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1

2021.12.31

‘버블 붕괴’로 평가 엇갈린 두 경제학자, 피셔와 민스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불안정설 대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새로운 이론 떠오를 수도

  • 한지영 키움증권 투자전략팀 애널리스트

    입력2022-01-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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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빙 피셔(왼쪽). 하이먼 민스키. [GETTYIMAGES, 사진 제공 · 월스트리트 인터내셔널 매거진]

    어빙 피셔(왼쪽). 하이먼 민스키. [GETTYIMAGES, 사진 제공 · 월스트리트 인터내셔널 매거진]

    시간은 과거를 재평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과거 존경받았던 인물이 조롱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인물이 추앙받는 인물로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세계 금융시장을 폭락시키고 실물경제를 극심한 침체로 몰아넣은 두 가지 사건,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그런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20년대 미국 경제학계 및 월스트리트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어빙 피셔(1867~1947)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별다른 빛을 못 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재평가를 받은 하이먼 민스키(1919~1996)라는 2명의 경제학자다.

    일반적으로 버블이 팽창하는 시기에는 주식시장이 폭발적 상승세를 구가하고, 실물경제 주체들도 풍요로움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29년 대공황 진입 직전 어빙 피셔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장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물론 버블 경고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셔는 “저런 사람들 때문에 주식시장이 불안해진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식시장이 붕괴되기 시작한, 이른바 ‘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1929년 10월 29일이 되기 사흘 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 주식시장은 절대 내려갈 수 없는 영원한 고원지대에 도달했다.”


    “미국 증시는 영원한 고원지대에 도달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주식시장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피셔가 쌓아온 재산과 명성은 일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929년 주식시장 붕괴 후 그는 세간의 조롱과 비판을 받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극적인 생애를 맞이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공황이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가져간 뒤에도 그는 어째서 자신의 시장 전망이 그토록 심각하게 빗나갔는지 고민했다. 앞으로 또다시 대공황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아내고자 했다. 권오상 전 금융감독원 복합금융감독국장은 2015년 펴낸 저서 ‘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서 피셔를 “대공황 전 피셔가 은수저를 물고 있는 꼬마에 불과했다면 대공황 이후 피셔는 현역으로 최전방에 갔다 온 성인이 된 셈이었다”고 재평가했다.

    피셔가 연구 끝에 내놓은 것은 부채-디플레이션 이론이었다. 이 이론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산시장이 버블에 도달한 시기에 은행은 가장 취약해 보이는 A회사에 대출 상환을 요구한다. 그러면 갚을 돈이 부족한 A회사는 대안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B회사 주식을 팔아 상환 자금을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B회사 주가가 하락하고, B회사가 속한 업종 전망이 어두워지며, 궁극적으로 다른 회사 주가도 하락한다. 이윽고 비관적 전망이 업계와 주식시장을 지배하면 이제 모두가 주식이 아니라 현금만 보유하길 원한다. 이것이 부정적 순환고리를 형성하면서 전체 금융시스템에 불안을 가져온다. 이 이론은 현 시점에서는 당연해 보이지만 이 이론을 주창한 시기가 1930년대였으니, 상당한 통찰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주식시장과 경제에 존재하는 사이클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증시에 대폭락 사태를 불러왔다. [ETTYIMAGES]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증시에 대폭락 사태를 불러왔다. [ETTYIMAGES]

    그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를 역사의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이던 그는 생전에 금융시장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론을 주창했지만 대중은 물론, 학계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상은 그의 이론을 재평가하게 됐다.



    민스키가 주장한 금융불안정성의 핵심 논리는 금융시장에서는 투기적 버블이 발생했다 폭락하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버블의 시작은 훈훈하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경제주체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제가 좋아지리라 낙관한다. 이는 금융회사 사이에서 확산되고, 상환 능력이 취약한 이들에게도 대출을 실행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경기는 과열되고, 자금시장에서는 주식투자건 설비투자건 새로운 수익원 발굴을 위한 자금 수요가 넘쳐나며, 시중금리는 상승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건, 경제건 사이클이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한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결국 영원할 것만 같던 상승 사이클은 하락 사이클로 전환하고, 고금리로 대출받아 주식을 산 투자자는 주식에서 얻는 수익으로 이자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로 인해 돈을 빌려준 은행의 원금 상환 압박은 거세지고, 누군가는 현금을 마련하고자 투자한 주식을 팔면서 주가 하락을 유발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는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면서 자산 매각과 가격 하락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 자산시장의 패닉과 버블 붕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민스키가 주장하는 금융불안전성 가설(이를 ‘민스키 모멘트’라고 부른다)의 핵심이다.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두 경제학자의 이론을 다시 보게 만든 것처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경기침체 혹은 또 다른 위기는 오늘날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론을 재평가하게 할지도 모른다. 지금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소수 의견, 소수 이론에 관심을 갖는 것도 훗날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부채-디플레이션 이론, 금융불안정성 가설이 전하는 메시지를 세상이 더는 신경 쓰지 않을 때 또 다른 버블이 가면을 쓴 채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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