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0

1999.11.25

부채비율 200%는 성역인가

  • 정갑영 / 연세대 교수 . 정치학

    입력2007-03-12 11: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업마다 부채비율 200%를 맞추느라 고심하고 있다. 어떤 논리로 200% 목표가 나왔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정부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성역의 수치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실제로 재벌개혁의 칼을 휘두르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200%를 못지키는 기업에는 어떤 형태로든 서슬 퍼런 기세가 미칠 것 같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기업은 더욱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200%의 목표가 기업 자율로 결정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고위층이 생각하는 정책목표의 하나로 제시되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움직일 수 없는 성역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물론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바람직한 목표라면, 당연히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부채비율 200%는 모든 기업, 모든 업종에 불문하고, 그것도 연말이라는 시한을 한정해 실현돼야만 하는 일인가. 모든 기업이 무리하게 증자와 매각과 각종 편법을 동원하여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가. 아무리 성역이라도 ‘200%의 경제학’은 짚고 넘어갈 일이다. 기업이 자기자본을 늘려 재무구조를 건실화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올 상반기에 우리 제조업의 평균부채비율은 247.2%로서 98년말의 303.0%와 97년의 396.3%보다는 크게 개선됐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업종에 구별 없이 200%를, 그것도 관계당국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해야 되는 일이냐는 것이다. 혹자는 정-재계의 상호불신이나 위기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199%는 괜찮은데 201%는 안되고, 내년에는 150%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연말에 210%는 안된다는 정책목표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먼저 모든 업종에서 부채비율 200%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기준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미국 제조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153.95%(1997)이지만 산업마다 큰 차이가 있다. (전기기계산업은 105.0%로 가장 낮지만) 아직도 자본투자가 많은 자동차, 항공기 관련산업 은 모두 280%를 초과하고 있다. 대만은 어떠한가. 평균 부채비율은 미국보다 낮지만 목재와 피혁, 건설산업은 모두 250%를 상회하며, 기타 제조업은 무려 1192.1%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 기준이라는 논리도 억지에 불과하다(모든 업종에 똑같은 부채비율의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경제정책은 경제논리로 … 시장 원리에 맡겨야



    모든 기업은 성장과정과 산업환경에 따라 재무구조가 다양하게 변동된다. 고정투자가 많은 업종에서는 당연히 부채비율이 높아진다. 금융비용이 낮아 차입하는 것이 유리하면, 당연히 부채가 많아진다. 자동차산업은 부채비율이 93년에 395.6%에 달했지만, 97년에는 717.1%로 증가했고, 98년에는 552.4%로 다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502.5%(1993)를 기록하다가 280.1%(1997)로 하락했다. 모든 여건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200%를 유지하라는 것은 투자행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다. 도로조건에 따라 제한속도가 다르듯이 기업의 재무구조도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한 비율을 시한부로 설정하여 밀어붙이는 정책은 당연히 재고되어야 한다. 그것보다는 시장 지향적 정책수단의 개발이 더욱 긴요하다. 재무건전도에 따라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차등 금리를 부과하도록 하거나,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부실기업에 대한 투자위험을 모든 투자자가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신용평가를 부채비율에만 의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높은 부채비율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과감히 개혁하는 것 못지 않게, 무리한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60년대식 정책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비록 그런 정책이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둔다 할지라도, 많은 부작용과 비용을 유발하여 정책효과를 반감시키게 된다. 경제정책을 경제논리로 계획하고 집행해 나가는 것 또한 부채비율의 축소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