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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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사 “좋은 시절은 갔네”

‘의약분업’ 속 그들의 세계… 醫 “수입 줄까 노심초사” 藥 “전문화로 살아남기” 몸부림

  • 입력2007-05-02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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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와 약사. 이들은 한국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양대 집단이다. 이 두 집단이 요즘 의약분업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표방되는 의약분업안은 지난 63년 약사법에 명시된 이래 표류를 거듭해 오다가 금년 5월10일 시민단체들의 주선으로 대한의사회와 대한약사회가 내년 7월 시행키로 합의한 것.

    의약분업안에 대해서는 특히 의사들의 반발이 심하다. 11월30일에는 대한의사협회가 병원문을 닫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요즘 의사와 약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의 세계를 알아보자.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고성만씨(22). 인술을 베푸는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진학했지만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진로요? 병원에 남기도 힘들고 개업하더라도 자본금도 없을 뿐더러 전망이 없죠. 저뿐 아니라 의대생 모두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의대생들의 공통된 입버릇은 이제 ‘의사들의 시대는 갔다’는 것”이라 전한다.

    입학할 때 꿈꾸던 인술 등은 잊어버린 지 오래. “의대 입학한 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그는, 실제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의사=장사꾼’이란 말을 부정할 수 없어 괴롭다”고 고백한다. 이런 그는 올해 동생이 의대에 지원하려 하자 결사적으로 뜯어말렸다고 한다.



    내과 소아과 개업의는 생계 걱정

    “11월30일 열린 의사들의 집회에 의대학생회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했지만, 일반학생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는 게 그의 전언. 의대생의 약 20%가 의약분업에 찬성할 뿐이고, 나머지는 반대 분위기”라는 것. 개인적으론 국민 건강을 생각할 때 찬성해야 한다고 보지만, 약사들의 임의조제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 한다.

    숙명여대 약대 4학년 조진영씨(23). 내년 1월 치러질 자격증 시험을 준비중인 그는 “어릴 때부터 아픈 사람들의 고통과 처음 마주해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 약사라 생각해 약대에 지원했지만, 내년부터 시행될 의약분업안에 따르자면 그 꿈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약대 들어와 공부하면서 약사의 역할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는 이제 약사로 살아남으려면 전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처럼 박사과정을 밟는 약사들이 늘고 약사들 스스로 전문화를 위한 노력을 하면 제약회사나 연구실에서의 약사에 대한 대우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 의약분업안이 시행되면 약국의 대형화가 이뤄질 것이고, 자신도 약사 자격증을 따고 나면 아마 대형약국의 관리약사로 진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에서 의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7만여명이 넘고 이중 활동의사는 약 6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종합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가 절반, 개업의가 절반 정도.

    한국의 의사들은 대학진학 때부터 극심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엘리트집단이다. 예과 2년, 본과 4년을 거쳐 인턴 레지던트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어엿한 의사가 될 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은 혹독하다. 레지던트들의 경우 주당 70~80시간 이상을 병원에서 ‘굴러야’ 한다. 전국 30여개 의대에서 매년 3300명의 새 의사가 배출되는데, 90년대 이후 그 수효가 급격히 늘어나 의사의 공급과잉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의사는 그간 한국사회에서 고소득 전문인 집단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과거 의사자격증만으로 고소득군에 편입되던 시절은 갔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 실제 의사 사회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최근 4, 5년 사이 배출된 젊은 의사들은 실직을 우려할 정도로 사정이 열악하다고 한다. 개업의의 경우 “상위 30%가 전체 수익의 70%를 가져간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서초동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인 연세가정의원을 운영하는 이동환박사의 얘기. “의사들의 시위를 놓고 여론은 ‘배부른 집단의 제몫 챙기기’냐며 지탄하지만, 이는 옛날얘기다. 현재 전체의사 6만5000명 중 40대 중반 미만이 6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동환박사는 의약분업 실시 이후 자신의 내과의원을 ‘원칙대로’ 운영할 경우의 손익계산을 소개했다. 수입원은 진찰비(초진료 7400원, 재진료 3700원)와 처방조제료(2일 기준 520원), 약품관리료(360원), 약간의 검사료로 구성된다. 하루 환자 중 초진과 재진의 비율이 평균 1대 4 정도 되므로 평균 진찰료는 4440원. 하루평균 60명을 월 25일간 진료한다면 한달 총 매출은(4440원+360원+520원)×60명×25일= 798만원, 여기에 약간의 검사비 10%를 더하면 798만×1.1=877만8000원이 된다. 반면 직원 월급, 임대료, 각종 공과금, 소모품 등 운영비는 월 750만원. 여기에 의원 개설에 드는 비용 최소 1억원에 대한 감가상각 연 20%와 의료사고에 대비한 보험료 등을 제하면 1년에 불과 400만원이 의사 몫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물론 이는 약 판매 의존도가 워낙 높았던 내과나 소아과의 경우로 극단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과장된 주장만은 아니라는 것이 의사들의 중론.

