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2000.03.02

전자상거래 정책 ‘겉만 번지르르’

기술 인프라 구축 등 ‘기본’ 외면…법규-제도 개선에 무게중심 실려 효과 미지수

  • 입력2006-02-03 12: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자상거래 정책 ‘겉만 번지르르’
    15년째 완구 제조업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 P씨가 전자상거래 열풍에 편승해 사이버 쇼핑몰을 열어 놓은 것은 불과 6개월 전. P사장은 이때만 해도 수익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완구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부부에 국한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핑몰을 연 지 6개월만에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전자상거래 연수 과정에 새롭게 등록한 것이다. 물론 P사장은 전자상거래 진출을 처음 준비하는 신입생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최근 들어 P사장처럼 전자상거래 분야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자상 거래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단 쇼핑몰만 열어 놓았다가 ‘파리만 날리고 마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15일 전자상거래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자상거래의 중심을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usiness to Consumer)에서 기업간 거래(Business to Business)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2003년 안에 전자상거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인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거래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전자상거래 관련 청와대 보고회의에서 내놓은 청사진은 시기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관 심을 끌었다. 산업자원부 산하에 전자상거래 분야를 전담할 전자상거래과를 신설하는 등 전자상거래와 관련한 정부 조직과 기구가 개편된 뒤 처음으로 내놓은 종합대책이라는 점과 이 분야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간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수립한 대책이라는 점에서다.

    △전자상거래 관련 투자 세액 공제 △각종 법률 제도 정비 △공공부문 전자상거래를 통한 조달 비율 증 대 등을 골자로 하는 전자상거래 종합 대책은 일단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을 모두 내놓았다는 평 가를 받고 있다. 산업자원부 박용찬 전자상거래과장은 “이미 지난해 전자거래기본법, 전자서명법 등을 제정해 기본적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올해에는 세부 분야별로 법과 제도를 꾸준히 정비해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민간 분야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정부가 정책 우선 순 위를 잘못 짚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강용중연구위원은 “전자상거래를 촉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통신 비용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소비자나 기 업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기술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야말로 수요의 저변을 확대하는 지름길 이라는 말이다. 강연구위원은 “전자상거래 선진국의 통신 비용보다 적어도 30% 정도 낮은 통신 비용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넷 전문 조사업체인 인터넷 매트릭스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일선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 는 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터넷 분야 231개 기업의 마케 팅 담당자를 상대로 한 이 조사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터넷 활용 관련 인프라 구 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3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그 다음으로 인 터넷 전문인력 양성(22.8%), 인터넷 관련 법규 개선 및 제도 보완(21.1%) 등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기 술이나 인력 확보가 전자상거래 비중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정부 조달 시장에서는 전자상거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98년의 경우 정부 조달의 35%를, 지난해의 경우 54%를 이미 전자상거래를 통한 조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조달 시장의 또다른 축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에서는 송배전, 발전 자재의 28% 정도, 포항제철에서는 전체 조달의 50% 정도를 전자상거래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통신의 경우 전자입찰 시스템을 겨우 구축해 놓은 단계이고 나머지 공기업들은 대부분 전자 조달을 계획중이거나 관련 사업에 막 착수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렇게 공기업간 편차가 큰 상황에서 2001년까지 공기업 조달의 50%를 전자상거래를 통해 이뤄내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가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간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한다는 정부의 발표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지만 공공 부문 중심으로 기업간 전자상거래 시장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은 현재 공공 분야의 조직 구조나 관행상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자상거래 분야에 뛰어드는 기업들의 고충을 들어보더라도 정부측의 청사진과 기업인들이 느끼는 체감지수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체 사이버 쇼핑몰을 갖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무료 사이버몰을 구축해주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신용카드 수수료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사이버 쇼핑몰에 입점하기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종욱박사는 “정부의 구상이 핑크빛에만 머물러 있는 데다 기업들도 전자상거래를 위한 마인드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단 뛰어들자’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전자상거래 분야 진출을 도와줄 전문 인력이 없다는 것.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자상거래 발달에 가장 중요한 물류 시스템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언급되지 않은 것도 걸리는 대목이다. 정부는 사이버몰 업체와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최근 특수를 누리고 있는 택배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유도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민간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이보다 획기적인 물류 개선 시스템을 내놓아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강용중연구위원은 “사이버 공간을 통한 거래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데 실제 물건은 마차 속도로 배달된다면 전자상거래가 발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이버 쇼핑몰을 통해 주문하는 데는 3초가 걸리지만 물건이 도착하는 데 3일이 걸린다면 장밋빛 청사진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고와 배송 시스템 등 물류 체계는 전자상거래의 사활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일본의 전자상거래가 동네마다 둥지를 틀고 있는 편의점을 물류 기지화하면서 급속하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존의 물류 체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물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는 ‘종합대책’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는 것이 ‘디지털 부서’니 ‘아날로그 부서’니 하며 전자상거래에 대한 주도권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급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전자상거래 인증 ‘다국적군 주의보’

