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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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대로 세금 내도 잘 살아요”

지난해 소득세 등 1억7천만원 납부… “바보처럼 세금 낸다고 동료들이 비웃기도”

  • 입력2006-05-16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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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대로 세금 내도 잘 살아요”
    나는 요즘 세금과의 전쟁 최전방에 서있는 느낌이다. 이 싸움은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적게 낼지 머리를 굴리는 게 아니다. 시시각각 세금 낼 시기는 다가오고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이번에는 또 어떤 적금을 깨서 메울까 진땀을 흘리는 것이다.

    99년 5월말 날아든 98년도 종합소득세 부과통지서에는 소득세 1억800만원이 적혀 있었다. 98년 한해 우리 사무실의 외형 규모는 4억8000만원. 대한민국 변호사의 평균수준보다 많은 편이다. 소득을 한 푼도 속이지 않고 100%, 아니 120% 성실신고를 한 결과, 한해 소득세만 1억800만원이 나온 것이다. 여기에 사무장 없이 직원 3명의 인건비와 차량 유지비를 포함한 사무실 비용이 월 평균 1000만원 이상 들어간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내 급여는 1000만원쯤 된다. 보통 월급쟁이 급여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지만 그만큼 쓸 곳도 많다. 개인 생활비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어쨌든 이렇다 보니 세금 내기 위해 돈 모으는 전쟁을 치르는 것도 당연했다. 소득세는 두 번에 걸쳐 낸다. 부과통지가 날아들기 6개월 전 중간예납으로 4000만원 정도 미리 내고 나니 나머지 6800만원이 문제였다. 어디서 갑자기 그런 목돈이 생기랴. 그렇다고 세금 낼 요량으로 따로 저금해 둔 것도 없으니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우선 2년 이상 부어온 적금을 깼다. 마침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활비를 아껴 모은 적금이 만기가 됐다기에 1500만원을 꿨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에게 매월 이자를 드리고 있다. 아마 수년 내에 원금은 못갚을 것 같다.

    그래도 한꺼번에 7000만원을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할 수 없이 국세청에 분할납부 신청을 했다. 5월에 2분의 1만 내고 2개월 뒤 나머지를 내기로 했다.



    종합소득세 규모가 크다 보니 주민세도 만만치 않았다. 주민세는 거주하는 시나 군에 내는 지방세다. 보통 소득세의 10% 정도. 지난해 나는 고양시에 1000여만원의 주민세를 냈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자영업을 하면서 이 정도 규모의 주민세를 내는 분이 고양시에서 몇 명이나 될지 긍금했다.

    세금과의 전쟁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부가세였다. 부가세는 99년 1월부터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1년에 네 차례, 3개월마다 소득외형의 10%를 소득세와는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분기별로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1200만~1300만원씩 낸다.

    지금까지의 전쟁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99년 5월말 분납한 소득세 3000만원, 99년 7월 나머지 소득세 3000만원 납부, 같은 시기에 2·4분기 부가세 1000만원,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주민세 1000만원, 두세 달 뒤 부가세를 다시 내고 며칠 안 있어 소득세 중간예납금 5400만원을 냈다. 중간예납은 말 그대로 세금을 미리 내는 것으로 지난해 소득세의 2분의 1 규모다. 이쯤 되니 내가 세금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친지나 동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바보처럼 세금을 정확하게 내냐?”

    적당히 남들 내는 만큼 소득을 신고하면 수천만원은 저절로 수중에 떨어지는데 뭐 그렇게 잘났다고 열심히 국고에 갖다 받치냐는 것이다. 아직까지 주위를 둘러보아 나처럼 세금 한 푼이라도 더 내려고 애쓰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바보라 놀려도 할 말이 없다. 남들처럼 국회의원 출마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웬 마음고생인가 싶다.

    매달 세금 전쟁을 치르다 보니 불쑥불쑥 유혹도 생긴다. 자신과 타협하고 남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소득을 신고하면 1년에 수천만원은 아낄 수 있고, 이런 식으로 몇 년 버티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유혹은 참을 수 없어진다.

