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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스타들

“나 떴어요” N세대의 샛별들

신비… 방황… 독특한 분위기의 광고로 ‘인기 몰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나 떴어요” N세대의 샛별들



“어느 날 패션 잡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다 나랑 똑같이 생긴 거예요.”

‘배두나 신드롬’의 주인공 배두나(19·한양대 1)의 말이다. 지난 여름부터 ‘배두나’는 이미 한 사람 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너무나 많이 ‘복제’되고 있다. 배두나 머리를 한 한 무명 모델은 “배두나는 한명인데, 찍어야 할 것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두나는 스스로 “미인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녀를 탐내는 광고주들도 “예쁘진 않죠”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기는 상종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세기말적이고 신비롭잖아요”라고 광고기획사 오리콤 이홍록차장은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대부분의 스타들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세기말적’인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힌트 중 하나를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겔리온’(에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그토록 배두나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에반겔리온’의 주인공 신지와 레이를 섞어놓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머리, 껑충하게 큰 키, 쏟아질 것 같이 큰 눈,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깡마른 몸매,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 “난 장차 되고 싶은 것이 없다. 지금까지 되는 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는 신지의 대사와 레이의 텅빈 눈빛은 다른 사람의 일에 끼여들기도, 간섭받기도 거부하는 세기말의 ‘자폐증적 정서’를 상징한다.

이같은 정서는 계속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배두나 이후 가장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것은 SK텔레콤 TTL의 광고모델 임은경(대원여고 1). 물 속의 회전, 박제된 물고기, 죽은 나무 등 초현실주의 적인 소품들과 잘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진 임은경은 광고가 나가자마자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녀는 1년 전속`-`3000만원이던 광고계약을 3년 전속`-`3억원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대접을 받았다.

PCS 018의 두 모델 김민희(신광여고 2)와 김효진(이화여고 1)도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도발적 카피 속에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 여성스런 얼굴과 ‘우정’에 갈등하는 표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미 ‘블랙로즈’ 등 여러 편의 광고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김민희는 청소년드라마 ‘학교2’의 불량스런 ‘짱’으로 소녀팬들을 몰고 다닌다. 김효진도 SBS ‘인기가요 20’의 VJ를 맡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김효진의 코디네이터 유현정은 “머리에 층을 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리고 촌스러운 볼화장이나 사이버틱한 눈화장을 하는 메이컵이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다”고 설명한다.

해태가 내놓은 새로운 초콜릿 ‘젠느’의 모델 최은영(성일여고 2) 김정은(면목중 3)도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느낌’이란 광고카피처럼 세기말의 분위기를 어둡고 절망적으로 드러내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들이다.

배두나의 이미지를 가진 모델들이 세기말에 방황하는 순수한 아이, 어른들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힙합 세대의 스타들이라면 또 한편에서는 모든 일에 관심없고 차가운 감성을 느끼게 하는 테크노 스타들이 있다. 모델이자 탤런트인 이나영(20)은 광고업계에서 ‘밀레니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얼굴 중 하나로 꼽힌다. ‘라네즈’의 광고모델로 이국적이고 차가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네즈’ 광고를 진행한 동방기획의 한성실차장은 “이나영은 현재를 돌아보면서 다가올 새 천년의 이미지를 가진 얼굴”이라며 “동양과 서양이 혼재한 홍콩의 뒷골목 세트를 배경으로 찍었다”고 말한다.

평상시에도 무표정함 끝에 잠깐 미소가 나타나는 이나영은 매니큐어도 하지 못할 만큼 털털한 성격이다. 그녀는 “N세대 모델이라고 하기엔 너무 ‘늙은’ 것 같고 이렇게 큰 기대를 받기엔 너무 어린 것 같다”며 웃는다.

최근 테크노에 아쟁 인트로를 도입한 ‘와’로 가요계 정상에 오른 ‘꽃잎’의 배우 이정현(20)도 동서양의 혼합, 기계와 인간을 합친 사이보그의 이미지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나영이나 이정현은 인간 ‘신지’나 ‘레이’보다 생체 로봇 ‘에바’과 닮았다. 이정현은 최근 한국 출신 할리우드 샛별인 릭윤과 함께 ‘N016’ 광고모델로 나와 N세대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박지윤, 채정안도 전자음악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스타들이다.

또 ‘윙고’의 모델 전지현(진선여고3)도 세기말 테크노댄스 붐이 낳은 스타다. 이미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에서 주목받는 신인배우였던 그녀는 ‘윙고’로 또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윙고’의 반응이 좋자 삼성전자는 컴퓨터 프린터의 광고도 똑같은 테크노(그녀는 광고 내내 춤을 출 뿐이다)로 찍었다.

‘윙고’를 기획한 제일기획 장영진대리는 “‘막춤‘으로 불리는 테크노의 자유, 섹슈얼함, 파워라는 세기말의 이슈를 담은 광고”였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진 ‘게스’의 전속 모델로 화제가 된 최혜진(19)도 도발적인 히피 스타일로 주목받는다. 그녀 는 “아무래도 히피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기 때문에 광고주가 이런 이미지를 원한 것 같다”고 말한다.

서구 물질문명에 대한 절망감, 자연과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세기말’과 ‘밀레니엄’의 정서는 광고주의 요구에 의해 명확한 모습으로 드러나 머리모양과 행동, 표정까지 지정한다. “원래 긴 생머리로 굉장히 여성스런 모습이었다”는 배두나를 비롯해 지금 한창 뜨는 스타들은 대개 데뷔 전에 지극히 여성스런 소녀의 모습이었다.

“장래 희망이요? 어린애가 그런 것까지 결정해야 하나요?”(전지현) “대학은 가야겠지만 머리 속은 온통 동대문에 옷가게를 차리고 싶은 생각뿐이에요.”(김민희) 이들의 말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N세대의 감성이 느껴진다.

처음 TV광고를 촬영한 최은영은 “‘고독한 표정을 지었다가 초콜릿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하라’는 감독의 주문을 듣고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바꾸는 일이 되레 부담’

지금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다음 트렌드로 저항없이 옮겨갈 것인지다. 그래서 대부분은 ‘연기자’로 변신하고 싶어한다. 이미 신선한 ‘비주얼’은 소모됐기 때문이다. 임은경의 계약조건에 1년간 언론과의 인터뷰 금지가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프란다스의 개’를 촬영중인 배두나는 “열성 팬들은 내가 연기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KBS 미니시리즈 ‘마법의 성’을 촬영중인 이나영도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모델 에이전시 김앤초이의 박다나차장은 “광고주들이 신선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연예인들의 나이가 부쩍 어려지긴 했지만 보송보송한 얼굴이 아니라 성숙하면서도 ‘보여줄 것이 많은 듯한 눈빛’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평범한 여학생이 캐스팅되곤 하는 것이다. 김민희는 학교 앞에서 에이전시 직원에게 캐스팅됐고, 배두나 최은영 이나영은 압구정동에서, 김정은은 동대문 밀리오레 근처에서 ‘로드 캐스팅’됐다. 주말에 “압구정동 패스트푸드점 M앞에 서있는 아이들 중 반은 ‘캐스팅’을 기대하는 아이들”이란 말이 있을 정도.

어쨌든 ‘세기말의 스타들’은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외롭게 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다. 이제 광고주와 사진 작가, 코디네이터와 매니저가 친구를 대신해 언제나 그들 곁에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9호 (p64~66)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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