    ‘공인’ 토종업체에 미국업체 기웃기웃 … 자칫 외국인 손에 넘어갈 수도


    인터넷 전자상거래에서 안전성과 신뢰성을 공인해주는 정보인증 시장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확대와 함께 성장해가는 황금 어장이다. 인증(Authentificaion)은 전자상거래에서 거래당사자의 신원을 보증해주는 인감도장과 같은 것으로 거래 이후 계약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보완해주기 때문에 전자상거래에서는 필수적인 분야다. 이 황금시장을 둘러싸고 최근 국내업체와 외국 유명업체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통신 삼성SDS SK텔레콤 LG인터넷 등 국내 주요 정보통신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출자해 국내 처음으로 설립된 한국정보인증은 순수 국내 민간주도 인증기관. 정부는 2월10일 한국정보인증을 국가공인 인증기관으로 지정했다.

    여기에 맞서는 또다른 경쟁자는 한국전자인증. 이 회사는 전세계 인증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베리사인(verisign)과 제휴해 ‘베리사인’ 브랜드로 세계 무대를 노리고 있다. 전자거래인증 시장에서 세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베리사인 경보’가 국내에도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외국업체가 국내 기업이나 기관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상거래에 대한 인증을 담당할 경우 인터넷상의 중요 정보들이 외국으로 새나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자서명법상 인증기관의 등록 요건을 자본금 80억원 이상으로 정해 정부가 인정하는 컨소시엄 이외에 다른 민간기업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보 유출을 우려한 국가정보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마당에 한국전자인증이 베리사인과 손잡고 ‘베리사인’ 브랜드로 국내 기업과 외국기업간의 인터넷 거래에 참여하게 될 경우 인증시장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과 국가간 협약을 맺어 국내 공인 인증기관이 국가간 거래에 있어서도 인증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인터넷 상거래는 정보유출 여부를 놓고 각국의 정보기관이 개입하는 ‘정보 전쟁’까지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거래에 세금 매겨, 말아?

    기업들 세금 감면 한 목소리 … 정부선 “세수 줄라” 눈치작전


    ‘급증하는 전자상거래에 세금을 매길 것인가, 말 것인가.’

    점차 열기를 더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후보들간의 공방전에서도 전자상거래는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올해 전자상거래 규모가 700억달러나 될 것으로 예상되며 전세계 전자상거래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 문제는 수백만표를 좌우할 수도 있는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의회는 오는 2001년 10월까지 현재의 과세유예조치를 대체할 법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치자금 공급원으로서의 대기업들과 세수 감소를 걱정하는 주정부 사이에서 대선 후보들을 포함한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한 초기 단계에 불과한 우리 나라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일단 전자상거래 확산을 유도할 수 있는 세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원칙적 방안만을 제시하고 있는 상태. 바로 여기에서 재경부나 국세청의 고민이 시작된다.

    기업들은 전자상거래야 말로 매출이나 영업 이익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인 만큼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조세 체계를 전경련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3, 4년 안에 재래식 거래를 상당 부분 대체하게 될 전자상거래에 철저하게 과세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으면 세수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은 아직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산업자원부 박용찬 전자상거래과장은 “내국세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제적으로도 모델이 없는 만큼 국제적 동향을 차분히 지켜보고 난 뒤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세청 부가세과 관계자는 “아직까지 별 문제는 없지만 전자상거래가 기존 거래를 대체하게 될 경우 전자상거래를 통한 매출을 어떻게 신고하게 할 것인지 등 세금납부 질서에 대한 문제가 틀림없이 대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세 대상을 국가간 무역으로까지 확대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국가간 전자상거래에 관세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의 문제가 과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선진국인 미국은 현재 영구적인 무관세화를 주장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이나 개도국들은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열린 WTO 뉴라운드 협상에서도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었다.

    책이나 컴퓨터 등 유형재가 아닌 서비스 교역의 경우에는 아예산업 분류를 새로 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 국가간 서비스 교역 질서를 규정하는 WTO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에서는 서비스 교역의 형태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법률서비스나 의료서비스 등은 이 중 어디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예 협정 자체의 적용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1년까지 과세 규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세무 당국과 기업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켜주기는 어차피 어려울 전망이다. 전자상거래의 발달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편익을 안겨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래저래 새롭게 머리를 짜내야 할 일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