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0

2000.04.20

장종훈 “방망이로 말한다”

  • 입력2006-05-16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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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훈 “방망이로 말한다”
    86년 1월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막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의 전신) 선수단을 이끌고 부산 다대포를 거쳐 진해에서 전지훈련을 펼치고 있던 배성서감독은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맞았다. 여드름 자국이 송송한 더벅머리 청년이 야구를 하고 싶다며 부모님과 함께 캠프를 방문한 것이다.

    체격 조건은 좋아보였다. 그 청년은 세광고에서 야구를 했지만 팀 성적이 전국대회 4강권에 들지 못했고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아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배감독은 “오늘 훈련을 모두 마쳤으니 내일 와서 테스트해 보자”고 말했다. 그 청년이 바로 장종훈이다. 그는 진해 변두리 여관방에서 외풍에 떨며 밤을 꼬박 새웠다. ‘과연 프로구단에 입단할 수 있을까’ 가슴이 떨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테스트는 합격이었다.

    유격수 장종훈은 수비력은 신통치 않았지만 공을 맞히는 재주가 있었고 파워도 돋보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연습생 신분으로 빙그레 유니폼을 입은 그의 첫 해 연봉은 당시 2군 연봉 하한선인 300만원. 가능성이 보이자 구단이 600만원으로 올려 줬지만 프로선수 몸값이라고 부르기 창피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는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훈련에만 매달렸다. 1년을 보내고 나니 나무방망이를 치는데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웬만한 투수들의 공을 때려낼 자신감도 생겼다.

    87년 봄 장종훈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시즌을 개막하고 몇 경기 치르지도 않았는데 1군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던 이광길(현 한화 2군코치)이 손을 다쳐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침착해야 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가슴은 울렁거렸다. 4월14일 해태전. 장종훈이 1군에서 처음 만난 투수는 조도연이었다. 원광대를 졸업하고 프로 3년차인 조도연은 철벽으로 불리던 해태 마운드에서 장래를 인정받고 있던 유망주였다.

    두 손을 불끈 쥐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손끝에 짜릿한 느낌이 이어지더니 좌중간을 가르는 깨끗한 2루타였다. 그렇게 장종훈의 신화는 시작됐다. 이광길은 부상에서 회복됐지만 어느 새 장종훈에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14년이 흐른 지금 장종훈은 ‘기록의 사나이’가 됐다. 91년과 92년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6일 대전 홈구장에서 벌어진 현대전 7회말. 선두타자 장종훈은 상대투수 김수경으로부터 안타를 뽑아냈다. 13시즌 2일만에 기록한 1390번째 이 안타로 그는 김성한(현 해태코치)이 갖고 있던 개인통산 최다 안타기록을 갈아치웠다. 장종훈은 개인통산 최다홈런, 최다타점, 최다득점, 최다2루타, 최다루타, 최다사사구 기록도 갖고 있다. 타격부문 기록을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연습생 신화’의 신기록행진은 2000시즌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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