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AR) 기술로 장미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화사의 ‘I’m a 빛’ 무대. [뮤직뱅크 캡처]
케이팝, 3차원 무대로 진화 중
물론 인상적인 사례도 많았다. 그룹 K/DA는 가상 인물이 현실 아티스트와 함께 공연하고 화려한 효과와 연동된 안무를 선보였다. 온라인 페스티벌 ‘케이콘택트’는 XR 기술을 이용해 책상에 놓인 상자 안에 무대가 위치하거나 주위로 광대한 공간이 펼쳐지는 연출을 선보였다. 이처럼 확연히 비현실적일 때 실감콘텐츠 매력은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듯하다.‘뮤직뱅크’는 무대에 가상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세우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밤거리를 올렸다. 감상하는 스크린 크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공간은 훨씬 방대해졌다. 시청자에게 그 차이는 제법 크게 느껴진다.
실감콘텐츠 기술은 어쩌면 무대 크기를 넘어 무대라는 공간 자체를 바꿔놓을 듯하다. 케이팝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멤버들이 일렬로 선 상태에서 맨 앞 사람만 보이는 연출이다. 이때 무대에는 상하좌우가 있지만 ‘앞뒤’는 제한적으로만 존재한다. 이처럼 관객에게 무대라는 공간은 사실 평면에 가깝다. 그리고 카메라는 관객 시선을 확장하고 보완해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케이팝은 이런 평면에 가까운 공간을 진정한 의미의 3D로, 혹은 그 이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대표적으로 360도 대형으로 무대 중앙에서 감상해야 최적인 EXO의 ‘으르렁’, 무대에서 수직으로 위에서 감상할 때 비로소 전체 의미가 드러나는 오마이걸의 ‘CLOSER’를 꼽을 수 있다. 음악방송 실연은 아니었으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2019년 앨범 트레일러 영상도 프로젝터만 이용해 공간을 뒤집고 비트는 마술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음악방송에서 당장 어마어마한 작품이 매주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다소 섣부를 수도 있다. 음악방송은 콘서트나 앨범 트레일러와는 다른 환경이기 때문이다. 각기 창의력과 기술력이 결집하기는 하지만, 매주 여러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방송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대 위 아티스트라는 점도 사실이다. 배경이나 소품이 아무리 화려한들 부가적 요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를 넘어서려면 장식적 효과 이상의 중요한 요소로서 스펙터클을 제공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소극장과 클럽에서 탄생한다면 케이팝은 음악방송에서 태어난다. 매주 생산되는 음악방송 무대들이 케이팝 문화에서 영상 문법의 기본값이 되고 있다. 또한 팬 문화였던 ‘직캠’을 방송국이 제공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긴 하나, 음악방송은 새 시대를 기민하게 쫓아가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음악방송과 함께 케이팝의 어떤 새로운 시각언어를 구성해나갈지 기대감을 갖고 지켜볼 만하다.