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7

2021.12.03

“옷소매냐 복이냐” 세종대왕 이름 진실은?

올바른 역사 인식, 정명(正名)부터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12-09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위)과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에 나오는 세종대왕 이름. ‘옷소매 도(裪)’ 자를 쓴 ‘이도(李裪)’로 보인다. [동아DB]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위)과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에 나오는 세종대왕 이름. ‘옷소매 도(裪)’ 자를 쓴 ‘이도(李裪)’로 보인다. [동아DB]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선 국왕이나 조상·성인의 이름, 국호·연호에 들어간 한자는 일반인 이름에 쓰지 못했는데, 이러한 풍습을 ‘피휘(避諱)’라고 한다. 좋은 뜻을 가진 한자 수(數)는 한정된 데다, 국왕 이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 한자를 쓰지 못하게 하면 아이 이름을 짓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왕족 이름에는 여간해서는 쓸 일 없는 한자를 넣었다. 전통 사회에선 아명(兒名)과 성인 이후 쓸 이름(名)을 따로 지었다. 피휘는 왕이 될 세자나 왕이 된 이의 이름이 그 대상이었다.

    피휘 위해 쓸 일 없는 한자로

    조선 세종대왕의 이름이 ‘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한자 표기를 두고 두 가지 설이 있다. ‘옷소매 도(裪)’ 자를 쓴 ‘이도(李裪)’와, ‘복 복(福)’ 자와 뜻이 같은 ‘복 도(祹)’ 자를 쓴 ‘이도(李祹)’가 그것이다. 백과사전 등 여러 매체는 ‘복 도’ 자를 쓴 ‘이도’로 해놓았으나,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는 ‘옷소매 도’의 ‘이도’로 표기해놓았다. 학계 의견도 분분하다. 박재성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작고한 진태하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등은 세종 이름을 놓고 논쟁한 학자로 유명하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조선 임금 집안에도 족보가 있다. 숙종 7년(1681) 간행된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이다. 이 족보는 왕실 종친 이간(李侃)이 저술해 1679년 숙종에게 바친 ‘선원보략(璿源譜略)’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조선왕조는 임금마다 실록을 편찬했는데, 여기에도 왕 이름이 기록돼 있다. 옷 의(衣) 변은 ‘衤’로 쓰고, 보일 시(示) 변은 ‘礻’로 쓰는데 두 변은 한 획 차이로 매우 비슷하다. 당시 자료들을 살펴보면 세종 이름은 옷 의 변(衤)인 ‘옷소매 도(裪)’ 자인 것으로 보인다.

    세종 이름의 한자 표기를 둘러싼 논란은 ‘보일 시 변(礻)’과 ‘옷 의 변(衤)’이 비슷할뿐더러, 옷소매 도 자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한 듯하다. ‘복 도’ 자는 ‘복 복’ 자에 가려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으나, 한컴오피스 등 한글 프로그램에 수록돼 있다. 반면 ‘옷소매 도’ 자는 그렇지 못하다. 대표자끼리 만남을 ‘영수(領袖)회담’이라고 하는데, 이 ‘수(袖)’ 자가 바로 ‘옷소매 수’다. 옷소매를 가리키는 한자가 몇 개 더 있기에, ‘옷소매 도’ 자는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양식 출판이 도입된 근대화 초기 ‘옷소매 도’ 활자가 없으니, 그 대신 ‘복 도’ 자를 쓴 것이 이런 혼란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임금이 자기 이름을 공문서 등에 명기한 경우가 있을까. 1910년 대한제국은 일제에 합병됐는데,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일제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을 조인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조약을 조인하기 전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이완용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문서가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순종 이름이 쓰여 있다. 순종 이름은 ‘터 기(基)’ 자와 뜻이 같은 ‘기지 척(坧)’인데, 이 문서에 ‘坧’ 자가 적혀 있다. 해당 위임장은 조작됐다는 설이 우세하다.



    진짜 발음은?

    조선 임금은 워낙 드문 한자를 이름으로 썼기에 잘못 읽는 경우도 있다. 정조 이름은 ‘계산할 산(算)’의 옛 글자 ‘산(祘)’을 쓴 ‘이산(李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조 재위 중인 1796년 나온 ‘규장전운(奎章全韻)’은 이 한자를 ‘성’으로 발음하도록 규정했다. 정조의 어명으로 출간한 책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祘’ 자 발음을 ‘성’으로 해놓은 이유는 정조가 자기 이름을 ‘성’으로 부르게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말년의 정조는 ‘이산’이 아니라 ‘이성’으로 불리길 원했다는 연구도 제법 있다.

    실제 어떻게 발음했는지 애매한 임금 이름은 또 있다. 정조 아들 순조의 이름은 ‘옥 이름 공(玜)’ 자다. 그런데 순조 이름을 정한 내력을 밝힌 ‘정조실록(正祖實錄)’ 24년 1월 25일조 기사에는 ‘玜’의 뜻은 ‘아름다운 구슬’이고 ‘발음은 홍’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순조 이름은 ‘이공’이 아니라 ‘이홍’으로 발음해야 하지 않을까. 더 헷갈리는 것은 고종 이름이다. 대일항쟁기 이후 고종 이름에 쓰인 한자(㷩)가 ‘빛날 희(熙)’와 같다 보고, 고종 이름을 ‘이희’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청나라 때 나온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따르면 해당 한자는 ‘빛날 형’으로 돼 있다. 고종 이름은 이희가 아닌 ‘이형’이 옳은 독법일 개연성도 적잖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정명(正名)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역대 조선 임금의 이름을 옳게 부르는 방법을 면밀히 살펴야 할 이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