    이런 현실은 의대생들이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 적나라하게 반영된다. 선택 기준은 의료사고로 사람이 죽을 염려가 없는 과, 돈버는 과 순. 가장 인기 좋은 게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등이다. 정형외과는 몸은 힘들지만 수입이 짭짤하다.

    의대생들의 선호도가 바뀌는 것은 의료사고의 책임이 의사 개인에게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당연한 일. 의사들 사이에선 “의료사고 한 번 터지면 5~10년 수입을 모조리 바쳐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의료사고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하다.

    의사들이 과거 누려온 지위에 비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은 적은 편이었다는 데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동의한다. “요즘 의사들의 주장이 안먹히는 이유를 ‘업보’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잘해왔어야 신뢰를 얻었을 것”이라고 한 의사는 말한다.

    의약분업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반발이 작아보이는 약사들의 경우는 어떨까.

    현재 전국의 약사자격증 소지자는 약 4만8000명, 대한약사회에 회원으로 등록한 활동 약사수는 2만4000여명이다. 이중 약국을 운영하는 개국약사는 1만9000여명으로 84% 정도다. 나머지는 병원이나 제약회사 등에 소속돼 있다.

    날이 갈수록 여성 약사들이 늘고 있다. 현재까지의 남녀 성비는 1대 1 정도. 과거 배출된 약사들이 남성들인데 비해 근래 들어서는 여성 약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약사도 과거 돈 잘 버는 직종으로 꼽혔다. 적령기 남성들 사이에 ‘내 꿈은 셔터맨’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특히 여자약사는 인기였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약사들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네 영세 약국은 대부분 죽게 될 것”이란 건 상식에 속한다.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약사(60)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약국 문을 닫을 예정”이라며 “젊은 약사들이야 변화에 적응하겠지만 내 경우 지금 새로 약국 차리긴 늦었다. 마침 쉬고 싶었는데 잘됐다”고 말한다.

    의약분업에 대한 약사들의 상실감도 만만치 않다. ‘임의조제’가 약사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 “임의조제를 못하게 되면 약국을 평균수입의 30~40%가 줄어들 것”이란 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홍춘택사무국장의 전망.

    약사들의 경우 줄어들 수입도 문제지만 의약분업 이후의 준비도 여간 걱정거리가 아니다. 약사들이 내년 7월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은 한둘이 아니다. 과거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야 장사가 됐던 입지조건부터 달라진다. 이제는 병원 근처나 환자들의 이동이 많은 지역으로 약국을 옮겨야 한다. 10평 이하로도 가능했던 약국 규모도 15~25평은 돼야 의약분업에 대처할 수 있다. 일반의약품 판매대와 의사의 처방전에 따른 조제를 위한 공간을 분리 확보해야 하기 때문.

