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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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업고 똘똘 뭉쳤다

  • 입력2006-07-06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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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 업고 똘똘 뭉쳤다
    《 ‘민간대표 4인방’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뭉쳤다. 획정위원 7명 중 표결이 있을 때마다 하나가 되어 지역구 10% 감축을 관철했다. 정치권이 4년을 허송한 것을 그것도 4일만에. 일부에서는 밀어붙였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민간 쿠데타다.”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 한흥수)가 전체 253개 지역구 중 26개를 없애기로 하는 최종안을 발표한 1월28일 새벽 2시. 전날부터 자신의 지역구가 ‘조정대상’에 걸려 있어 국회 1층 획정위 사무실 근처에서 밤을 샜던 한 국회의원은 획정위 안이 발표되자 획정위원 중에 민간위원 4명이 포함된 점을 빗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이 ‘민간 쿠데타’ 혹은 ‘혁명’이라고 보고 있는 선거구축소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획정위의 구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선거구획정위원 중에는 각 정당 대표에 참여한 3명의 국회의원 외에 민간에서 한흥수 연세대교수(정치학), 이실 경향신문주필, 김성기 대한변협부회장, 박진도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장 등 4명이 참석했다.

    이들 민간위원 4명은 그동안 선거법협상을 맡아왔던 여야 3당총무와는 달리 정치권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웠던 만큼 획정위가 구성된 1월21일부터 줄곧 ‘선거구 혁명’을 준비해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들 4명을 ‘선거구 혁명 4인방’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절차를 거쳐 ‘혁명’을 준비해 왔을까. 다음은 획정위에 참여한 한 민간위원의 말이다.

    “신문에 획정위원 명단이 발표되자 친구 등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빚발쳤습니다. 공통적인 요구사항은 지금 정치권으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만큼 의원수 감축을 통해 본때를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충격받아서 16대 국회 때부터는 좀더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취지지요. 심지어 흥분한 사람들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요구까지 했어요.”

    민간위원들은 이같은 국민정서를 감안해 획정위 첫회의가 열리던 21일 획정위에 참여한 국회의원 3명을 배제한 채 별도의 모임을 갖고 ‘도원결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시민단체대표로 참석한 박진도소장이 먼저 바람을 잡았다.

    박소장은 시민단체 등에서 준비한 지역구 30∼50석 감축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위원들이 50명 감축은 과도하다며 일단 획정위권한사항인 지역구의석의 10%(25∼26명)를 감축하자고 했다. ‘선거구혁 명’의 마스터플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는 정당대표 3명이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역구 10% 감축안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민간대표들이 이같은 마스터플랜을 관철하는 힘은 두 가지였다. 우선 숫자의 문제였다. 전체 7명 중 이들이 다수인 4명을 차지하면서 ‘4’란 숫자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이들이 행사할 수 있는 ‘4표’ 는 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때마다 거의 흩어지지 않고 뭉쳐 있었다.

    박진도소장은 “매번 회의가 끝날 때마다 별도 회의를 열어 행동통일을 했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힘은 ‘피플파워’였다. 민간위원들이 이같은 10% 감축안을 밀고 나가면서 엄청난 여론의 지지가 쏟아졌고, 정치권은 변변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비록 한나라당이 위헌시비를 제기했다는 불씨가 남아 있긴 하지만 민주당을 시작으로 여야 3당은 27일 자신들의 몸에 칼을 대는 10% 감축안에 합의를 한 것이다.

    한흥수위원장이 28일 국회의장에게 획정안을 제출한 뒤 밝혔듯이 ‘정치권이 4년을 허송한 것을 4일만에 끝내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각 지역사정을 제대로 모르면서 단기간에 중요한 사안을 밀어붙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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