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1999.11.18

지지고 볶고… “주방장 빰쳐요”

이재오 정명훈 이한우씨 등 수준급… 찌개부터 서양요리까지 “주문만 하세요”

  •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입력2007-02-28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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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고 볶고… “주방장 빰쳐요”
    남자들 사이에서도 ‘요리’가 새로운 취미문화로 ‘뜨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구문(舊聞)에 속한다. 단순한 식도락에서 벗어나 직접 음식 만들기를 취미의 영역으로까지 끌어들인 남자들의 대부분은 20, 30대 젊은층. 하지만 4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도 요리가 ‘유행’이 되기 이전부터 틈틈이 음식만들기를 즐겨온 이들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의외로 유명인사들 중에도 요리를 취미로 즐기거나, 취미까지는 아니라도 만만찮은 요리실력을 과시하는 남자들이 적잖다.

    우선 정계와 관계. 정치인 집단엔 우리 사회 어느 집단보다 미식, 탐식가들이 많지만 비교적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한 데다 요리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직접 음식만들기를 즐기는 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요리하는 정치인’으로 정계에 회자되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김윤환의원이다.

    김의원이 즐겨 하는 요리는 ‘개고기탕’. 실은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메뉴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개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런데 심하게 건강을 상해 의사를 찾아갔다가 ‘보신’을 권유받았고, 그때부터 개고기를 먹으며 미감(美感)을 터득했다. 요즘도 그는 종종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손수 만든 양념장으로 개고기탕을 끓여내 함께 즐긴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개를 잡는 일은 결코 없다고.

    두부찌개 된장찌개 … “찌개의 달인”

    이재오의원은 ‘생존을 위해’ 요리를 시작해 ‘찌개의 달인’이 된 경우. 이의원이 80년대 재야운동을 하던 시절, 부인이 한복집을 운영했기 때문에 식구들에게 끼니를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 자연히 이의원 스스로 요리를 해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요리가 지금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두부찌개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찌개 종류라면 자신이 있고 특히 두부찌개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박성범의원의 경우 요리를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메뉴가 한두 가지 있다.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거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녀들과 모처럼 한자리에 모일 때 그가 실력을 발휘하는 메뉴는 콩나물밥과 이북식 김치말이밥, 된장 고추장 햄 등 각종 재료를 즉흥적으로 넣어 끓여낸 ‘잡탕찌개’. 신혼시절 아내 신은경씨에게 비법을 전수해준 콩나물밥은 특히 양념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념을 넣고 섞는 순서까지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학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관계로 진출한 김광웅 중앙인사위원장은 “공직에서 물러나면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피력할 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생선요리를 즐기는 그는 단골 횟집에 들를 때면 주로 카운터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 친분을 쌓은 주방장과 마주앉아 요리솜씨도 어깨너머로 배우고 생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다. 어느 생선이 어느 철에 지방이 가장 많이 오르는지, 소금과 식초절임 중 어떤 절임방법이 적절한지, 칼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세심하게 묻곤 한다. 이렇게 묻는 데서 끝내지 않고 직접 집에서 요리를 해보는 것은 물론이다.

