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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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 군부 리더와 건달 출신 군벌 간 권력투쟁이 빚은 수단 내전

쿠데타 ‘동지’ 사이 반목에 국내외 이해관계도 복잡… ‘프라미스 작전’으로 韓 교민 철수 성공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3-04-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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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군이 한국에서 9000㎞ 떨어진 지구 반대편, 분쟁이 격화된 아프리카 수단에서 교민 28명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프라미스 작전’은 내륙 각지에 고립된 교민을 수단 수도 하르툼의 집결지로 안전하게 데려온 뒤, 다시 동부 항구도시 포트수단을 경유해 국외로 탈출시키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다. 외교부,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현지에 오랫동안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하르툼에서 800㎞나 떨어진 포트수단으로 교민들을 탈출시켰다. 이 과정에서 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최정예 대테러부대 707특임단과 UDT/SEAL을 수단 현지에 전개시켜 ‘플랜 B’도 준비했다.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의 분쟁으로 포연에 휩싸인 수단 수도 하르툼. [뉴시스[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의 분쟁으로 포연에 휩싸인 수단 수도 하르툼. [뉴시스[

    외교부·국방부·국정원 공조 쾌거

    당초 계획은 이웃 나라 지부티로 교민들을 탈출시키는 것이었지만, 인근에서 수단군과 에티오피아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여기에 지부티 비행장도 세계 각국 수송기로 북새통을 이루자 정부는 빠르게 계획을 바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의 협조를 받아 포트수단에서 사우디 제다를 경유하는 것으로 탈출 경로를 수정했다. 대통령실을 컨트롤타워로 삼아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이 물샐틈없는 공조로 교민을 안전하게 탈출시킨 쾌거다.

    다행히 한국 교민들은 안전하게 탈출했지만, 수단의 혼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단 사태의 발단은 4월 15일 수단의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이 수도 하르툼에서 일으킨 쿠데타였다. RSF는 쿠데타 당일 대통령궁과 공항, 주요 정부기관을 비롯해 수도 전체를 완전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수단 정부군은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수도 곳곳에 들어앉은 반군에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르툼에서 시작된 교전은 점차 수단 전역으로 확대됐고, 며칠 만에 사상자 수천 명이 발생할 만큼 격렬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아프리카에서 쿠데타, 내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지도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대다수 나라의 국경이 일직선인데, 이는 1884년 독일 주도로 서구 열강이 모여 아프리카에서 이권을 분배한 ‘베를린 회담’의 산물이다. 원주민의 민족 구성이나 생활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경계 획정이었다. 그 결과 국가의 행정 경계선과 부족 간 영역에 차이가 생겨났다. 여기에 광산 개발 같은 경제 이권이 얽히고, 외부세력까지 개입하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단은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식민당국의 이간질 정책으로 남북 지역이 서로 원수가 돼버렸다. 두 지역은 독립 후 1972년까지 극심한 내전을 치렀다. 내전 와중인 1969년 자파르 무함마드 니메이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20년 가까이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해 내전과 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했다.



    민간인 학살 앞장서 독재자 눈에 든 ‘건달’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 수단 과도기 주권평의회 의장(왼쪽)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RSF) 지도자. [뉴시스]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 수단 과도기 주권평의회 의장(왼쪽)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RSF) 지도자. [뉴시스]

    이 같은 혼란을 정리한 게 수단육군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군인이던 오마르 알바시르였다.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시르는 1993년부터는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을 겸임하며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자신의 가신그룹 외에는 모든 정당과 노동조합, 종교단체를 금지시켰고, 반대파를 무력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잔자위드(Janjaweed)’를 창설했다. 이 민병대는 점차 규모를 키워가며 폭동 진압과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각지에서 학살, 약탈, 강간 등을 자행했다. 잔자위드가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신속대응군, 일명 RSF의 전신이다. RSF를 이끄는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는 2021년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 과도기 주권평의회 의장을 도와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다. 부르한과는 한때 정치적 동지였다. 부르한 의장이 수단 북부에서 태어난 육군사관학교 출신 정통 엘리트라면, 다갈로는 인접국 차드에서 이주해온 ‘건달’ 출신이다.

    1973년생인 다갈로는 초교 3학년까지 다니며 겨우 글을 뗐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낙타를 치는 목동으로 살다 동네 젊은이들을 모아 갱단을 만들어 노상강도로 먹고살던 인물이다. 그는 2003년 다르푸르 학살 때 잔자위드 민병대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인종청소’에 앞장서 바시르의 눈에 들었다. 이후 다갈로는 바시르의 비호 속에서 잔자위드를 수단 전국에 거점을 둔 대규모 민병 조직으로 만들었다. 2013년 이 조직을 수단 정보기관 총정보국(GIS) 산하 준군사조직인 RSF로 개편했다.

    당초 RSF 병력은 4000명 정도였지만 지속적인 세 확장으로 10만 명까지 규모가 커졌다. RSF는 리비아 내전, 예멘 내전에 참전하면서 정예 전투병을 확보했다. RSF는 다르푸르 지역의 주요 금광을 장악한 데 이어, 최근 해외에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 돈세탁, 돈놀이를 할 정도로 방대한 조직이 됐다. 일개 민병대로 출발한 조직이 이처럼 세를 불린 배경에는 RSF로 군부를 견제하려던 오마르 대통령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오마르가 충견으로 키운 RSF는 주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달려드는 야수가 됐다.

