당 안상수의원과 재격돌 끝에 당선됐다. 84년 연세대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그는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의 배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자마자 곧바로 인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대우자동차 하청회사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해 택시노련 인천지부 사무국장을 그만둘 때까지 7년여 동안 노동 현장을 지켰다. 결혼도 구로공단의 공장노동자와 했다. 92년 그의 사법시험 도전은 택시노련의 찬반 표결에 부쳐질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그는 “4월이 될 때마다 신동엽시인의 절규처럼 내 자신 속의 껍데기는 사라지라고 외친다”면서 “대중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계양구민의 가슴에 신애국운동의 불을 지피고 싶다”고 말한다. “변치 않는 마음으로 황소처럼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 그의 소감.

광주 지역 여성 운동계의 ‘대모’격. 대학시절부터 YWCA 간사를 맡은 이래 30여년 동안 YWCA 활동을 했고, 87년부터 광주 YWCA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이밖에도 광주시민연대모임 공동의장, 광주-전남 환경운동 공동의장, 지방화시대를 여는 시민의 모임 공동의장 등 거의 모든 환경, 시민, 여성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4대 총선 때부터 공천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가 지역 시민운동계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공천을 받았다.

양성 평등 운동의 정치적 지원을 통한 인간다운 삶의 가치 실현, 여성 통일운동 추진, 한국 여성계 위상 제고 등의 포부를 펼치고 있다. 선거 초반부터 전처 소생의 딸을 외국에 입양시켰다는 루머에 시달리는 등 고초를 겪은 탓인지 “비방과 흑색선전이 없는 깨끗한 정치 풍토를 조성하겠다”는 각오.

성남 분당을 한나라당 임태희 당선자(43)

서로 맞붙는 볼썽 사나운 꼴은 피했지만, 이웃 선거구의 재경부장관은 떨어지고, 과장(서기관)은 당선되고…. 임태희 당선자는 정보통신 분야 기린아인 한통프리텔 사장 출신 민주당 이상철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려 역시 분당 지역이 한나라당 텃밭임을 입증.

그는 행정고시 합격후 재무부관세국, 국제금융국, 재무정책국 등과 재정경제원 예산실, 청와대 경제비서실 등을 거친 금융전문 엘리트 출신. 재경부 경제정책국 산업경제과장을 지내다 출마했다. “경제부처에서 얻은 전문성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정치의 효율성을 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공허한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치를 펼치겠다”는 다짐. 와병중인 한나라당 권익현부총재의 사위.

고양 일산갑 민주당 정범구 당선자(46)

97년 대선 당시 텔레비전 3사 합동 주관 대통령후보 토론의 사회를 보면서 널리 알려진 방송 진행자 출신. 독일 마부르크대학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경희대 등에서 ‘비교정치’를 강의하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을 거쳐 94년부터 ‘정범구의 세상읽기’ 등 KBS와 CBS의 각종 시사토론 프로그램 사회를 맡았다. 이러한 유명세로 인해 민주당은 1년 전부터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지난 대선에 패한 한나라당은 단 한 번도 입당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시사평론가로서 숱하게 정치권을 비판해 왔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어,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어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의 정치 입문 소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우리 사회의 개혁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권 주역의 한 사람. 77년 서울대 유신반대 시위 주동으로 투옥, 80년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 92년 이선실 간첩사건 연루로 구속…. 13대 총선 땐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서울 동작갑에서 낙선했고, 14대 총선은 민주당 동작갑 공천에서 낙천, 15대 총선은 민주당 후보로 과천-의왕에서 낙선했다. 재야 시절 한때 김대중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87년 대선 때 야권 분열 이유로 결별을 선언한 이후로 줄곧 ‘안되는 길’만 고집했다. 그러다 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에 동참하면서 현실 정치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당선 일성은 “고(故) 제정구의원이 못다한 지역통합의 정치, 형평의 정치, 개혁의 정치를 소명으로 삼겠다”는 것. “제의원의 도움으로 군포에 자리를 잡았다”면서 “제의원 영전에 배지를 바치겠다”고.

보은-옥천-영동 한나라 심규철 당선자(42)

민주당 이용희, 자민련 박준병, 무소속 어준선 등 중진 거물급 인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야말로 정치 신인이 일을 냈다. 영동군 양강면 산박리 산골의 전답 한 필지 없는 편모 슬하에서 자라나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새벽 신문배달로 학비를 조달한 입지전적 인물. 삼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교 진학후 서울대 법대 졸업.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 탓인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대외협력간사, 헌법재판소 국선 대리인 등을 하면서 영동과 옥천에서 지난 7년여 동안 무료 변론 활동을 했다.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진상규명위’ 위원을 맡기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농촌 주민들의 신뢰 회복에 매진하겠다”는 각오.

경북 구미 한나라당 김성조 당선자(41)

환경기사 1급(수질), 위험물 취급 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분해성 고분자를 이용한 지속성 비료 제조법 등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이색 정치인. 두 번의 경북도의원을 지냈지만 중앙 정치 무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거의 돈을 쓰지 않아 경북선관위로부터 얻은 별명이 ‘왕소금 덩어리’.

‘킹 메이커’ 김윤환후보를 쓰러뜨린 그는 “권력의 본질은 시민에게 있으며, 시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문화를 이뤄내겠다”고 당선 소감을 피력. “소금보다 더 깨끗한 순백의 도화지에 내일의 푸른 미래를 설계하는 ‘순백의 정치인’, ‘희망의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각오를 보인다.



주간동아 2000.04.27 231호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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