    30, 40대 남성들 중 요리의 묘미를 터득한 이로는 해외 유학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백안시하지 않는 서구문화의 ‘세례‘를 받은 탓도 있지만, 우선 혼자 먹고 살기 위해 프라이팬을 잡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부부가 함께 프랑스에서 공부한 고려대 전산과 조충호교수는 6년여 동안의 유학생활 동안 담백한 프랑스 음식의 맛에 반해 요리를 시작했다. 바쁜 유학생활 중에도 식사초대를 받는 기회가 생기면 빠짐없이 달려가 음식 맛을 보고, 때로는 만드는 방법까지 알아두었다가 집에서 만들어보곤 했다. 그의 주요 레퍼토리는 양념을 거의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린 쇠고기구이 ‘퐁듀’와 ‘베프 부르기뇽’ ‘샐러드 리오네’ 등. 지금도 사회활동을 하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번갈아가며 준비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요리 재료가 다양하지 않아 솜씨를 발휘하려고 해도 마땅치 않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요리라고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유학 시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가 그 묘미를 깨달았다는 그는, 뉴욕 허드슨강에서 ‘바지뮤직’(선상음악회)을 연주하던 당시 애지중지하는 주방기구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꼭 챙겨들고 다녔다. 음악회를 지원해주는 중요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집으로 방문해 손수 요리를 해주며 답례했던 것. 요리를 오죽이나 좋아했으면 좋은 주방기기만 봐도 반색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난 첼리스트 배일환씨는 일찍부터 요리를 해먹기 시작했는데 면요리가 그의 주특기. 예일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지금의 아내를 집으로 초대, 근사한 해물 스파게티를 대접하며 구애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수 신해철씨 역시 런던에서 유학하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해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해냈고, 쌍용증권 김석동사장은 와인을 좋아해 프랑스 유학시절 와인감정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한편 독일인으로 한국에 귀화환 이한우씨는 유럽 남자들의 평균치를 훨씬 뛰어넘는 요리솜씨를 자랑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웠다는 그는 요리법을 꼼꼼히 메모해둘 정도로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도 공책 한권 분량의 레시피(요리방법을 적은 기록)를 갖고 있다. 아내로부터 “양식요리만큼은 남편의 실력이 나보다 월등하다”고 인정받는 그는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식료품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을 지적한다.

    요리는 ‘먹고 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 ‘예술의 한 장르’라는 인식이 요즘 들어 확산되고 있다. 요리를 즐기는 남자들 중 예술가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도 그런 인식을 입증할 수 있는 한 예다.

    지휘자 정명훈씨도 널리 알려진 요리 애호가. 이탈리아 요리, 그 중에서도 스파게티를 즐겨 만드는 그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으면 꼭 요리사에게 비결을 물어보고 집에서 실습한다. 토마토의 제 맛을 유지하면서도 껍질을 손쉽게 벗기기 위해서는 끓는 물에 몇초간 담그는 게 가장 적당하다는 요리의 디테일까지 신경 쓸 정도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도 음식 만들기, 먹기, 와인 마시기, 장보기 등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한다. 한국요리를 특히 잘 만들어 먹는 그는 “요리 레퍼토리가 바이올린 레퍼토리보다 많아 연주활동을 그만두면 음식점을 차려보겠다”고 호언한다.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과 파리에서 보내지만, 한국에 돌아와 있을 때면 자택이 있는 서울 종로구 운니동 근처 낙원상가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각종 먹거리를 구경하는 게 취미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음식을 먹는 건 좋아해도 요리는 안하려 한다’는 분석에 대해 그는 일침을 놓는다. “그 사람들(한국 남자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전생에 주방장이었던 것 같아요”

    오랜 독신생활 끝에 혼자 요리해 먹는 데 이력이 난 건축가 김기석씨는 지난해 사무실을 마련하며 근사한 부엌 하나를 짜넣었다. 올망졸망한 1인용 조리기구를 모으는 게 취미인 그는, 열풍조리기까지 구입해서 사람들을 모아 종종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일반 소금이 몸에 안좋다고 해서 두번 볶은 소금으로 직접 김치를 담그는가 하면 자신의 건축사무소 ‘아람마당’의 이름을 딴 ‘아람 라면’, ‘마로니에 칵테일’ 등의 메뉴도 개발했다. 자신이 전생에 ‘노틀담 주방장’이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의 추측이다.