    2019년 군부 리더 부르한과 RSF를 이끌던 다갈로가 손잡고 오마르를 친 쿠데타를 두고 미국 정보기관이 그 배후에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마르는 수단에서 끊임없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고, 대외적으로는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나섰다. 알카에다에 군사캠프를 제공하거나,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 바 있다. 오마르는 이웃 국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극단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미국과 서방 세계는 부르한, 다갈로 등 군벌 세력의 이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쿠데타를 배후 조종해 오마르를 권좌에서 쫓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마르를 쫓아낸 부르한과 다갈로는 과도정부를 세우고 유엔 아프리카 경제위원회(UNECA) 사무차장을 지낸 정통 외교 관료 출신 압달라 함독을 총리로 옹립했다. 부르한과 다갈로는 미국에 “함독 총리를 도와 정국을 안정시킨 뒤 총선을 통해 합법정부를 세우고 권력을 새 정부에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속으론 딴마음을 품었다. 특히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정책이 오락가락하는 혼란이 계속되자 부르한과 다갈로는 2021년 10월 또다시 작당해 함독 총리를 몰아내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친서방 vs 친러, 대외 노선 갈등 불씨

    쿠데타로 함독 총리를 몰아내고 주권평의회 의장이 된 부르한은 곧바로 내각을 꾸려 국가 권력을 틀어쥐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 쿠데타로 공을 세운 것은 물론,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데 앞장선 RSF 주요 간부들도 요직을 맡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RSF는 군부에 비해 한 등급 밀리는 ‘2인자’였다. 부르한은 한동안 충견으로 부렸던 RSF가 과거 오마르를 배신했던 것처럼 자신도 거역할 수 있다 보고 RSF 힘 빼기에 나섰다.

    서방 정보기관의 배후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주도한 부르한은 미국, 유럽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리비아 내전 때부터 러시아와 인연을 맺은 다갈로는 친러 노선을 걸었다. 수단에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을 끌어들여 금광 사업권을 주는가 하면, 홍해 일대에 러시아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하는 등 부르한과 대외 노선에서 대립하기 시작했다. 부르한은 “정국이 안정된 수단에 군대 2개는 필요 없다”며 RSF를 2년 내 정규군에 흡수하겠다고 다갈로에게 통보했다. 이에 다갈로는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그럴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섰다. 올해 초부터 이 문제로 극하게 대립하던 양측은 결국 4월 15일 RSF 측이 반란을 일으켜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부르한의 정부군과 다갈로의 RSF는 각각 10만여 명씩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무장(武裝) 수준도 거의 대등하다. 다만 항공화력은 정부군이 RSF를 압도한다. 공군 대부분이 정부군에 가담한 데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아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전투기와 공격기, 헬기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RSF가 정부군에 완전히 밀리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러시아와 친분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으로 방공·포병무기를 확보해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양측의 무력 충돌은 내전으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양측 전력이 거의 대등할뿐더러, 600여 개에 달하는 부족이 저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군과 RSF 측에 줄을 서고 있어 교전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단의 여러 정치 파벌과 제각기 관계를 맺은 주변국들도 이번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분쟁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개전 초 RSF의 공격으로 최신 MIG-29M2 전투기를 여러 대 잃고 공군 장병마저 포로로 잡힌 이집트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수단 정부군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과거 자기네 내전 때 RSF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동부 하프타르 반군은 RSF를 위해 무기, 탄약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전을 피해 이웃 국가 차드로 도망친 수단 정부군 400여 명이 현지 정부군에 포위돼 부대 전체가 무장 해제되고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차드와 수단 정부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애초에 수단과 사이가 나쁜 에티오피아는 이번 내전을 기회로 보고 국경 분쟁 지역인 알푸쉬카에 병력을 보내 수단 정부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단 며칠 만에 수단 전역이 난장판이 된 것이다.

    군벌 간 분쟁으로 현지에 고립됐다가 정부의 ‘프라미스’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4월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스1]

    군벌 간 분쟁으로 현지에 고립됐다가 정부의 ‘프라미스’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4월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스1]

    수단의 강력한 무장 세력들

    수단 분쟁의 단기적 원인은 부르한과 다갈로의 권력투쟁이다. 다만 그 배경을 깊이 파고들면 여러 부족과 군벌 세력의 원한 및 감정이 폭발한 것이 근본 원인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갈등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고, 그 양상도 대단히 폭력적이면서 잔인할 공산이 크다. 수단에선 몇 년 전까지 인종, 부족, 종교 차이를 빌미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민주화 세력과 민병대의 잦은 충돌은 물론, 부족 간 다툼으로 수백만 명이 난민 생활에 내몰렸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처한 나라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혼란을 수습할 구심점이나 휴전의 계기도 보이지 않는다.

    수단 정세를 고려하면 강대국들이 개입할 여지도 크지 않다. 내전을 벌이는 세력들의 군세(軍勢)가 상당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번 내전도 수단 독립 직후 빈발한 여러 차례의 내전처럼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사상자만 내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 후에는 여러 정치 세력의 통일과 분열, 쿠데타가 다시 이어지면서 비슷한 형태의 혼란이 반복될 것이다. 극소수 엘리트와 부족 지도자, 자기 이익을 위해선 민간인 학살도 서슴지 않는 ‘시정잡배’들의 욕심 탓에 무한 반복되고 있는 수단의 대혼란은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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