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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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 입력2006-02-06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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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적막했던 집안에 훈풍이 불고, 닫혀 있는 방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다. 큰애네 내외가 태석이 손을 잡고, 일곱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연이어 둘째네 내외도 아홉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막내네 내외도 들어선다.

    네 살배기 태석이 놈은 수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 집안을 휘저어 놓는가 하면 어린 동생들을 올라타고 쥐어박고 밀치곤 한다. 작은엄마나 제 어미한테 그렇게 눈치를 먹어도 막무가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행동하는 이런 짓거리가 보기에 참 좋다.

    태석이를 데리고 슈퍼에 간다. 과자를 한 봉지 담고 골목길을 들어선다.

    “할아버지 다리 아파” 하고 주저앉는 고놈을 등에 업는다. 제 몸을 내 등짝에 찰싹 붙이고는 양다리를 까불면서 양볼을 부벼댄다. “누구 손자?”

    “강아지 손자” 하고는 깔깔 웃어댄다.



    “이놈 내려라” 하면 “할아버지 손자” 한다. “귀여운 내 손자” 엉덩짝을 두드려주다 보면 어느덧 대문 앞에 선다. 팔이 뻐근하고 숨이 차도 내려놓기가 싫다.

    나는 태석이가 되어 옛날 내 할아버지 등에 업혀 슈퍼에 다녀오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그 순간이 어떤지를 모른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할아버지 내외분은 돌아가셨다. 막내로 태어난 나는 열세살적에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라는 이름들이 모여 나에겐 눈물이 된다. 아니 바다가 되었다.

    일요일이 오면 태석이 손을 잡고 슈퍼에 가는 뜻은 고놈을 내 등에 엎기 위해서, 내가 손자가 되어, 막내아들이 되어, 할아버지 아버지 등짝에 엎혀서 양다리를 까불어 보는 환상에 빠지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일요일이 가고 나면 적적함과 외로움이 본래대로 제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일요일이 다시 오면 내 주름진 양볼에는 행복이 충만한 미소로 볼그스레 물이 든다.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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