    이렇게 세금 내기 힘들다고 ‘죽는 소리’ 하지만 그래도 남는 게 없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생명보험도 들고 몇 가지 적금도 붓고 있다. 그런데 이 적금이 지금은 세금용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집 재산현황을 보아도 참으로 한심하다. 14년째 변호사일을 했건만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1억5000만짜리 전세다. 나는 그것도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쓰고 있는 20평짜리 사무실의 분양대금 2억원 중 근저당을 빼면 1억원이 남는다. 여기에서 언제나 마이너스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는 통장의 부채를 제하고 나면 2000년 4월 현재 나의 재산은 2억원을 조금 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금을 못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데는 우리집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 우선 생활비 규모다. 우리는 대가족이다. 아들 둘, 딸 둘. 보기 드물게 아이가 넷이다. 늦둥이 막내만 빼고 모두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니 교육비 지출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가끔 돈 때문에 짜증을 내는데 화풀이 상대는 늘 아내다.

    “좀더 아낄 수 없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돈을 쓰는 거야?”라고 투덜대지만 “여기 정리한 명세표 좀 보실래요? 여기서 어떻게 더 줄여요?”라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보통사람들 수준에서 결코 적지 않은 생활비를 쓰고 있지만, 세금 제대로 안낼 때의 타성이 붙어서인지 쉽게 줄이지 못하고 쩔쩔 맨다.

    게다가 변호사 손광운의 활동비도 만만치 않다. 대표로 있는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에 매달 200만원, 참여연대 20만원, 국제옥수수재단 10만원, 민변 10만원, 의정부의 극단 허리에 5만원 등등 매달 여기저기 회비로 내고 남 좋은 일에 쓰는 돈만 500만원쯤 된다.

    나의 부모는 일용직 근로자였다. 변호사 개업을 하기 전까지 수십년간 집 없는 설움을 참으로 많이 겪어보았다. 그래서 88년 개업할 때부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근로자나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이 본연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게다가 외국인근로자를 돕거나 환경관련 사건을 맡으면서 ‘나도 괜찮은 변호사’라고 은근히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10여년을 보냈지만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세금이었다.

    나는 99% 원칙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세금에 대해서만은 자신과 타협했고 그런 나를 모른 체했다. 손해 보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는 한국인 특유의 속물근성을 자각하면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돈을 아끼자는(세금 안내는 것이 아끼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의 유혹, 남들처럼 하자는 대세주의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늘 세금 때문에 4명의 아이들에게 떳떳치 못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거짓말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아버지가 세금을 적게 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느날 아이들이 “아빠는 진짜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세요?”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세금 때문에 말이다.

    생활의 변화

    세금을 제대로 내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돈에 대한 개념을 들 수 있다. 변호사 일에 권태를 느껴 미국으로 가기 전, 94년까지만 해도 내게 10만원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다. 당시는 보통사람들의 씀씀이에 비교해 10배 이상은 부풀려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런 관념이 바뀐 것도 세금과의 긴박한 전쟁 덕분이었다. 이제는 10만원이 엄청나게 큰 돈처럼 느껴지니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인 모양이다.

    더 좋은 일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생겼다. TV 토론이나 라디오 인터뷰를 할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거칠 게 없어 좋았다. 변호사인 내게 “잘나면 얼마나 잘났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대개 세금에서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인데, 나는 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 자유는 원칙을 지킨 것에 따른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유혹은 시시각각 있지만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한다.

    세금과의 전쟁에도 요령이 생겼다. 요즘은 선임료로 받으면 무조건 30%는 저금을 한다. 아예 이것은 내 돈이 아니라 국가의 돈(세금)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들였다.

    끝으로 세금 때문에 너무 ‘앓는 소리’를 해서, 혹시 과세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에게 드리는 말. “천만의 말씀. 낼 것 다 내도 살 만합니다.”

    후보 4명 중 1명이 生保者?

    전문직 출신 상당수 불성실 신고 의혹


    16대 총선 입후보자들이 자진 신고한 재산규모와 납세실적이 발표되자 국민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전체 후보의 18%가 3년 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소득세 10만원 이하(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인 후보는 4명에 1명 꼴, 3년간 소득세 합계 100만원 이하(연봉 2000만원 수준)인 사람이 3명에 1명 꼴이었다.

    특히 전문직 출신 정치신인 중 상당수가 같은 직종에 비해 절반 이하의 소득세를 낸 것으로 나타나 불성실 신고 의혹이 제기됐다. 97년 국세청 기준으로 변호사의 연평균 소득세는 3900만원. 그런데 대부분 납세실적이 연봉 3500만원을 받는 기업체 과장급(소득세 350만원 가량)에도 못미쳤다. 의원 세비(연간 약 7000만원)는 자꾸 올리면서 세금 낼 때는 꽁무니 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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