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1999.12.16

홀아비 아닌 홀아비들의 장보기

  • 입력2007-05-11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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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퇴근시간.

    옆 부서에 있는 정부장이 퇴근준비를 하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빈대나 되어볼까? 특별한 약속도 없는데….”

    오늘도 별 볼일 없었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버스요금도 아낄 겸 정부장 차에 무임승차(?) 하 기로 했다.



    정부장 댁은 우리 집 가는 길과 방향이 같아 이번 ‘동행’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물론 차비 대신 열심히 조수석에서 말상대가 돼줘야 하겠지만…. 얼마나 갔을까.

    “나 시장에 들러야 하는데….”

    정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요?” “응 그게, 그러니까… 아침에 우리 마누라가 파김치를 담가야 한다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요?”

    “퇴근할 때 시장에 들러서 쪽파를 세단 사 오랬거든…”

    ‘아하, 그렇구나’ 생각하니 혼자 가겠노라고 얘기하기도 멋쩍고 해서 따라가기로 했다.

    정부장의 장보는 솜씨는 능숙했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쪽파 고르는 솜씨란…. 드디어 노점상 아주머니한테서 고르고 고른 쪽파 두 단을 샀다.

    “아니 세 단을 산다더니 왜 두 단만 사세요?”

    “너무 값이 비싸,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그 말을 들으니 시장에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닌 프로(?)라는 것을 알았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혼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했던가. 시장에 간 김에 나도 냉이를 1000원어 치 샀다.

    “하! 하! 하!… 자네나 나나 남들이 보면 불쌍한 홀아비들이라고 웃겠어.” 우리는 마주보며 한참을 웃 었다.

    정부장 부인은 백화점 숙녀복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장볼 시간이 잘 나지 않고, 내 아내 역시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다 보니 역시 시간내기가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옛날 같으면 주위에서 조상들의 선비문화까지 들먹이며 “남자체면상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부엌엔 안들어 가는데, 하물며 창피하게 시장까지 가느냐”며 핀잔을 주었겠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 지금과 같은 ‘맞벌이 시대’에 굳이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을까.

    이 땅의 남편들이여!

    아내가 바쁘거나 몸이 불편할 때 남편이 직접 장을 보고 조리해 주는 밥상을 생각해 보라. 남편의 배려 (?)에 감동하지 않을 아내가 어디있겠는가.

    ‘한 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하루종일 ‘인간 파김치’가 되도록 격무 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왠지 퇴근 길이 뿌듯했다.

    “여보! 오늘 저녁 시원한 냉이국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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