    소설가 송기원씨 역시 김장은 물론 각종 젓갈류를 손수 담그는 살림꾼이다. 이전에는 추어탕, 개고기탕도 직접 끓여 먹었지만 인도로 수행을 다녀오며 식성이 바뀌어 요즘은 육식을 삼간다. 대신 해초 버무림, 김국, 김무침 등을 즐겨 해먹는다. 현재 공주 갑사 인근의 암자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그는 “속세로 돌아가면 요리학원에 다녀볼 생각도 갖고 있고, 나중엔 라면집이나 값싼 밥집을 차리는 게 꿈”이다. 음식점 이름도 이미 ‘젓갈 잔치’라고 지어놓았다.

    직접 장을 봐 요리하기를 즐기는 또 한사람의 중견 소설가는 황석영씨. “내가 요리 잘한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고 자랑하는 그는, 한식, 양식은 물론 누룽지탕이나 유산슬 같은 중국요리까지 척척 해낸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아예 식당 운영으로까지 이어진 이들도 있다. TV드라마에 양성적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는 탤런트 이정섭씨는 종가집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하는가 하면 요리 무크까지 펴냈다. 요리 실력보다는 ‘얼굴만 내세워’ 식당을 운영하거나 요리책을 내는 많은 연예인들과 달리 그는 ‘요리의 달인’이다.

    작곡가 송병준씨 역시 미국생활 당시 쌓은 요리실력으로 게요리전문점을 낸 적이 있다. 매일 저녁 요리책을 펴놓고 요리를 연구했다는 그는 타이식, 인도식, 레바논식 요리까지 섭렵했고, 식당 오픈 당시 주방장을 직접 가르쳐가며 메뉴를 새로 짰다고 한다.

    영화 ‘정사’의 아트디렉터로 주목받은 바 있는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 그의 전직도 요리사다. 어려서 어머니의 요리 시중을 들며 요리감각을 익힌 그는 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작년에는 한 화랑에서 열린 그릇 전시회 때 현장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조리법도 가르치는 이벤트를 벌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밖에도 가수 이승철씨 역시 궁중음식을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웬만한 한식은 모두 마스터, “가수가 아니었다면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할 만한 실력자이고, 탤런트 송기윤씨나 만화가 신문수씨도 가족을 위해 부엌에 드나드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이들이다.

    “요리 동호회 절반이 남자”

    작은제목인터넷 사이트 인기 … 남성용 요리책도 선보여


    유명인사건, 평범한 요리애호가이건간에 요리를 즐기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요리의 즐거움은 음식이 구심점이 되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다는 점. 그렇다면 나도 지금부터 요리 만들기를 시도해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다 큰 남자가 새삼스레 어떻게 요리를…” 하며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용기를 얻어보자.

    ① 통신과 인터넷에는 수십개의 요리 사이트와 동호모임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손수 요리를 즐기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요리동호회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중 절반 가까이는 남자들이며, 여성들 못잖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추천할 만한 사이트는 ‘아빠는 요리사’(www.webage.co.kr/ cook). 네 명의 ‘평범한 아빠들’이 자신들의 실전 경험을 토대로 각종 메뉴의 조리법을 설명해주고 있는 ‘아빠는…’은 이미 방문자수 14만명을 넘은 인기 사이트이다. 현재 시스템 정비를 위해 일시 운영을 유보하고 있지만 곧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② 남자가 쓴 음식이야기, 혹은 남자를 위해 쓰인 요리책을 참고한다. 그 하나가 세계미식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펴낸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작가정신). 음식, 혹은 요리가 지닌 ‘아우라’의 매력을 새삼 발견할 수 있다. ‘이프’에서 펴낸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부장적 남자들로 하여금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책이며, 총각 의사 박재영씨가 자취생활 동안 터득한 음식솜씨를 소개한 아마추어 전용 요리책 ‘뭐 먹지’(지식공작소 펴냄)도 있다.

    ③ ‘아빠는 요리사’ ‘미스터 초밥왕’ 등의 일본 요리만화를 탐독해본다. 이들 책에는 요리의 테크닉이나 맛을 즐기는 노하우도 소개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아빠의 요리를 통해 가정이 얼마나 화목해질 수 있는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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