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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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이종찬의 거짓말

갈수록 오리무중… ‘언론대책문건’ 핵심 4인방의 참말과 거짓말 사이

  •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입력2007-02-22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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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근 이종찬의 거짓말
    언론대책문건파동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한마디로 “시간이 지날수록 헷갈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 한나라당 정형근의원, 중앙일보 문일현기자, 평화방송 이도준차장 등 핵심관련자 4명 중 정의원은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데다 검찰조사를 받은 사람들의 진술 역시 100% 신뢰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간의 발언내용이 정면으로 엇갈리고 있을 뿐 아니라 수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을 뒤집고 있어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두고 “누가 거짓말을 더 잘하는지 시합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사건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얼룩졌다. 문건을 폭로한 정형근의원은 10월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문건작성자는 이강래전청와대정무수석”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했다. 정의원은 폭로 다음날인 26일에도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문건을 입수했으며 이전수석이 작성한 게 100% 확실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정의원의 폭로가 있은지 이틀만인 10월27일 문건작성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연수중인 중앙일보 문일현기자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전수석이 문건작성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원은 이날 국회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국민회의가 문일현기자를 들먹이는 것은 조작의 극치다. 문건은 이전수석이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 분명하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종찬 “녹취록 있다 … 없다”

    물론 정의원은 “문건을 건네준 평화방송 이도준차장으로부터 문건작성자가 이전수석이라는 얘기를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차장은 “정의원에게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없다. 내용상 국정원이 나 청와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며 다른 말을 했다. 이에 대한 정의원의 반응은 “이차장이 평소 했던 얘기를 뒤집는 것으로 봐 여권의 공작에 이용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는 것. 아무튼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정의원은 문건제보자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언론사 간부”라고 했다가 “이종찬부총재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을 바꿨고 이도준차장의 신원을 공개하면서는 “제보자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이종찬부총재 역시 중요한 대목에서 자주 말을 바꿔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부총재는 10월27일 비공개로 열린 국민회의 의원총회에서 “10월26일 문기자와 전화통화를 했을 때 문기자가 문건작성 과정에서 중앙일보 간부와 상의했다는 말을 했으며 이를 녹취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문건작성 과정에 제3의 인물이 개입돼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부총재는 다음날 “표현이 와전됐다. 녹취록은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이부총재는 11월4일 검찰에 출두해서는 “문기자로부터 제3의 인물이 개입했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녹음기 조작 미숙으로 녹취를 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기자의 주장은 이부총재의 말과 전혀 다르다. 문기자는 10월27일 중앙일보 한남규전편집국장과 전화통화를 했을 때 중앙일보 간부 모씨와 사전에 상의했다는 이부총재측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정형근의원과 이도준차장의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이부총재와 문기자의 말도 일치하지 않고 있어, 이들 역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부총재는 이번 사건의 와중에 불거진 국정원 문건반출문제에 관해서도 처음에는 “국정원의 양해를 받고 갖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가 국정원측이 “문건반출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자 서둘러 문건을 모두 되돌려주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정의원에게 문건을 제보한 이차장도 몇 가지 대목에서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차장은 10월29일 기자회견에서 후배기자들로부터 “정형근의원과 금전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없다”고 밝혔다. 이차장은 바로 전날 이종찬부총재측과 이회창총재에게 정의원과의 금전관계를 이미 털어놓은 상태였다. 물론 이차장으로서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공개할 만큼 떳떳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차장은 자신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대목인 문건입수 과정에 관해 계속 말을 바꿔 뭔가를 숨기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이종찬부총재의 사무실에서 7페이지짜리 문건을 복사해서 들고나왔다”고 밝혔다가 검찰조사에서는 “팩스용지로 된 원본을 통째로 들고나왔다”고 말을 바꿨다. 절도혐의로 구속된 뒤에는 “문건을 복사해서 갖고 나왔고 원본은 그대로 두었다”고 다시 말을 뒤집었다. 문일현기자가 문건과 함께 보냈다는 사신 3장의 행방에 대해서도 이부총재측과 이차장의 말은 정면으로 부닥치고 있다. 이부총재측은 “문건과 함께 편철해놓은 사신도 절취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차장은 “내가 사신을 읽어보기만 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태도다.

