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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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순수혈통 환상 깨기

  • 입력2006-05-16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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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 순수혈통 환상 깨기
    한국 문화는 하늘에서 떨어졌나?”는 물음에 대해 ‘실크 로드와 한국 문화’의 저자 11명(국제한국학회 회원)은 입을 모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대답한다. 학창시절 반만년 역사의 유구한 문화와 배달 민족의 고유성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온 우리에게 이건 또 웬 말인가.

    현재 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화여대 최준식교수(한국학과)는 책 서문에서 ‘한국문화 지상주의’를 포기하고 우리 전통문화의 ‘잡종성’을 주장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우리 문화의 고유성만을 강조해 왔다. 끄떡하면 ‘세계 최초’요 ‘세계 유일’이라고 자랑도 많이 했다. 그리고 우리만이 고유한 문화를 지켜온 것과 같은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한편 이런 태도의 정반대 편에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중국 문화 일색으로만 생각하는 또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한국학회를 결성하고 지역학, 그 중에서도 아시아 쪽의 지역학을 전공한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이런 태도는 전부 환상이었다. 우리 문화는 주변국들과 끊임없는 교류 속에 생성된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문화의 ‘순종주의’와 ‘별종주의’(다른 동아시아 문화와의 차별성과 배타성을 강조하는 것) 대신 ‘잡종주의’를 채택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문화 형성 초기 단계에 실크 로드를 중심으로 한 북방 문화의 유입과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우리 고유의 민속으로 알고 있는 씨름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씨름꾼의 얼굴이 서역인(그 중에서도 이란인에 가깝다고 한다)이며 씨름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들어왔다는 해석이다. 또 우리가 88올림픽 개막행사 때 가장 한국적인 장면이었다고 격찬한 굴렁쇠 굴리기도 알고 보면 몽골 아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와 다름없다.

    신라시대에 콘스탄티노플에 사는 귀족부인의 머리핀이 낙타에 실려 경주까지 도착하는 데 6개월밖에 안걸렸고, 배편으로는 2개월이면 충분했다고 하니 고대사회의 국제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총론격인 민병훈박사(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실크 로드를 통한 역사적 문화교류’는 우리 나라에 북방문화가 유입된 다양한 경로를 보여준다.

    전인평교수(중앙대 음대)는 국악의 대표격인 ‘영산회상’이 인도 ‘라가’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왕산악이 중국 악기를 고쳐 만들었다는 거문고도 인도 악기 비나와 유사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평래박사는 한국인들이 몽골에 대해 감정적인 ‘동류의식’을 갖다보니 오히려 객관적인 검증 없이 문화적 유사성만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고, 김천호교수(한양여대 식품영양학과)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문화가 퇴조했던 고려 말에 원나라의 영향으로 다시 육식이 늘어나는 과정을 설명했다. 김용문교수(원주대 의상과)는 각종 문헌과 고분 변화에 등장하는 옷, 머리모양, 신발, 장신구, 직물을 가지고 문화교류 현상을 분석했으며, 국내 유일의 유리 연구가로 알려진 이인숙박사(경기도 박물관 학예연구실장)는 인공 유물인 유리를 통해 우리 나라와 남방국가의 교역사실을 입증했다.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는 고려 때까지 왕래가 잦았던 이슬람 상인들이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성리학의 폐쇄적인 세계관 때문에 더 이상 오지 않게 됐다는 것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는 64쪽에 달하는 원색화보와 인도음악 ‘라가’ CD가 보너스로 들어 있다.

    실크 로드와 한국 문화/ 최준식 외 10명 지음/ 소나무 펴냄/ 455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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