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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판 9·11 테러’

유럽 안보 지형 변화… 독일·스웨덴·핀란드 등 반(反)러 외교 전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판 9·11 테러’

미국과 스웨덴 해병대가 스웨덴제 박격포 훈련을 하고 있다(왼쪽). 독일군 병사가 스팅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US Marine, Bundeswehr]

미국과 스웨덴 해병대가 스웨덴제 박격포 훈련을 하고 있다(왼쪽). 독일군 병사가 스팅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US Marine, Bundeswehr]

독일은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왔다. 이 때문에 독일은 무기 수출과 군사력 운용에 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독일은 또 국민의 강력한 반전 여론과 평화주의 등을 이유로 군사력 강화 부분에서도 소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실제로 독일은 인권 탄압이나 인도주의적 위기가 벌어지는 분쟁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고, 제3국이 분쟁지역에 자국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막아왔다. 독일은 파병할 때도 독자가 아닌,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엔(UN) 결정에 따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월 27일 러시아군의 침공 위협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무기 지원을 요청하자 살상무기가 아닌 군용 헬멧 5000개와 야전병원 시설을 보내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군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숄츠 총리를 비롯한 독일 정부 지도부는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적극 지원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를 보면 스팅어 대공미사일 500기, 대전차 로켓 1000기, 휴대용 로켓추진 수류탄 발사기(RPG) 400기 등이다. 독일 정부는 또 옛 동독군이 보유했던 소련제 대공미사일 2700기도 우크라이나에 추가 제공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이와 함께 네덜란드와 에스토니아가 자국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것도 승인했다.

러시아, 유럽 안보에 실재적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 지형이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독일이라고 볼 수 있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 제국을 건설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었고, 이런 새로운 현실에는 분명한 대응이 수반돼야 한다”고 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깬 이유를 밝혔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다른 해법은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맞서 방어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우리 임무”라고 강조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독일과 서방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막판까지 외교로 풀어보려 했으나, 크렘린궁이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고 모든 노력을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180도 바꾼 것은 탈냉전 시대 이후 국제질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민주주의적 가치를 외면하는 독재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 대해 강력한 제재보다 이른바 ‘교역을 통한 변화’라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와도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를 맺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독일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바꾼 것은 러시아를 자국은 물론, 유럽 안보에 실재적 위협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민당(사회민주당) 출신으로 과거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존경해온 숄츠 총리는 “2022년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은 유럽 대륙 역사에서 전환점이 됐다”며 “이는 곧 시대 전환(Zeitenwende)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그동안 반대하던 러시아 은행들의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 퇴출에 찬성했고, 러시아와의 ‘노르트 스트림2’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승인 절차도 중단했다. 독일 사회도 정부의 이런 방향 전환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주요 도시에선 연일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독일 정부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국방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숄츠 총리는 군 현대화를 위해 올해 특별 연방군 기금을 설립해 1000억 유로(약 136조 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숄츠 총리는 “앞으로 해마다 독일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인구 8000만 명인 독일은 GDP 규모에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지만 국방예산은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에 비해 훨씬 적다. 독일군 병력은 예비군 포함 21만 명으로 터키의 3분의 1 수준이다. 나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해 국방예산으로 GDP의 1.53%를 지출했다. 전임자인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중 국방예산 확대와 나토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숄츠 총리는 미국 정부가 요청해온 F-35 스텔스 전투기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프랑스와 6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을 추진해왔다. 독일 공군이 F-35를 도입할 경우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전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군사력 강화는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자칫하면 ‘악몽’이 될 수 있다.



비동맹주의 원칙 깨고 무기 제공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와 나토 사무총장, 마린 핀란드 총리(왼쪽부터)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연방 하원에서 군 현대화 계획을 밝히고 있다. [NATO, DW]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와 나토 사무총장, 마린 핀란드 총리(왼쪽부터)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연방 하원에서 군 현대화 계획을 밝히고 있다. [NATO, DW]

스웨덴과 핀란드가 군사적 비동맹주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도 유럽 안보 지형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스웨덴은 AT4 대전차 무기 5000개를 비롯해 각종 무기와 군사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스웨덴이 외국에 무기를 지원한 것은 1939년 옛 소련의 핀란드 침공 이후 83년 만이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스웨덴은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측에 방어 능력을 지원하는 것이 안보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핀란드도 돌격 소총 2500정, 탄약 15만 발, 대전차 무기 1500개, 식량 패키지 7만 개 등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핀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보내는 것은 역사적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양국은 그동안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등 군사적으로 중립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양국은 현재 나토 가입도 검토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개최된 나토 회원국 긴급 정상회의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북유럽 중립국의 대명사인 양국이 손잡고 나토에 가입하는 역사적 결단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월 4일 백악관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핀란드와 스웨덴이 미국을 비롯해 나토의 안보 파트너가 돼줄 것을 요청했다. 만약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해 미국 동맹국이 된다면, 미국으로선 양국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다.

EU도 금기를 깼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 장비 등을 구입할 자금 지원할 것”이라며 “EU가 비회원국에 이런 지원을 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EU는 4억5000만 유로(약 6120억 원)를 무기 지원에, 5000만 유로(약 680억 원)를 의료 물자 구입에 사용할 방침이다.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또 하나의 금기가 깨졌다. 바로 EU는 전쟁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금기”라고 강조했다. 영국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EU는 신성한 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며 “러시아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간 쉬쉬해온 금기와 관행을 깨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판 9·11 테러”라면서 “유럽 대륙은 마침내 강력한 힘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고 분석했다. EU는 최근 몇 년간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코로나19 등을 겪으며 사분오열해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각성’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마저 EU 제재 동참

영세중립국 스위스마저 러시아 제재 조치에 나서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EU의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역내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스위스는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을 때도 서방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런 조치를 내린 이유는 국내에서 반러시아 여론이 고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연대에 동참하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물론,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등 EU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러시아 고위 인사 367명의 스위스 내 자산이 동결됐다.

스위스 중앙은행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러시아인이 스위스에 보유한 자산은 104억 스위스프랑(약 13조7800억 원)에 달한다. 라브로프 장관이 이를 막기 위해 급히 제네바행 국적기 아에로플로트에 탑승하려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EU가 라브로프에 대해 유럽 내 여행 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스위스에 중립국 지위는 전통이자 의미가 큰 전략”이라며 “이를 잠시 내려놓았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은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독재자들에게도 안 좋은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유럽 안보 지형이 크게 변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질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간동아 1330호 (p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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