    약에 대한 공부도 훨씬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약사들 사이에서는 “실력있는 약사만이 살아남는다”는 의식이 팽배, 학술강좌 열풍이 불고 있다. 약사회 등은 분업에 대비,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작업을 오래 전부터 시작해왔다. 자본 규모가 딸리는 약사들은 동업형태로 약국 대형화를 준비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약분업 준비과정에서 약사회는 “조금 손해보더라도 빨리 결정해 준비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는 지난 93년 한의약 분쟁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됐다. 약사들이 약국 문을 닫고 시위를 하는 형태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것.

    똑같이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만나 진단과 처방, 조제를 하던 두 집단은 이제 각기 전문영역을 향해 활동의 중심축을 이동해야 할 마당이다. 그런데 왜 의사들의 반발이 더 거센 걸까.

    “요즘 의사들의 반발에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기획국장 (서울대 의료관리학)의 주장. “실제로 개업의 중 상당수, 특히 내과 소아과 등 수술이나 처치 없이 약 판매에서 운영비 상당부분을 조달하던 개업의의 경우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

    참여연대 김기식정책실장은 “한국의 의료체계가 워낙 오랜 기간 꼬여왔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따라서 문제를 푸는 과정도 꼬여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의료전달체계 자체를 바로잡는 일이 될 것” 이라고 말하는 그는, “의사들의 시위 배경에는 낮은 의보수가 문제가 깔려 있고, 이런 부분은 의보수가 차등화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감기만 걸려도 3차 진료기관을 찾는 시스템을 개선, 질병 종류에 따라 해당 진료기관을 분류하고 의료보험 수가를 차등화해 의료조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는 정부 의료개혁안에 포함된 주치의 등록제 도입 등도 포함된다.

    어찌됐건 의사와 약사는 과거에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이란 의약분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의사건 약사건 국민건강이란 중요한 과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는 게 건강연대 김용익교수(서울대 의료관리학)의 지적이다.

    이제 의사와 약사는 과거의 경쟁적 관계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과거 병원과 약국은 가급적 멀리 있어야 서로 운영이 보장됐지만, 앞으로는 가급적 가까이 있어야 국민에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의사와 약사의 관계는 지금 재정립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막강 로비에 36년간 표류

    의-약사들 국회 진출 집단이익 대변에 몰두


    의약분업원칙은 지난 63년 약사법에 명시된 이래 70년, 82년, 88년에 실시 움직임이 있었으나 의사 약사간의 이해다툼으로 불발된 바 있다. 의약분업안이 36년간이나 표류했던 이유로는 의사회나 약사회의 막강 로비력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국회에 진출한 의사 약사 출신 의원들은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대의보다는 출신집단의 이해관계 대변에만 몰두해왔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6명 중 9명이 의사나 약사, 제약회사 출신이다(표 참조).

    “특히 속기록 없이 자유토론이 이뤄지는 법안심사소위는 여야도 구분 없이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지적한다. 속기록이 남는 상임위의 경우 이보다 나은 편이지만, 자신의 발언을 속기록에 남기기 위해 회의를 질질 끌거나 불필요한 표결을 요구하는 경우 등도 적지 않다고 한다.

    11월23일에는 정신병원의 경영투명화를 위한 법안 심의과정에서 현재 정신병원을 운영중인 의원이 막무가내로 반대, 법시행이 1년6개월 연기됐다. 의약분업이 요지인 약사법 개정안의 경우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되었으나 의사 출신 의원의 문제제기로 다시 토론에 들어가 의사봉을 다시 두드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9월말 비아그라 시판문제를 놓고 보건복지위 위원들간에 벌어진 ‘의-약 대리전’도 유명하다.

    지난해 12월16일 참여연대는 ‘이권 관련 상임위 배정이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국회법 제 48조 7항에는 ‘기업체 또는 단체의 임직원 등을 겸직하거나 그 직과 이해관계를 가지는 의원들의 위원 선입이 공정성을 기할 수 없는 경우 선입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소원은 지난 6월27일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의원들은 전문인들의 상임위 진출을 업무의 전문성 확보라는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복지위 김홍신의원은 “국민의 이해보다 소속집단의 이해관계가 전면에 대두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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