    이 사신은 문건작성자는 물론 문건의 작성동기를 상당부분 밝혀줄 수 있는, 이 사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물증 중 하나다. 만약 이 사신에 이부총재측이 문건작성을 먼저 요구하는 등 개입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면 이부총재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반대로 이차장이 문건과 함께 이 사신까지 훔쳐갔거나 최소한 읽어보았다면 이 문건의 성격을 고의로 과장했다는 결과가 된다. 나아가 사신이 정형근의원의 손에까지 건네졌다고 가정한다면 정의원 역시 처음부터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되고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주요관련자들의 거짓말로 뒤범벅이 되면서 진실은 되레 멀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욱이 한 명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현역 국회의원이고, 다른 한 명은 정보기관장을 지낸 여당의 정치지도자이자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다는 인물이며 나머지 두 사람은 진실추구를 생명으로 삼는 언론인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거짓말은 법적 책임을 떠나 용인되기 어렵다.

    4년전 한 검찰 고위간부는 언론 브리핑 때마다 곤란한 질문이 나오거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 나오면 오른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답변하는 버릇이 있었다. 적당히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할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다. 몇몇 눈치빠른 기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그가 답변할 때는 그의 오른손을 유심히 지켜봤다. 실제로 범죄수사에서는 ‘양심의 긴장’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은연 중에 신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거짓말탐지기의 원리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 관련자들은 그런 양심의 신호장치도 없는 것 같다. 낯빛 한 번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는 뜻이다.

    이종찬 ‘멀어져 간 대권?’

    ‘언론문건’ 치명타 … 경쟁자 이인제 반사이득? 손해?


    텍스트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는 11월3일 서울 여의도 대우중공업 빌딩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을 사실상 폐쇄조치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직원 한명만 남긴 채 이부총재와 그의 비서진이 모두 사무실에서 철수했다. 사무실이야 언제든지 다시 열 수 있는 만큼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는 이부총재에게 사무실 자진폐쇄조치는 상징적으로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도 있다.

    언론대책문건사건에 이어 국가정보원 문건반출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이부총재는 당 안팎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다. 청와대로부터 “자중지란은 득될 게 없다”는 사인이 나오면서 일단 국민회의에서는 이부총재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과연 이부총재에게 큰일을 맡길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얘기까지 나온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부총재가 차기 대권구도에서 사실상 낙마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부총재는 스스로 표현한 대로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당내에서 이부총재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권 경쟁자로 꼽혀온 이인제당무위원 진영 내부에서 손익계산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이부총재의 이미지 손상으로 손해볼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계론. 본격적인 차기경쟁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부총재가 ‘조기’ 낙마함으로써 당내 다른 세력의 견제가 이위원에게 집중될 수 있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견해다.


    ‘빨치산 발언’은 계산된 발언?

    대여투쟁 선봉자 각인용… 여론은 등돌려


    김대중대통령을 겨냥해 “공산당식 선전선동수법” “지리산 빨치산식 수법”이라고 극언을 퍼부은 11월4일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의 부산집회 발언은 즉흥적인 발언이 아닌 것 같다는 관측이다. 정의원은 장외집회 하루 전날 연설원고를 준비했고, 집회 당일에도 즉석연설을 한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한 원고를 들여다보면서 연설했다.

    정의원의 발언을 꼼꼼히 살펴봐도 계산된 발언이라는 흔적이 엿보인다. ‘공산당식’이라고 한번 말한 것으로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는데도 굳이 ‘지리산 빨치산식’이라는 훨씬 섬뜩한 표현을 덧붙였다는 점은 김대통령과 여권을 한껏 자극해 극한대립의 상황을 유발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정의원의 노림수는 과연 성공한 것인가. 이 발언으로 여야가 정면대결의 상황에 빠져들면서 정의원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없지 않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자신이 대여투쟁의 선봉에 서고 있음을 거듭 확인시켰고 ‘반DJ’ 사람들에게 한층 높은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그는 발언후 한 인터뷰에서 “이번에 구속되면…”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비장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치개혁시민연대는 11월5일 성명을 내고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적 언동이며, 특히 대통령을 향해 ‘빨치산식’ 운운한 것은 사려깊지 못한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반개혁적인 발언으로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정의원은 낡은 군사독재의 유물인 색깔론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대책문건과 관련한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정의원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주류지만 일부에서는 ‘당의 공식집회에서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이부영총무) 등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처하겠다”는 강력한 입장표명을 했다. 사법처리 얘기까지도 나온다. 여권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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