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1999.11.18

“초고층에 살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주거공간 높을수록 알 수 없는 불안 초조… ‘요람에서 무덤까지’ 원스톱 삶 가능

  • 박창호 파리 통신원

    입력2007-02-28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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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층에 살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고층 아파트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유럽 언론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곳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 대도시의 주거 공간은 평지-고층아파트-초고층아파트로, 점점 더 집합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곧 전통적인 주거양식이 수평적인 공간성에서 수직적인 공간성으로 변형됐다는 의미다.

    주거공간의 수직적 상승은 사람들에게 전혀 예기치 않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무엇보다 심리적 불안정이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전자가 부정적이라면 후자는 긍정적인 영향이다. 땅에 의지하지 않은 채, 결과적으로 공간 속에 둥실 떠있는 고층 주거환경은, 암암리에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심어준다.

    인간이 새처럼 될 수 있을까

    공중에 던져진 채 방향감각이 상실된 무의식의 공간감각은,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존의 근거없는 불안들’(Angst und Sorge)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예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심성을 갖게 마련이다. 이러한 심리적 결과는 일부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유영 뒤에 느끼는 감정에서도 확인된다.



    지금까지의 주거 환경이 이차원적인 평면성 위에서 이루어진데 반해, 고층빌딩에서의 주거환경은 새들의 주거양식과 같은 삼차원적인 입체성 위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전혀 새로운 주거양식에 대한 감각적 적응을 위해서는, 조류들이 그들의 생활 양식에 적응됐던 기간만큼 인간에게도 긴 진화과정을 요구할는지 모른다.

    한편, 시선의 높아짐은 새의 시야와 같은 조감도적인 시선을 제공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에게 주변환경 전체에 대한 입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여기에서 사람들은 사물과 환경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점을 갖게 된다. 이 입체적인 시선 지평은, 주거공간과 환경공간 사이에 있어야 할 조화와 균형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땅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처음으로 땅이 가지는 다양한 차원의 가치와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층주거에 따르는 주거환경의 집단적 고립성과 자율성의 문제는 사회 심리적인, 혹은 집단 심리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예컨대 일본의 대도시 외곽에 지어진 60층에 이르는 초고층 아파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도시처럼 기능한다. 그 안에는 학교 병원 사무실 상점 백화점 시장 오락및운동시설 등, 도시에 사는 인간활동에 필요한 모든 기능들이 집적돼 있다. 심지어 옥상에는 화장(火葬) 시설이 있고, 각 층에서 버려진 하수(下水)들은 우주선과 비슷한 정화 장치를 통해 다시 생활용수로 회수되며, 상수(上水)는 옥상에서 비를 저장해 여과되어 각 층에 공급된다. 거대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몇만명의 주민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빌딩을 떠나지 않고도 모든 삶의 요구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땅으로부터 고립된 하나의 거대한 수직적 ‘섬’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층 아파트들은 점점 하나의 문화적 섬들로 변형되어 갈 것이다.

    유럽에서는 인구에 비해 땅이 비교적 협소한 독일과 베네룩스 3국 등에서 대규모 초고층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비좁은 땅을 절약하기 위해 세워진 이 새로운 사무공간은 예기치 않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공간 기능의 수직적 활용이 수평적 차원의 부수적 기능들을 엄청나게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층수에 비례하여 넓어만 가는 주차장, 이에 따르는 교통의 병목현상, 땅의 단위 면적에 대한 쓰레기의 엄청난 증가로 인한 처리시설 확충, 단위 면적에 대한 산소 공급률의 저하를 막기 위해 주위 녹지대를 그만큼 넓혀야 할 필요성, 단위 면적에 대한 인구의 활동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야기되는 호흡기질환의 급속한 확산 등등.

    한 세기, 혹은 두 세기가 더 흐른 뒤에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형태는 과연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에 따른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인식의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까. 누구도 쉽게 예견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환경 파괴와 인구증가가 지금의 속도로 지속되는 한, 생존방식의 근본적인 변형은 인류의 진화에 하나의 커다란 도전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49층… 66층… ‘초고층 아파트’ 시대 활짝

    대림 삼성 등 잇따라 건설 … 건강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어


    오는 12월1일 49층의 서울 도곡동 대림 아크로빌에 입주가 시작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도 초고층 아파 트 시대가 열리게 됐다.

    초고층 아파트 건설의 가장 큰 이점은 값비싼 도심의 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땅에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연 환경’(산, 강, 도심의 야경 등)을 높은 전망에서 얻을 수 있다”(명지대 건축학과 박인석교수)는 ‘환경친화적’ 장점이 있다.

    그래서 초고층 아파트에서는 전망이 좋은 위층으로 갈수록 단가도 비싸지고 평수도 넓어진다. 대림 아크로빌의 ‘펜트하우스’인 49층은 가장 큰 평수인 74평형이며, 66층으로 건설중인 삼성 타워팰리스도 101평의 펜트하우스 개념을 도입해 분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고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아직 없다. 학자들은 외국의 연구 사례를 들어 아파트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아파트 안에서 모든 일상생활을 끝내려 하는 ‘코쿠닝’ 현상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례해 택배 서비스, 컴퓨터통신, 방송망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또한 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성격이 내향적으로 바뀌고, 비만해진다는 보고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 타워팰리스를 설계한 조주환이사(삼우인터내셔널건축)는 “건축가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저층에 스포츠센터 등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 주민들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도심의 초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연예인이나 전문직 종사자 등 사회 활동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고립 현상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초고층의 좋은 자연 환경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강한 바람 때문에 창문을 여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림 아크로빌도 창문을 최대 10cm 열 수 있다. 대신 ‘완벽한 냉난방과 강제 환기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배교수는 이처럼 밀폐된 초고층 건물에 외국처럼 전기가 아닌 도시가스를 설치한 것이 적절한 조치인지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거 문화는 언제나 상류층이 주도해 왔다는 점, 맨해튼이나 신주쿠의 초고층 호화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는 점, 도심의 재건축 사업자들이 초고층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열기는 한동안 지속되리란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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